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내가 기어코 한번 더 소리를 치고 나서야 박사님이 고개를 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야.
접시에 담긴 파스타를 얼마나 돌려대셨으면 파스타가 포크를 꽁꽁 묶고있다.
"네? 무슨 얘기 중이었나요?"
박사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듯 눈꼬리를 내리려고 하지만 이미 크게 떠 있는 눈 속에는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그대로 써 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박사님이 포크를 언제까지 돌릴건지 궁금한 것 뿐이에요."
내가 싱글싱글 웃으며 박사님에게 말하자 박사님이 멋쩍은 듯 포크를 입에 넣는다. 시계를 보자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별로 한 얘기도 없었는데...
"박사님, 저 학교 가봐야해요. 오늘 두시 수업이거든요."
식탁 위에 놓인 파일을 들고 일어난다. 보통 이러면 박사님도 나와 함께 일어나 학교까지 차를 태워다 주시곤 하셨는데...
박사님이 자리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평소에 박사님이 차를 태워다주는게 민망하기도 했기에 데려다 달라고 말은 못하고 멀뚱히 박사님을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을까...
"....학교 안 가요?"
두시 수업이라면서요... 박사님이 접시를 정리하며 나에게 묻는다.
"아, 그게... 저..."
오늘은 차 안태워줘요? 이 질문을 하지 못하고 아... 그... 저... 이 말만을 반복한다.
아. 박사님이 내 뜻을 먼저 알아챘다는 듯 씩 웃어주시더니 볼에 입을 맞춰준다.
"제가 학교까지 태워다주지 않으니 이상해요? 평소에는 그렇게 싫어하더니?"
박사님이 내 볼에 입술을 꾹꾹 눌러대며 장난을 치신다.
"미안해요, 오늘을 볼 일이 있어서... 혼자 학교 갈 수 있죠?"
혼자 학교는 갈 수 있다. 하지만 박사님의 일정 상 오늘 별 다른 일은 없는걸로 안다. 오히려 간만의 휴가 덕분에 우리 둘 다 몇일째 집에서 뒹굴거리지 않았는가.
"갑자기 일이요?"
내 질문이 정곡을 찌른걸까? 박사님이 눈을 돌린다. 어라, 이거 정말 이상하다.
괜히 시계를 들여다보며 늦었다며 내 등을 떠민다. 오늘 수업 잘 들어요! 꽝 하고 내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정말 수상하네.
***
차를 타고 세 시간, 아이가 자리를 비워준 덕분에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에 올 수 있었다.
주차를 하고 큰 박스를 든 채 공원 안으로 걸어간다.
공동묘지, 수 많은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이 곳을 익숙하게 지나가 구석으로 향한다.
<Amelie>
성도, 추모 문고도 없이 달랑 이름만이 적혀 있는 묘지. 묘지의 앞에서 나는 가볍게 기도를 올린다.
꽃을 가져다 줬다면 시시하다고 콧웃음을 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생전 그녀가 좋아했던 와인을 잔에 따라 묘지 위에 올려놓는다.
"오랜만이에요."
그녀가 들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듯 입을 연다.
"하나가 있었으면 여기에 오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을거고 그게 그녀의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그녀가 그런 마음의 병이 있을 줄 몰랐어요. 하도 활발한 아이이기에 PTSD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용기를 줘야 하는 군인 자체에 대한 강박이 있었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아이의 마음에서 에너지를 빨아갔었네요..."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그리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고 있기에 발치의 풀을 툭툭 걷어찬다.
그러고도 안되겠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오랜만에 피는 담배이기에 정신이 몽롱하다. 그 몽롱한 기운으로 말을 이어간다.
"지금 아이는 그 "언니"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고 있어요. 군인이라는 직업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다른 흥미있는 일을 찾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 보냈어요.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그쪽 관련 일도 할 수 있도록...
즐기고 있어요. 마냥 활발하고 용기있는 군인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대학생도 되었어요."
말을 하다보니 목이 타 묘지 위에 올려진 와인을 쭉 들이킨다. 당신은 이런걸 그렇게 맛있다고 먹어댔네요. 나는 별로인데.
"...그래요. 당신 덕분이에요. 나도 이렇게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만약 내가 더 일찍 깨우쳤다면...."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을지 몰라요. 나는 뒷 말을 남은 와인과 함께 꿀꺽 삼킨다. 이 말은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아니다.
"오늘 온 건 당신에게 염장이나 지르자고 온 게 아니에요."
뒤에서 종이상자를 꺼낸다. 상자 안에는 내가 여태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 담겨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의 위에는 그녀의 사진이 있다.
준비해놓은 철제 통과 불쏘시개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리고 사진 하나하나에 불을 붙여 철제 통에 넣는다. 금새 불이 날름날름 오른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태우며 그들에 대한 나의 죄책감도 태운다. 마지막으로 아멜리, 그녀의 사진도 불 속으로 넣는다.
"이제 보낼 때가 되었어요. 이제 당신을 보낼게요.
당신을 쏜 것은 저에요. 미안해요 아멜리.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그 일을 통해 저도, 그리고 하나도 변할 수 있었어요.
그래요. 당신이 용기를 갖지 못한 게, 그리고 결국 마음이 뒤틀려 진 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그렇게 나는 불을 앞에 두고 마지막 추모사를 남긴다.
아멜리, 다신 오지 않을거에요. 고마웠어요.
*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자 불은 사그라들고 재 만이 남았다.
벌려 놓은 것을 정리하고 뒤로 돌아서자 익숙한 긴 머리가 눈에 띄었다. 왜 여기에 온거야.
내가 혼낼거라 생각한걸까? 그녀가 남의 묘지의 뒤로 숨는다.
"하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쭈뼛쭈뼛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묘비를 한 번 보고 내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한다.
"술 마셨네요?"
그렇게 숨기고 간 곳이 여기에요? 아이가 뭔가 서운하다는 눈으로 발치를 내려다본다.
그런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나는 아이의 머리 위에 머리를 올리고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
"알고 있어요. 술 마셨으니 운전은 제가 할게요."
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내 주머니에서 열쇠를 빼간다. 갑자기 변한 아이의 모습이 살짝 불안하지만 그녀의 뒤를 쫓는다.
잘 있어요, 아멜리.
***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하나는 유난히도 밝았다. 저녁 준비를 하면서도 웃었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웃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그래서 혼자 목욕을 하러 들어가려는 그녀를 붙잡아 같이 욕조에 앉았다.
넓은 욕조에서 아이의 어깨를 봤다. 아이의 어깨에 난 유난히 흉한 흉터를 손 끝으로 쓴다.
총에 의한 흉터 위에 칼에 의한 흉터. 보기에 영 안좋았기에 나는 흉터의 제거나 그것을 덮는 문신을 권했다. 하지만 하나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다.
내가 왜 그녀의 흉터를 만지는지 알았던 것일까. 그녀도 손을 내 뒤로 돌려 내 등에 난 흉터를 손으로 쓴다.
이것은 그녀가 나에게 남긴 것다. 이걸 볼 때마다 미안해할까, 나는 이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등에 물을 뿌려준다는 이상한 핑계로 기어코 내 등을 돌린다.
"박사님."
하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드디어 본래 마음을 드러내려고 한 걸까. 나는 아이의 부름에 나지막하게 대답을 했다.
"그 여자는 미워요. 나도, 박사님도 상처입혔으니까요. 거기다가 박사님은 그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근데 오늘 박사님의 뒤에서 얘기를 들으니까 박사님이 더 나아졌다는걸 알게 되었어요.
그 여자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 과한 연민을 쏟지 않아서 고마워요."
말을 마치며 아이가 내 등에 입을 맞춘다. 흉터 위로 간질간질한 하나의 입술이 느껴진다.
"용기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 박사님."
대학생이 된 하나를 보며 내가 고마워하듯, 그녀도 나의 변화에 고마워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나도 등을 돌려 아이의 입에 입술을 겹친다.
그녀도, 나도 흉터를 없애지 않는다. 계속 이 흉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더 이상 우리를 옥죄는 과거의 잔재는 없다. 그건 그저 흉터일 뿐이다.
우린 지금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용기있게 한 발 나아가 서로를 사랑한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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