이 글은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15
---------
햇빛이 눈을 찔러 살풋 잠이 깼다. 눈이 부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니 눈은 훨씬 덜 부시지만 곧 더운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늦잠 자기는 글렀구나. 팡, 하고 이불을 걷어찼는데 물컹 하고 무언가가 차인다. 으악! 하는 비명, 무거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큰 소리와 함께 바닥이 울린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 갑자기 일어난 탓인지 머리가 어지럽다. 바닥에는 언니와 이불이 한데 뒤엉킨채 엎어져있다.
언니가 아야야, 하며 고개를 드는데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다. 저건 잘 때도 끼는거야? 기가 질린다.
"언니가 여기에 어떻게 있어요?"
잠에 덜 깨 목소리가 갈라진다. 하지만 내가 더 궁금한건 저 언니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이다.
혼자 자는건 무서워 자기. 어젯밤 언니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내 침대로 기어들어왔었다. 기겁을 하며 분명히 쫒아냈는데, 문도 잠갔는데 어떻게 들어온거야?
"방문은 대충 쓱쓱, 하면 열리지."
엉덩이를 문지르던 언니가 허공에서 문틈에 무언갈 밀어넣는 시늉을 한다.
"그거 무단침입인거 알아요?"
"말했잖아. 혼자 자는건 무섭다고."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여태 혼자 잘 자왔으면서."
"자기가 없을까봐 무섭단 말이야." 언니가 입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린다.
뭔 이상한 소리야. 한 소리를 더 하려는데 언니가 엉금엉금 침대로 기어올라와 내 발목을 잡는다. 엇, 하는 사이에 날 뒤에서 안고는 어깨에 코를 박는다.
"응. 자기 냄새야. 나는 정말 자기 없음 안돼."
어제부터 시작된 낯 부끄러운 직설에 화닥닥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얼마나 꽉 안았는지 도저히 풀리지 않는다.
"그만, 그만. 아침 먹어야죠."
"아침? 오후 세시가 넘었어. 아침 먹으라 말을 해도 투덜대기만 하던데? 짜증내면서 뭐라고 하던데?"
늦잠 자기는 그른게 아니라 충분히 잤구나. 시계를 보는 사이 언니가 내가 잠결에 뱉은 한국어로 된 욕들을 영국식 발음으로 흉내낸다. 에비, 황급히 언니의 입을 막는다. 나쁜건 이렇게 빨리 배우더라.
"배고파요. 우리 밥 먹어요."
나쁜 말이구나? 내 손을 떼내며 필사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언니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언니가 그제서야 낄낄대며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
하나를 잔뜩 껴안으려 했는데 밥 먹자마자 얘는 산책을 가자고 한다. 방에서만 콕 박혀 있는 애가 산책은 무슨, 분명히 내가 안고 있을게 거북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지금 주섬주섬 청바지와 셔츠를 찾아입는 내 기분은 들떠있다. 그래, 하나의 표현대로라면 엄청 "설레고" 있다.
바깥 공기는 다소 서늘하다. 하지만 이마에 닿는 햇볕은 따갑다. 손에는 보들보들한 아이의 손이 들어있다. 손에 있는 말랑말랑한 손이 기분좋아 계속 주물거리자 하나가 투덜거린다.
"밖에서까지 왜 그렇게 만지작거려요. 그렇게 좋아요?"
내 기분은 분명 그녀에게도 전해질 터, 그렇게 전해지는 기분이 부끄러운지 하나는 나에게 한 소리를 한다. 하지만 손을 빼지는 않는다.
하나의 따뜻한 손. 따뜻한 볕. 시원한 바람. 손에서 전해오는 맥동.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 차들의 소음. 세상의 소음이 나에게 주는 진동.
아무 감정을 갖고 있지 않던 대상들 모두에 하나가 깃든다. 그렇게 나는 지팡이도 없이 하나로 가득 찬 세상을 걸어간다.
"언니는 나에 대해서 궁금한거 없어요? 아, 다 알고 있다고 했나?"
그럼 다른 얘기를 할까요, 그녀가 말을 돌리려 하기에 황급히 그녀의 말을 붙잡는다.
"아니! 아니아니, 나 자기에게 궁금한거 엄청 많은데? 어디 앉아서 얘기하자!"
전투를 앞에 둔 듯 몸이 달아오른다. 아니, 그때와 다른건 그때는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폭발할것과 같은 긴장감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이유없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은 두근거림이 가득하다.
"앞으로 나가지 마요. 지팡이도 안 가지고 나왔으면서. 언니 너무 흥분했어요. 자, 이쪽으로 와요. 벤치 여기 있어요."
그녀가 내 손을 꼭 잡고 옆으로 이끈다. 자리에 앉자 하나가 하나씩 물어보라며 내 허벅지를 톡톡 두드려 격려한다.
"음...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너무 평범한 질문이었을까? 다 알고 있다면서요? 하나는 깔깔 웃는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그 웃음소리를 즐긴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내가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는지.
"아... 너무 웃어서 미안해요. 언니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을 딸꾹 딸꾹 삼키며 하나가 몸을 고쳐앉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몸을 기댄다.
"음... 피자나 햄버거 좋아해요. 페퍼로니 피자. 햄버거는 빅맥. 또... 과자, 짭짤한 칩 관련한 과자 좋아해요. 음료수는 탄산 좋아하고요..."
다음, 한참 음식을 늘어놓고는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이번엔 싫어하는 음식을 묻는다.
"싫어하는 음식은 당근이요. 당근 냄새가 싫어요. 익어서 물렁거리는 당근이더라도 씹으면 냄새가 푹 올라오는데 그게 싫어요.
그래서 예전에 살던 곳에서도 급식으로 카레가 나오면 당근은 꼭 한쪽으로 치워놨었죠."
"토끼가 당근을 싫어한다니 그거 참 뜻밖의 답변이네."
"뜻밖이라고 해도 하는 수 없어요. 원래 토끼가 그렇게 당근을 잘 먹는 동물도 아니고..."
"그럼 다음 질문,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것이었어?"
그녀가 대답을 마치자 마자 다음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한참을 질문을 했을까...
"생각하고 묻는거 맞죠? 너무 빠르게 묻는데? 지금 언니 아무거나 묻는거 아니에요?"
좋아하는 향기로 겨울 아침의 코를 찡하게 울려오는 냄새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고 있던 그녀가 나에게 묻는다.
그간 나는 스무개 남짓의 질문을 연달아서 던졌고, 이마에 느껴지는 햇빛이 살짝 순해진 것으로 봐서는 오후의 해가 서쪽으로 살짝 넘어간듯 싶다.
"뭐, 궁금한게 너무 많았으니까. 여태 물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그럼 어릴 때는 어땠어?"
잠시 공기가 멈춘 듯 아이의 말이 멈춘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까딱까딱 내 손바닥을 두드리던 아이의 손이 멎었다. 내가 말 실수를 한건 아닐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어릴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삶의 대부분은 고아원에서 보냈거든요."
서류에 따르면 어릴 적 센티넬에 의해 부모를 잃었다고 들었다. 그녀만이 생존한 이유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고마운 분에 의해서 살아남았고, 그 분은 갑자기 사라져서 잘 몰라요. 한 손에 괴물을 잠재우고 순식간에 사라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질 않아서요... 그녀의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목소리의 끝이 떨리는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랬구나...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꼬맹이의 손바닥을 탁, 탁탁.. 두드린다.
"나랑 비슷하네. 나도 어릴적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누구에게 말해도 믿질 않을 비밀이 있어."
***
언니의 부모님 또한 센티넬과 가이드였다. 하지만 C마이너스에서 D급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일반인과 다름 없는 능력이라기도 말하기 민망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관에서는 그런 센티넬과 가이드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다. 연구직, 그것이 언니의 부모님이 배정된 직무 부서였다.
두 분은 연구를 하지 않으셨다. 대신 두 분은 실험 대상이었다.
실험실의 기니피그처럼 죽지 않느니 못한 생활, 언니의 출생 또한 연구의 일환이었다.
레나 옥스턴의 어머니는 자식을 낳지 않으려 했다. 자녀가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하게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니피그에게 출산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다.
불행일지 다행일지 그들의 딸은 그들보다는 높은 등급을 가진 센티넬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한 등급, 거기다 고칠 수 없는 장애까지 갖고 있었다.
때문에 실험 중 사고로 죽어가는 부모는 자신과 같을 딸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을 감지 못했다.
'열여섯,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등급이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았겠지. 평생 이런 햇빛이 있다는것도 몰랐을거야.'
언니는 햇빛을 즐기듯 입에 미소를 띈 채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싸우는 현장은 많이 돌아다녔어. 하지만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임무가 없을땐 기관에서 지정된 장소에 콕 박혀있어야해. 그러니 자기보다는 내가 더 경험이 없을걸."
슬픈 이야기를 하던 언니가 와락, 날 껴안는다.
"그러니 난 자기가 내 옆에 있어 정말 좋아."
"알았으니까 그만 붙어요."
내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어서일까. 언니가 내 눈가를 손으로 쓴다. 그 따뜻한 손에 뺨을 기대고, 잠시 손의 온기를 느끼려 하는데...
"으와악! 뭐, 뭐야!"
언니가 내 뺨을 꽉 움켜쥔다.
"다, 다리에 뭔가 있어! 이게 뭐야!"
허공에 다리를 둥 띄우고 반대 손은 내 팔을 꽉 잡은 언니가 나에게 매달린다. 언니는 파악할 필요도 없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
벤치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바닥만한 아기토끼가 있다. 저 편에서 토끼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팔을 흔들어주기에, 토끼를 품에 안고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무시무시한 S급 센티넬 트레이서가 아기토끼 한 마리에 이렇게 겁에 질릴 줄은 몰랐네."
"토끼?"
"응. 토끼 손바닥 내밀어봐요.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커."
얼른, 겁내지 말고. 되게 귀여워. 언니를 재촉해 양 손바닥을 쫙 펴게 한다. 손바닥을 맞기 전 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벌벌 떠는게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의 손바닥 위에 토끼를 올려놓는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언니의 손바닥을 몇번 핥아보던 아기토끼가 가만히 언니를 바라본다.
으아악. 간질거려, 뭐가 축축해! 하며 소리를 지르던 언니도 내 격려에 천천히 진정하고 어깨에 힘이 풀린다.
허벅지 위에 토끼를 올려놓더니 천천히 등을 쓰다듬는다. 와아... 소리 없이 언니가 탄성을 내뱉는다.
"이게 귀... 생각보다 작죠? 아기라서 그래요. 이게 코... 응. 눈 찔릴라..."
"하나야, 이 애...심장이...되게 빠르게 뛴다."
콩닥콩닥 엄청 빨라. 언니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를 씩 드러내놓고 웃는 언니의 얼굴이 아이같다는 느낌이 든다.
"혹시 동물 처음 만져봐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던가..."
"어릴적엔 연구소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고, 이후에는 임무만 나가다 보니.
신기하네. 글로 만져본 토끼는 귀가 길다고 했는데, 아기 토끼는 귀가 작구나. 하긴 태어날때부터 귀가 크면 우습긴 할거야. 어른 토끼도 궁금하다."
손으로 토끼를 살폿 덮어봤다 다가온 주인에게 토끼를 건넨 언니는 한참동안 토끼가 있었던 허벅지를 쓱쓱 쓸어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게 꽤 흥분한거 같아 손을 잡아본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손목이 쿵쿵, 맥동한다.
*
그 새 붉은 노을이 점점 어두워진다. 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생각보다 아이같은 사람, 무섭지 않은 사람.
"나중에 허락 떨어지면 우리 강아지 한 마리 키울까요?"
"정말? 괜찮을까?"
살짝 불안감을 드러내는 언니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
손을 뻗어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 살짝 모자란 친구라서...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살짝 놀란다. 잠시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언니의 머리를 쓸어준다.
"응. 괜찮을거야. 우리 돌아가서 저녁 먹자."
그렇게, 언니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
안녕하세요, TD입니다. 최근 댓글에 글 연재가 뜸해졌다는 언급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사실 저는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이제 갓 입학을 했는데 공부를 할 것이 너무 많네요. 틈틈히 글을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글을 올리는 속도가 점점 더뎌질수밖에 없더군요. 때문에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잘 읽었다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센티넬버스 AU) Present - 7 (0) | 2016.10.14 |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6 (0) | 2016.10.11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4 (0) | 2016.10.07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3 (2) | 2016.10.04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2 (0) | 2016.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