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쿵(@sesese0505)님의 썰을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 https://twitter.com/sesese0505/status/763915358973505536
---------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매캐한 냄새, 그리고 파도소리.
큰 고함소리가 들려와 기침을 꾹 참는다.
밤인지 금새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옆을 보니 역사책에서 본 석탄으로 움직이는 큰 배가 있다.
일본말인가? 큰 고성이 내 쪽으로 들려 몸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내 등 위로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흘끗 엿보니 일본인들은 나에게 소리를 치고 있지 않았다. 옛날 역사책에서만 본 군복을 입은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옷을 입은 동양인 가족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이 모든걸 통해 지금이 내가 살던 때에 비해 적어도 백년 이상의 과거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살던 곳과는 동떨어진 동양임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은 아무리 살펴봐도 무장한 듯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가? 그들이 총구를 아래로 내린다. 무릎을 꿇으라는 뜻이었을까.
성인 남성, 여성, 그리고 소녀가 무릎을 꿇는다.
먼저 남성의 이마에 총이 닿더니 큰 총성과 함께 남자가 쓰러진다. 화약의 냄새가 사라지기도 전에 옆의 여성도 쓰러진다.
안돼. 나는 입술을 깨문다. 안돼, 레나. 네 지금 꼴을 봐.
무기는 들고있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았어. 괜히 뛰어들었다가 너까지 죽어. 안돼.
눈을 돌려. 안전한 곳을 찾아서 숨는거야. 그리고 운이 좋아서 다시 원래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거야.
윈스턴이 이걸 고치면 너는 예전처럼 살 수 있어. 조금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참을 만 할거야. 제발.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잖아.
마지막 아이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아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아이의 뒷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두 갈래로 곱게 땋아 천으로 끝을 분홍 헝겊으로 묶었다. 가늘게 등이 떨리고 있다. 동그란 뒤통수와 작은 어깨.
그 다음에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순식간에 가속기에서 환한 빛이 났고 세상이 매우 느리게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소녀의 앞으로 뛰어가 그녀를 안고 다른 곳으로 피했다. 팔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배에 오른다.
가속기가 파직, 하고 꺼지고서야 세상이 원래대로 흐른다. 지금 이게 뭐였지?
바깥에서는 일본 병사들의 고함이 들린다. 갑자기 자신들이 죽이려던 소녀가 하나 사라지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이곳은 배의 지하. 짧은 시간 안에 육지에서 배 안으로, 그것도 배의 지하까지 내려오다니.
나조차도 내가 방금 한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니 서 있을때, 품에 안긴 소녀가 숨을 훅 들이마신다.
소리를 지르면 안돼. 나는 소녀의 입을 손으로 막는다. 쉿. 동그란 소녀의 눈에서 그제서야 눈물이 흐른다.
"저기요, 조용히 해요. 들킬지도 몰라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대충 분위기를 알아들어서일까. 소녀가 내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덮는다.
그녀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림에 따라 눈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소녀가 소리없이 오열한다. 지하의 위, 배의 바닥을 군화발이 어지럽게 지나다닌다. 이내 지하로 그들이 내려와 여기저기로 손전등을 비춘다.
가속기가 꺼진 것이 다행이다. 덕분에 손전등이 닿지 않는 곳은 깜깜한 암흑이다. 그리고 우리는 용케 그 어둠 속에 숨어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여기 탄 사람은 없습니다. 불쾌하군요!"
영어가 들려 귀를 기울인다. 이 배는 영어권 국가로 가는 배거나 적어도 영어권 국민의 소유일 것이다.
일본 군인이 뭐라고 변명을 하지만 영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단호하다. 일본 군인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간다.
*
한번 더 손전등이 내부를 훑더니 밖으로 나간다. 완전히 우리 둘만 남게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녀의 입을 막은 손을 내린다. 그제야 팔뚝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아야야, 하며 상처를 달빛 아래에 가져가 비춘다. 상당히 많은 피가 흐르고 있다. 빨리 원래 시간대로 가지 않으면 위험하겠는데.
천을 찢는 소리가 들려 옆을 바라보니 소녀가 속치마를 찢는다.
맨다리를 보이는건 옛날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는데, 등을 돌려주자 소녀가 뭐라고 말하며 자기를 보게 내 몸을 돌린다.
그리고 내 상처에 찢어낸 속치맛자락을 단단히 동여맨다. 상처에 압박이 가해지자 나도 모르게 끄응, 하고 신음을 냈다. 그녀가 미안하다는 어조로 뭐라고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고마워요." 그래도 감사 인사를 해야 하기에 영어로라도 말을 건다. 뜻은 통한걸까. 소녀가 나에게 깊숙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다시 동그란 뒷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내 발이 반투명하다는걸 알게 된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이것도 뜻이 통하려나? 손을 펼쳐 좌우로 흔든다. 소녀의 놀란 눈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어둠에 잠긴다.
**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건지 너에게 설명을 듣고 싶어."
"내가 만들었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의도한건 아니란거야. 그러니까 몰라."
"대충 짐작도 못하는거야?"
"과학자는 짐작을 하지 않아."
"그럼 가설이라도 세워봐."
윈스턴이 어깨를 으쓱하며 바나나를 까 먹는다. 매번 가져다 줄 때마다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서 저렇게 잘 먹으니 괜히 화가 난다. 손을 뻗어 바나나 하나를 뜯어간다.
다시 내가 나타난 곳은 기지의 복도. 소녀와 있었던 그 짧은 시간이 현재에서는 일주일정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신체가 현재와 분리된 사람의 부상은 어떤 것인가. 수많은 과학자들이 나의 부상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의 부상을 "걱정"해준 단 두사람, 앙겔라와 윈스턴. 그들과 나는 친해졌다.
그들에게 내가 겪은 신기한 나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니 앙겔라는 당연히도 이것에 관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었다.
하지만 윈스턴도 답을 내놓지 못한다니... 그래도 가설을 제시해 보라고 재촉하니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생각을 한다.
"환경을 바꾸는건 힘들지? 그러니 아무래도 네 자신의 시간을 빠르게 하는거 아닐까? 너만 다른 사람보다 두배 더 빠르게 가는거지.
아니면 내가 진짜 타임머신을 만들었던가..."
내 손에서 바나나다발을 뺏으며 그가 말한다. 쳇, 바나나 싫어한다면서.
"그럼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갈 수 있는거야?"
타임머신이라니, 그럼 내가 슬립스트림을 타기 전으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를 갖고 그를 쳐다봤더니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보다 그게 덜 고장이 나도록 하는게 먼저지."
재미없는 소리를 하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타임머신이 아니더라도 이건 대단하지 않아? 남들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건 좋잖아? 어떻게 했었지...
윈스턴이 시간가속기에 대해 어려운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에 슬쩍 일어나서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본다. 이렇게 뛰었었나, 하지만 주변이 느려지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건 그냥 뛰는거잖아.
"윈스턴"
"응?"
"나 총으로 쏴볼래?"
"뭐?"
"총으로 쏘면 내가 그걸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
쫓겨났다. 윈스턴에게서도, 그리고 앙겔라에게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총으로 쏘진 않을거다! 하며 윈스턴은 날 걷어차버렸고, 앙겔라는 충격을 받았냐며 심리치료를 권유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준비한 것이 이 장치.
여러개의 야구공을 무작위로 발사하는 배팅 머신. 그 앞에 나는 서 있다.
그리고 내 뒤에서 앙겔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레나. 위험해 보이는데요... 잘못 맞으면 죽을수도 있어요."
"위험해야지 뭐가 되지 않을까?"
그녀의 걱정을 무시하고 나는 기계를 가동시킨다.
쿵쾅쾅 소리를 내며 야구공들이 나에게 날아온다. 처음 몇개는 몸을 돌려 피했는데, 하나를 허벅지에 맞으니 몸을 돌릴 수 없다.
이제는 피할수가 없다. 맞으면 정말 죽을거야.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공들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어어어어...!"
순식간에 쉽게 공을 피한다. 파직, 하는 소리가 한번 울릴때마다 시간이 느려진다.
한번, 두번, 내가 몸을 피하자 뒤에서 앙겔라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게 느껴진다.
그래. 이렇게 쓰는 거구나. 시간을 가지고 노는것에 대한 전능함마저 느낀다.
세번째로 능력을 사용하고 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네번째를 사용하려는 순간. 그렇게 나는 한번 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내가 나타난 곳은 아주 매운 공기가 가득 찬 곳이었다.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 - 3 (0) | 2016.08.22 |
---|---|
인연 - 2 (0) | 2016.08.22 |
인연 - Prologue (0) | 2016.08.21 |
갓길(19) (0) | 2016.08.16 |
[단문] 샴푸(@dva_online 님을 위한 글) (0) | 2016.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