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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백오판다/작은프마님 커미션 - 여행(6)

-자체적인 설정이 있습니다. 이는 파이널판타지14의 공식 설정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얀씨의 오두막에는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숲 속의 마을은 조용했지만 마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고 드문드문, 그의 집과 마찬가지로 불이 켜진 집이 보이곤 했다. 그리고 불이 켜진 집 중에 가장 큰 집에는 사람들이 모여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긴장되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띄고 있었고, 간간히 걱정된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시계를 보았다.
문가에 가까운 의자에 앉은 여성이 귀를 쫑긋이 세웠다. 집안에서 가장 귀가 크고 또 뾰족한 에판카의 움직임에 말소리는 이내 멎었다. 문 밖 저 멀리서 고타씨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났어요! ...났어요!"

바크 가문의 본가에 모인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하여간 녀석은 언제나 저렇게 쉽게 흥분하곤 하지. 집안의 장남인 쿨란은 막내동생이 뛰어오는 소리에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흘렀다.

"태어났어요! 여러분! 태어났다고요!"

"어서 나가서 말려봐야 하는거 아냐, 누나?"
다얀과 가장 친한 바일은 문고리를 잡으며 그의 누이에게 물었다. 그의 꼬리가 하늘을 뚫을 듯 올라간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누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당장 뛰쳐나가 동생인 바일과 함께 얼싸안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어휴, 하여간 너희 둘은 그렇게 잘 흥분하니, 어서 나가서 데리고 들어와. 히샨도 나가서 둘을 좀 진정시켜봐."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바일은 이미 문 밖을 나간 상태였다. 1녀 3남으로 달의 추종자 중에도 특이하리만큼 형제가 많은 이 집안에서, 시끄러운 두 형제를 진정시키는 것은 히샨 뿐이었다. 장남인 쿨란은 벌컥 화를 내지만 히샨은 조용하게 둘을 달래는 것으로 집안의 시끄러운 두 남자를 진정시키는 능력이 있었기에 에판카는 히샨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의 예상대로 조금 있으니 밖은 아까보다는 조용해졌으며, 상기된 얼굴의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한 채 히샨에게 잡혀오고 있었다.

"누나! 태어났어요! 아기가 태어났어요!"

"쉿. 알겠으니까 진정해. 올케는 괜찮고?"

"네. 아내도 괜찮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곁에 계세요. 저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다고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오면 어떻게 하니. 원, 온 그리다니아가 너네 집에 경사 난걸 다 알겠다."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

"그만 꾸중을 줘요, 이제 이 녀석도 아빠잖아요. 더 이상 아기 막둥이처럼 여기면 안된다구요."

누나인 에판카와 큰형인 쿨란의 말은 집안에서 위엄을 가졌기에 고개를 숙인 그를 보며 바일이 말했다. 자, 그만 하고 아기에 대해서 설명해주렴. 다정한 막내형의 말에 다얀의 얼굴은 다시 밝게 빛났다.

"아내 라라하를 닮았어요. 분홍빛 머리에 하늘색 눈을 가졌어요.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섯개씩 있어요. 너무 작아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버지가 만든 포대기가 너무 커서 포대기로 아기를 싸니 아기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어요."

"와, 라라펠 아기라면 정말 작겠다. 올케에게 정말 감사한걸."
다얀이 흥분해서 손으로 아기의 크기를 가늠하여 물어봤다. 이만해? 아니, 이만해. 다얀은 바일의 손을 잡고 아기의 크기를 조정해줬다. 미코테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다. 와아- 형제들이 입을 모아 감탄했다.

"근데 다얀, 아기 이름은 뭐야?"

"일단은 어머니께서 백오라는 이름을 주셔서 그걸로 부르려고요."

"백오... 백오라... 제수씨는 어떻게 생각해? 사막부족은 다르게 이름을 짓지 않나? 조금 더 노랫말같은..."
히샨이 드물게 웃으며 물었다. 종족이 다른 제수의 사정까지도 생각하는 사려깊음은 그의 장점이었다.

"미코테답지않게 부드러운 이름이라고 하더라고요. 정 라라펠식 이름을 짓고 싶다면 나중에 지어보자네요. 우리 둘의 아이라면 이름 두세개로는 모자랄정도로 바쁘게 살거라면서..."

"뭐, 우리 집안이 별나긴 하지. 그럼 다른 이름도 지어보던가."

쿨란이 쓴웃음 지었다. 그도 그럴게, 달의 추종자 부족은 모계사회이기에 아들들은 뿔뿔히 흩어져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전통이다. 하지만 바크 가문의 어머니는 달랐다. 나는 모두가 함께 살았으면 싶어. 라며 아들딸을 주변에서 키웠고, 이 덕분에 바크 집안의 자녀들은 독특하게도 한데 모여서 아직도 끈끈한 우애를 다지고 있었다. 본가에 모인 모두가 새롭게 태어난 아기를,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를 축하했다. 그렇게 탄생의 밤이 지나갔다.

다른 이름이라... 형제들의 입에서 여러 이름들이 나왔다. 하지만 달의 추종자에게서 나온 여성 이름들은 모두가 강한 "h"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제수씨가 운율에 맞게 부르기 힘든 이름인걸. 우리 막내 조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뭐가 있으려나... 근데 아빠는 왜 그리 조용할까."
한 달 후, 형제들이 모인 곳은 막내 다얀의 집 거실이었다. 깨끗하게 씻고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는 백오를 기다리며 그들은 아기의 다른 이름에 대해서 논의 중이었다.

"그냥요, 노랫말같은 이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짓고 싶은 이름이 있어서요."

"뭔데 네가 그렇게 조용할 정도면 어떤 이름인지 궁금한걸?"

쿨란은 다얀을 재촉했다. 하지만 다얀은 그답지 않게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방문이 열리고 주인공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나왔다.

"와아... 정말 작아."

고모인 에판카가 야무진 손으로 버들가지를 엮어 만든 아기 바구니 위에 아이가 눕혀졌다. 아기는 방금 잠을 푹 자고 배도 채웠다는듯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폈다. 지나치게 큰 바구니에서 몸을 꼼지락대던 아기는 울지도 않고 눈을 이리저리 돌려 주변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바라봤다. 연한 하늘색의 눈에 담긴 가족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녕, 아가. 고모의 침대가 마음에 드니? 에판카가 손가락으로 조카의 볼을 쓰다듬자 백오는 그 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곤 입을 오물거렸다. 좋다는 뜻일까? 태어난지 채 한달도 안 된 아기의 웃음은 배냇짓보다는 긍정의 뜻처럼 들렸다. 모두가 아기의 배냇짓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판다요. 판다라고 짓고 싶었어요."

판다? 아기에게서 아기의 아버지로 눈길이 모아졌다. 다얀은 아기의 얼굴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에판카 누나처럼 야무지면서도 자상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서요. 그리고 제 이름 다얀에서 한 글자 따와서 판다..."

에판카가 응석받이로 생각해왔던 막내동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언제나 불안해 했던 막내동생은 마냥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낚시를 하는 철 없는 동생의 얼굴이 아니었다.

"얘는 이 힘들고 무서운 세상에서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누님처럼... 판다... 강한 어조는 아니에요. 강인한 여성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렇다고 아내의 이름처럼 노랫말도 아니고요. 그냥... 누님처럼 숲에서 평온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가볍던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아버지의 말이었다. 백오야. 판다야. 백오 판다. 어느 이름이 마음에 드니? 모두가 그를 다른 눈으로 보는줄도 모른 채 다얀은 자신의 딸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다.

***

"그대의 은총 아래에 두시어 늘 안전케 하시고..."

생명의 탄생에 눈물짓던 젊은 아버지는 관록이 붙은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세상의 어둠은 그대의 그림자 안에 숨겨주시며 밝은 면만을 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눈꼬리에 잡힌 자잘한 주름은 그가 삶에서 얻은 보물로 겪은 큰 기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깊이로 생긴 입가의 주름은 그만한 걱정을 보여줬다.

그렇게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게 돌봐준 딸이었다. 백오가 세 살에 처음으로 환술을 쓰는 것을 봤었을 때, 다얀은 자신이 재단했던 딸의 평탄한 인생 계획이 그 순간에 다소 틀어진 것을 느꼈다.
그래, 환술사가 되어서 마을 의원에서 일하면 돼. 그러면 돼. 애써 다잡은 마음은 딸이 뿔의 아이의 능력을 받아 옛 암다포르의 숨겨진 마법을 구사하는 것을 보며 다시 무너졌다. 그래, 백오는 내가 평탄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둬둘 수 없는 아이이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 큰 힘에게까지 의지하려 한다.

"당신의 빛 아래에 제 딸을 맡기옵니다. 늘 그러시듯 자애만을 보여주소서."

기도가 끝난 그는 일어나 그가 기도를 바친 대상인 달을 바라봤다. 메르피나는 하늘 저 편으로 떠나고 그녀의 언니인 아제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밤에도 또 오실 그의 신을 배웅하며 다얀은 미소를 지었다. 아제마보다 환히 빛나는 그의 딸이 저 북쪽 숲에서 자신을 만나러 오고 있었다.


***


"늘 그렇지만 너무 늦게 온다니까."

날 볼때마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초코보에서 붕 날아올라 아빠의 품에 안겼다. 어이구. 그새 또 자랐구나. 아빠는 늘 하던 말씀을 하시며 하늘로 가볍게 날 띄우곤 다시 끌어안는다. 짙은 눈화장 사이로 아빠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두 금색 귀가 날 향한걸 보면 말은 장난스럽게 하지만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일일히 나를 관찰하시는 중이시다. 관찰이 끝난 아빠는 나를 들어 어깨에 앉히셨다. 나도 늘 그래왔듯 아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친구들이 많이 생겼네."

"응. 이쪽은 프마언니야. 직업은 소환사. 그리고 이쪽은 체셔쿤이라는 언니고, 음유시인이라는데... 집안일을 잘해. 그리고 저 둘은 언약한 사이야."

"그렇구나..."

아빠는 내가 소개해준 순서대로 프마언니와 체셔언니에게 악수를 권했다. 소개받은 둘은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악수를 하며 각자의 얼굴을 관찰하던 아빠는 희안하게도 프마언니의 얼굴을 다시 한번, 그것도 꽤 오랫동안 응시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길이 부끄러운지 프마언니는 얼굴을 붉히고 물었다.

"아니. 그냥 눈 색이 특이해서 한참 본거야."

"그런 식이면 체셔언니도 양쪽 눈 색이 다른데?"

"체셔는 너처럼 눈 색이 부드럽잖아. 프마는 너랑 다르게 눈 색이 또렷하고. 그래서 신기한거였어.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요. 혹시 어디 출신인가요?"

"라노시아 출신이에요."

"그렇구나. 부모님도 여행자셨나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사과를 기르셨죠."

"아, 그러면 붉은수탉 농장 그쪽인가요?"

아빠는 프마언니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지 많은 질문을 했다. 처음엔 적당한 말로 답변을 대신하려던 언니는 난처한듯 아빠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날 바라봤다.

"언니네 부모님은 그렇게 크게 농사를 지으시진 않으셨대. 그리고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언니가 모험가가 된거야."

실례잖아. 라고 아빠에게 속삭이며 나는 프마언니를 대신해 적당한 대답을 꾸며주었다.

"그렇구나. 미안해요, 좋은 이야기도 아닐텐데 내가 너무 캐물었네."

"아니에요. 궁금하실수도 있죠."

프마언니는 아빠의 사과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어색해진 분위기는 침묵을 불러왔다. 그래서 난 다른 주제를 꺼내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래서? 점심은 뭐 먹을거야?"

"혹시 배고파? 아직 점심 때가 안됐잖니. 이제 슬슬 재료를 준비하려고 했지. 도와줄래?"

"아니, 아빠가 늦었다고 하니까. 식사 준비도 안한거야?"

"뭐 먹고싶은 거라도 있어?"

아빠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은근슬쩍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흥, 이번엔 내가 져줄게. 나는 등 뒤에 있는 일행들을 보았다. 둘 다 어깨를 으쓱이는게 뭐든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아빠가 해주는 꼬치가 먹고싶어."

"그건 당연하지. 그거 말고는 또 없어?"

고개를 젓고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엄마와 내 머리카락이 다날란의 모랫바람에도 끄떡없게 굵은 모발로 되어있는 것과 다르게 아빠의 머리카락은 마치 고양이처럼 가늘고 섬세한 모발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때문에 어릴적 난 자기 전에 아빠의 꼬리를 애착인형마냥 껴안아 쓰다듬다 자곤 했다. 그리고 지금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빠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다른 먹고싶은게 떠오르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젓고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감상을 말했다.

"흰머리가 꽤 많아졌네."

"아빠도 이제 장년이니까."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뭐가 그리 고민이 많으시대."

"백오야, 맞는 말이어도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고 아빠가 늘 말했잖아. 아빠도 놀기만 하는건 아냐. 너희 엄마가 시키는 심부름도 하고, 여기저기 배달도 다니고..."

"그렇지, 논다는거네."

아빠는 멋쩍게 웃었다.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하늘다리가 보이는 평야에 도착해 있었다.
아빠가 만든듯한 너른 천막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 저곳이 우리가 점심을 먹을 곳인듯 했다.

아빠는 내 짐을 천막의 구석에 두고 체셔언니와 프마언니에게 손짓을 해 짐을 푸는것을 도와줬다. 짐을 푼 초코보들은 고삐를 풀어주자 자기들끼리 모여 식사를 해결하려는지 넓은 사막으로 뛰어갔다.


"짐은 이쯤에 풀고, 그러면 사람을 나눌까? 두 명은 저쪽 강에 가서 물고기를 낚아 오고, 둘은 여기서 식사 준비를 하자. 음..."

아빠는 우리를 한 명 한 명 살펴보더니 낚싯대를 꺼냈다.

"백오랑 프마는 낚시를 하는게 어때?"

"왜 우리 둘이야?"

"체셔가 요리를 잘 한다며. 그러면 체셔가 요리를 도와주는게 편할거같다 생각했어. 저쪽으로 내려가면 강이 나오거든? 유그람 강이야. 거기서 생선을 좀 잡아올래? 이왕이면 흰살생선이면 좋겠어. 아빠가 생선 넣어서 데빌드 에그 만들어줄게."

그 강에 먹을만한 생선이 있던가... 아빠가 가라고 했으니 없진 않겠지? 나는 곰곰히 생각을 하다 짐가방에서 낚싯대를 꺼냈다.

"알았어. 나는 낚싯대가 있어. 프마언니는 가져왔어?"

"아...낚싯대..."

프마언니는 낚싯대를 까먹었는지 가방을 뒤지다 말고 손을 멈췄다.

"프마는 낚시하는걸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는 성격은 아니지?"

체셔언니가 프마언니의 뒤에서 씩 웃으며 말했다.

"잡힐지 안 잡힐지도 잡히더라도 내가 원하는게 잡히는건지 확신도 할 수 없잖아."

"그게 낚시의 묘미지만, 너는 싫다고 하겠지? 내거라도 줄까?"

"나는 그 묘미가 별로야. 아니. 네 낚싯대는 너무 길고 무거워 안될거 같아. 나는 아저씨의 낚싯대를 빌릴게."

"낚시가 하기 싫음 내가 대신 갈까?"

"아냐. 아저씨가 요리를 준비하시는데 나보단 네가 더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내가 낚시를 싫어하지만 못하는건 아니라고."

아저씨 잘 도와드려. 금방 월척을 낚아올테니까. 프마언니는 너굴언니의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체셔언니도 무릎을 꿇고 프마언니를 한번 꼭 안았다.

별거 아닌듯한 행동에 담긴 언약자 간의 애정이 부끄러워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킬킬대며 웃었다. 괜히 부끄러워 아빠의 정강이를 주먹으로 쥐어박으니 아삐가 마치 너굴언니처럼 나를 안아올려 어깨에 올려줬다.

"뭐 하는거야."

"응? 우리 딸래미를 안아주고 싶어서."

"나 애 아니거든? 내려줘! 낚시하러 갈거야!"

아빠가 애 취급하는게 싫어 나는 아빠의 품에서 뛰어내려 강쪽으로 걸어갔다.

"백오야 같이 가!"

프마언니가 내 옆으로 황급히 뛰어와 나와 걸음을 맞춘다. 잘 다녀오란 인사를 손 흔드는걸로 대신해 강가로 갔다.


**


"흰 살 생선이라고 했지?"

"응."

"흰 살 생선은 뭐가 있어?"

"잉어나 붕어, 정어리. 그런게 흰 살 생선이지? 보통 데빌드 에그라면 노른자와 함께 섞일 생선이 필요하니 정어리같은 조금 값 싼 생선을 쓰거든..."

"그렇구나... 근데 여기에서 정어리를 찾는건 불가능한걸?"

그렇지, 여긴 강이니까... 나는 강물에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 강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볼에 스치는 서늘한 바람과 뜨거운 햇볕. 습하지 않은 사막의 강은 저절로 몸이 노곤해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나른하네..."

"그러게 말야..."

프마언니는 벌써 낚싯대를 받침대에 놓고 길게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크게 하품을 하는 언니에게 전염이 된듯 나도 하품을 하고 있으니 언니가 큭큭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아니, 아까 상황이... 내가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었잖아. 그게 너무 웃겨서."

"그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우리 아삐는 뭐라 종잡을 수 없는 분이거든."

내가 아빠를 대신해 사과를 하자 프마언니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의 그런 돌발행동은 적잖이 날 당황스럽게 했다.

"백오 아버님은 백오랑 정말 다른 분이네. 백오 어머님은 정말 백오랑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버님은 어떤 분이셔?"

"아... 나는 아무래도 엄마랑 많이 닮았단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 아빠는... 글쎄, 어렸을 때에는 같이 자주 놀았던 기억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밖으로 여행을 다니시기 시작하면서 자주 만나진 못했어. 물론 아빠가 한달에 일주일씩은 꼭 집에 계시면서 나랑 놀아주셨긴 했지만..."

회상해보건데 아빠가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아빠가 집에 안 계시는 날이 많긴 했지만 내가 가족에 대해서 갖고 있는 대다수의 추억은 모두 아빠와 만든 것이다. 그래, 예컨데 지금과 같은 캠핑이나 낚시를 하는 법 같은 것... 하지만 내가 아빠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아닐까.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분인가봐?"

"아니... 그냥 언니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는데, 정말 아빠가 뭘 하시는 분인지 생각해본적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아빠는 아빠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거든..."

"가족이라는게 그런거지. 서로 생각처럼 잘 알고있진 않지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거."

"그런게 괜찮을까?"

프마언니는 음, 소리를 내며 한참이나 강물을 들여다보았다. 강물이 한참이나 흐르고, 물 위에 뜬 찌는 미동도 없었다. 기다리는게 답답해 조용히 한숨을 쉬려 입을 여는데 프마언니의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응. 기본적으로 너에게 나쁜 일을 할 분들이 아니라면, 그런 믿음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뭐... 나라고 가족에 대해서 일일히 알지 못하지만..."
무엇보다 난 가족에 대해 잘 알만큼 길게 가족들과 살지 않아서.. 프마언니는 민망한듯 웃었다. 평소처럼 부끄러워하면서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려 노력하는 프마언니의 대답에 불안한 기분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맞아. 아빠가 짖궂긴 해도 날 얼마나 아껴주는데."

"응. 처음 보는 나라도 그게 느껴지더..엇!"

프마언니는 말을 하다 말고 활처럼 휜 자신의 낚싯대를 부여잡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에서 기기긱, 하는 소리만으로도 미끼를 문 녀석이 작은 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힘껏 낚싯대를 당기는 프마언니의 뒤에 서서 낚싯줄을 조금씩 풀어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조금씩! 당겼다가 풀면서 힘을 빼게 하는거야!"

"으으...! 버티는 것 만으로도 한계야!"

아직 낚시가 능숙하지 않은 프마언니는 예상치 못한 무거운 입질에 당황한듯 대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한계인 듯했다.

"팔 힘으로 당기려고 하지 말고 허벅지와 다리 힘으로 버티려고 해봐. 좀 더 수월하지? 그 상태에서 줄을 놔주다 당기다를 반복하는거야. 길들이는것처럼."

야만신을 소환해 부리는 일을 해와서인지 금새 프마언니는 내 말에 따라 릴을 감고 풀기를 반복했다. 물고기의 거센 움직임에 따라 몸이 휘청거리긴 했지만 아까처럼 뻣뻣한 대치상태는 아니었다.

뜰채를 든 채 프마언니를 응원하길 몇 분, 서서히 물고기의 등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솟았다. 등 지느러미만 해도 내 팔길이보다 훨씬 큰걸 보면 예삿 크기는 아니었다. 나는 기회를 엿보다 뜰채로 몇분간 우리와 씨름하던 녀석을 물 밖으로 끄집어냈다.

"와아..."/"이야..."

우리는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기다란 주둥이에 붉은 몸, 똑바로 세운다면 우리의 어깨까지 올라올정도의 큰 몸길이.

"연어네."

"이게 연어구나...나는 토막난거밖에 안 봐서, 머리까지 달린건 처음 봐."

"유그람... 맞아. 이맘때 유그람 강에서 연어가 낚이지. 이정도면 됐겠다. 그만 돌아가자."

"돌아가? 백오는 잡지 않을거야?"

서운하지 않겠어? 프마언니가 연어를 구경하느라 땅에 손을 짚은 자세 그대로 날 바라본다.

"나도 이 손맛을 느끼고 싶지만... 무엇보다 낚시는 내 취향이 아니고, 이정도면 우리 넷이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거야. 그 이상 잡는건 안된다고 아빠가 늘 그랬어."

"그렇구나...그래, 그만 돌아가자."

프마언니는 가져온 큰 수건에 물과 얼음 샤드를 골고루 뿌렸다. 그곳에 내가 연어를 올리자 프마언니는 수건을 감아 연어를 차갑게 감쌌다.

"어서 가자. 아빠가 기다리겠어."

언니와 나는 동시에 연어를 들어올려 어깨에 짊어진다.
필요 이상으로 잡는건 안돼.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교훈이었지. 어깨에서 물씬 풍겨오는 비린내가 싫진 않았다.



**


"이렇게 큰 놈을 잡은건 오랜만이라니까!"

포크를 낚싯대삼아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월척을 잡는 시늉을 하니 아빠와 프마언니가 웃는다.

나는 다시 포크를 내려 연어 스테이크를 적당히 잘라 접시에 뿌려진 소스를 발라 입에 넣었다. 홀그레인 머스타드와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가 부드러우면서 톡 쏘는 맛을 줬다. 그리고 어디서 온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단맛이 하나...

"요리술이야."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걸까. 아빠가 단맛의 출처를 알려준다.

"요리술?"

"응. 동방에서 요리할때 넣는 술이래. 우리도 요리에 향미를 추가하기 위해 포도주를 넣잖아. 요리주를 넣으면 비린내도 없어지고 이렇게 음식에 윤기도 준다네. 보통은 조림 요리에 쓴다는데, 한번 이렇게 써봤어. 어때?"

"맛있어. 근데 아빠는 동방도 갔다온거야? 어떻게?"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동방을 아빠가 먼저 갔다니... 생각보다 넓은 아빠의 활동범위에 입을 벌릴수밖에 없었다.

"배 타고 가지. 동방으로 가는 상선들이 꽤 있단다. 그리고 거기서 그냥 이것저것 사고 이런거 저런거를 알아보는거지. 이것도 너희 엄마가 시킨거야."

뭐 재미는 있었어. 아빠는 팔을 뻗어 데빌드 에그 하나를 집어들었다.

삶은 알의 노른자를 빼 겨자와 레몬 등 다양한 양념을 넣어 섞고 그것을 얇게 저민 생 연어에 말아 다시 노른자 자리에 놓은 재미있는 요리인 데빌드 에그는 나도 좋아하는거라 포크를 놓고 나도 하나를 받아 입에 넣었다.

고소한 노른자, 톡 쏘는 겨자, 달큰한 파프리카,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연어의 신선함이 입에 퍼지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보통 데빌드 에그가 이렇게 연어를 통으로 넣었나?"

"데빌드 에그가 노른자에 이것저것 양념해 다시 달걀을 채운거니까. 보통은 간 보름정어리를 쓰지만 이렇게 연어를 넣는것도 좋지않아?"

"응. 맛있어. 연어를 갈아 넣기엔 아까웠구나?"

아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렇게 빛깔도 좋은 녀석인걸. 이걸 갈기갈기 찢는건 죄야. 적당히 작은거 두세마리나 잡아오나 했는데 이렇게 월척을 낚아올줄은 몰랐네."

그러니까 말야. 정말 멋진 연어였어. 나는 기분이 좋아져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백오야, 무엇보다 이 생선은 내가 잡은건데?"

내가 당당해하는게 우스운지 프마 언니가 웃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언니가 그 큰 고기를 잡은거 자체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운걸. 나는 씩 웃고 손을 뻗어 알을 하나 더 집었다. 흰 달걀 위로 봉긋히 말려올라간 연어가 장미꽃 같았다.

"그러고보니 아빠랑 체셔언니가 비슷하네. 즉흥적으로 요리를 생각한다는 점이 말야."

나는 체셔언니의 반응을 기대하곤 알을 입에 넣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체셔언니를 보니 연어 스테이크를 조각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체셔언니?"

"응? 무슨 얘기 중이었어?"

언니가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야. 입맛이 없어? 데블드 에그 하나 먹을래?"

"으..응. 그래."

언니는 내가 건네는 걸 받아 입에 넣는다. 평소에도 말이 많진 않지만 유난히 말이 없어진 언니의 모습은 식사의 분위기를 다소 가라앉혔다. 이후로도 짧은 잡담이 오갔지만 체셔언니를 의식해서일까. 곧 대화는 끊겼다.

데블드 에그를 목으로 넘긴 언니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잘게 찢어 조금 떠 먹더니 결국 포크를 내려놓았다. 언니가 이상한걸 눈치챘을 때부터 계속 체셔언니만을 바라보던 프마언니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렸다. 아마 체셔언니의 허벅지를 살짝 두드리며 상태를 묻는거 같았다.

"좀 피곤한가봐. 입맛이 없네. 들어가 쉬어도 돼?"

체셔언니가 우릴 바라보며 묻는다. 그래, 들어가 쉬어. 우리는 끄덕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따로 만든 저편의 천막으로 간 체셔 언니는 누웠는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는 반도 먹지못한 체셔언니의 접시만이 체셔언니의 자리를 대신했다.

"많이 피곤했나보다."

프마언니가 체셔언니가 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기에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말을 붙였다. 그런가봐... 하고 언니는 다시 접시로 눈을 돌렸지만 아까와 같이 즐겁게 식사하지는 않는것 같았다.

"다음엔 어디로 갈 생각이니?"

"딱히 정해놓고 가는 것은 아니라서... 언니는 어디 가고싶은 곳 있어?"

"나도 그렇게 딱히 정해놓진 않았는데... 코스타 델 솔도 괜찮을거 같고 모르도나의 풍경도 나름 예쁠거 같아."

"그렇다면 모르도나로 가는건 어떠니? 아저씨는 검은솔 정류장까지 갈 생각이거든. 대신 가는데 드는 식비라던가는 아저씨가 도와줄게. 딱히 갈 곳을 정해놓지 않았다면 한번 생각해보렴."

"뭐 모르도나도 괜찮지. 거기에 에테르 결정들이 예쁘잖아. 은빛눈물 호수도 절경이지."
어때? 내가 눈으로 프마언니에게 동의를 구한다.

"체셔도 괜찮다고 하면 모르도나 쪽으로 가자. 어차피 쉬는 여행인데 이쪽이면 어떻고 저쪽이면 어때. 아저씨께서 해주시는 음식도 맛있으니 나야 아저씨와 더 있으면 좋지."

"그래, 그럼 슬슬 먹은 것 정리하고 체셔쿤을 깨울까?"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에 어색하게 대화를 하며 식사를 마쳤다.


***

-오늘 밤엔 검은솔 정류장에서 쉬는 걸로 할까? 마른뼈 황야는 낮에 더운 만큼 밤에는 춥거든.-

아빠의 조언에 따라 다소 서둘러 짐정리를 끝낸 우리는 초코보를 타고 넓은 마른뼈 황야를 건너기 시작했다. 억센 잡초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명도 허용하지 않는 태양볕은 모두의 정수리를 따갑게 태웠다. 때문에 원하든 원치않든 모두는 모자가 달린 긴 망토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많이 덥지?"

우리와 초코보 머리를 나란히 하던 아빠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덥고 건조한 날씨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뜨거운 햇볕은 사람 뿐 아니라 초코보의 체력도 빼앗으니 하는수 없이 초코보를 천천히 운전할수밖에 없었고 이 주변의 똑같은 풍경도 슬슬 지루해질 차였다.
이런 날씨 때문에 늘 여길 올 일이 있으면 근처의 야영지의 에테라이트로 빨리 왔다 빨리 떠나곤 했었다.

"여기 이름이 마른뼈 황야가 된것도 이 건조하고 더운 날씨 때문이란다. 여기서 쓰러진 사람은 꼼짝없이 말라죽어 뼈만 남게 되거든."

"세상에, 데존이나 텔레포는 어디다 두고?"

내 질문에 프마언니는 그럴줄 알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걸 쓰려면 일단 몸의 에테르가 어느정도는 있는 체질의 사람이어야해. 어느 정도는 마도의 소양이 있는 사람인거지. 마도라면 좁게는 옛 마하의 흑마법이나 암다포르의 백마법같이 주변의 에테르를 사용하는 것부터 넓게는 격투가나 기사들이 쓰는 신체를 강화하는 체술까지 포함할 수 있거든. 그런 것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진 않잖아."

"거기다가 에테라이트를 사용하는데 비용이 들잖니. 가난한 행상인들이나 무역상들은 위험을 부담하고도 발품을 팔지."

그렇군. 내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소수의 사람들만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놀라서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말이 없네, 체셔언니. ...언니?"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언니를 찾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체셔언니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초코보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굽히느라 얼굴 앞으로 내려온 후드는 언니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초코보의 고삐를 살짝 당겨 쿠의 옆으로 초코보를 붙였다.

"언니 괜찮아?"

손을 위로 뻗어 언니의 손을 잡았다. 이 뜨거운 볕에 있었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축축한 손에 놀랐다. 내 손이 닿자 고개를 살짝 든 언니의 얼굴빛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언니는 힘든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가 겨우 나와 눈을 마주하곤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곧 눈썹을 찌푸리곤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어... 백오야. 나 속이 답답하네..."

언니는 이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왈칵 구토를 했다. 그리고 몸이 비틀거리며 흔들리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언니!" / "체셔쿤!"

우리는 모두 초코보에서 뛰어내려 쓰러진 언니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프마언니가 다급하게 뛰어가 체셔언니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나는 체셔언니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마는 손과 다르게 약간의 미열이 느껴졌다. 대체 어디가 아픈거야 언니. 나는 눈을 감고 언니를 진찰하기 위한 술식을 읊었다.

"뭐야? 일사병? 왜 이러는거야?"

프마언니가 당황한듯 체셔언니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손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일사병 증세도 약간 있긴 한데... 무엇보다 위가 단단하게 굳었는데. 위경련 증상도 있어. 아빠. 근처에 쉴만한 곳이 있을까?"

"근처에 쉴 곳은 마른뼈 야영지밖에 없지. 그 외엔 쉴곳이 없어."

"많이 멀까?"

"그렇진 않아. 여기서 초코보를 타고 달리면 5분이면 가."

"그럼 아빠는 먼저 가서 야영지에서 언니를 눕힐 곳을 마련해줄래?"

몸이 아픈 체셔언니에게 텔레포를 쓰게 할 수 없기에 아빠에게 부탁을 했다.
알았어. 아빠는 초코보에게 다급한 어조로 낮게 말을 걸고는 등에 올라탔다. 초코보는 아빠의 말을 들은듯 이내 부연 모래바람을 날리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니의 체력이 많이 낮았기에 리제네를 걸고 언니를 다시 쿠의 등 위로 올렸다. 쿠는 불안한듯 낮게 울었다. 체셔언니의 몸을 받쳐주기 위해 쿠의 등에 함께 탄 프마언니가 쿠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쿠의 등을 몇번 토닥였다.

"응. 네 주인이 많이 아픈가봐. 좀 발을 빨리 놀리되 네 주인을 생각해서 몸을 덜 흔들어줄래? 으휴, 뭘 먹었다고 그렇게 아픈거야. 낮부터 안 좋았으면 말을 하지."

프마언니는 쿠의 고삐를 쥐곤 나에게 준비가 되었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어쩌다 아프게 된거야. 나는 먼저 초코보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