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겁지겁 그녀가 있던 곳으로 뛰어간다. 모래 언덕이었던 장소가 딱딱한 흙바닥으로 바뀐 덕분에 뛰는 것은 더 수월해졌지만 아까 그녀가 사라졌듯 이번에도 사라질까 두려워 서둘러 발을 옮긴다. 몇번을 넘어지며 겨우 도착한 황야에 그녀의 모습은 없다.
또 잃어버렸나? 낙담해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자기, 나 찾고있어?"
그리고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가워 그녀에게 달려가다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무의식중에 걸려 넘어진 것을 돌아본다.
불에 탄 시신 한 구, 시신이 쓰고 있던 헬멧에 인쇄된 오버워치의 마크.
치지직, 거리며 다시 헤드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내가 잘못한거야.>
<자기 잘못이 아냐.>
<내가 좀 더 나섰어야 했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자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있더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고.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
<하나야, 이렇게 하자. 자기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구할게.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은 그냥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인거야. 내가 책임질게.
나는 해결사잖아.>
-----
***
작전이 끝나고 모두가 수송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장난을 칠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꼬맹이가 보이지 않으니 괜히 불안해져 여기저기 보이는 돌격조 요원마다 물어보고 다녔다.
토끼는 돌격 A조, 이번 작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조였다. 설마 애가 다치진 않았지? 사상자 목록에 아이가 없다는걸 알고 막사 주변을 뒤지던 내가 아이를 찾은 곳은 막사의 구석, 전사자들이 누워있는 곳이었다.
전사자들의 군번줄은 의병대가 챙겨갔다. 그들의 사이사이에서 아이는 물끄러미 전사자의 얼굴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장난을 칠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등이 너무 진지해보여 결국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나야…"
"나만 싸웠으면 죽을 일이 없었을텐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 아무리 한국에서 최고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나봐. 제일 빠르고 제일 강한 내가 모두를 지켰어야 했는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군생활이 그녀에게 어떤 세뇌를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든 이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장기간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이것을 받아들이려 할까.
아니, 내가 애초부터 그녀의 마음 속으로 이 이상 들어가도 될까.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내가 여기서 발을 떼고 이 일을 앙겔라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일이리라.
하지만 아이의 눈에 있는 절박함. 당당한 아이가 내 앞에서 드러내는 연약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내가 잘못한거야."
"자기 잘못이 아냐."
"내가 좀 더 나섰어야 했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자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있더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고.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멍한 아이의 입에서 '내가 가장 강한… 최고의…' 등의 수식어가 나온다. 그녀의 우수함 그 자체가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잡는다. 그녀가 그렇게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고 다니는 이유였던, 어깨에 온통 짊어지고 있던 짐을 대신 덜어주기로 한다.
"하나야, 이렇게 하자. 자기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구할게.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은 그냥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인거야. 내가 책임질게.
나는 해결사잖아."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 알지? 하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어준다.
소녀의 눈이 떨린다. 또르륵, 하고 볼로 눈물이 흐른다.
이제서야 어깨가 무거웠다는걸 알게 되었다는 듯, 아이가 내 품에서 엉엉 운다.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아이는 누군가를 향해서 계속해서 사과를 한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인다. 아이의 무게만큼 가슴이 묵신함을 느낀다.
한참 아이를 울게 내버려두고 난 후, 아이에게 웃으며 말한다.
"이쯤 되면 수송선이 왔을 텐데. 돌아갈 때가 되었어. 알지? 돌아갈래?"
아이가 내 손을 꼭 붙잡는다. 아이의 왼손에 뭉쳐있는 전사자의 이름표를 대신 받아든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돌아간다.
***
"괜찮아?"
정신을 차리니 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세상이 나에게 부과한 과업을 해결해준 언니. 해결사.
"레나, 레나 언니."
어떻게 언니를 잊어버릴 수 있지? 내 인생의 해결사인 그녀를 어떻게 이리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었을까.
기억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언니가 나에게 장난을 치던 기억, 그런 언니의 장난에 나도 모르게 웃고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언니와 가까워지고, 마치 숨을 들이쉬듯 언니에게 사랑한다 고백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나 대신에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언니.
"미안해, 미안해. 잊어버려서 미안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조바심 갖지 않아도 돼. 왜 이렇게 일찍 기억해냈어."
언니가 나를 꼭 안아준다. 손가락으로 나의 눈가를 쓸어준다. 조용히, 언니가 한숨을 쉬는게 느껴진다.
*
한참을 울었을까, 고개를 들자 언니가 그때처럼 씩 웃는다.
"이제 마지막이야. 돌아갈 때가 되었어. 알지? 돌아가고 싶어?"
같은 질문.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언니의 눈동자는 살짝 떨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니를 믿는다. 그렇기에 언니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응. 돌아갈래."
또 잃어버렸나? 낙담해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자기, 나 찾고있어?"
그리고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가워 그녀에게 달려가다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무의식중에 걸려 넘어진 것을 돌아본다.
불에 탄 시신 한 구, 시신이 쓰고 있던 헬멧에 인쇄된 오버워치의 마크.
치지직, 거리며 다시 헤드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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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던 거야.>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내가 잘못한거야.>
<자기 잘못이 아냐.>
<내가 좀 더 나섰어야 했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자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있더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고.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
<하나야, 이렇게 하자. 자기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구할게.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은 그냥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인거야. 내가 책임질게.
나는 해결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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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 끝나고 모두가 수송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장난을 칠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꼬맹이가 보이지 않으니 괜히 불안해져 여기저기 보이는 돌격조 요원마다 물어보고 다녔다.
토끼는 돌격 A조, 이번 작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조였다. 설마 애가 다치진 않았지? 사상자 목록에 아이가 없다는걸 알고 막사 주변을 뒤지던 내가 아이를 찾은 곳은 막사의 구석, 전사자들이 누워있는 곳이었다.
전사자들의 군번줄은 의병대가 챙겨갔다. 그들의 사이사이에서 아이는 물끄러미 전사자의 얼굴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장난을 칠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등이 너무 진지해보여 결국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나야…"
"나만 싸웠으면 죽을 일이 없었을텐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 아무리 한국에서 최고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나봐. 제일 빠르고 제일 강한 내가 모두를 지켰어야 했는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군생활이 그녀에게 어떤 세뇌를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든 이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장기간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이것을 받아들이려 할까.
아니, 내가 애초부터 그녀의 마음 속으로 이 이상 들어가도 될까.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내가 여기서 발을 떼고 이 일을 앙겔라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일이리라.
하지만 아이의 눈에 있는 절박함. 당당한 아이가 내 앞에서 드러내는 연약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내가 잘못한거야."
"자기 잘못이 아냐."
"내가 좀 더 나섰어야 했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자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있더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고.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멍한 아이의 입에서 '내가 가장 강한… 최고의…' 등의 수식어가 나온다. 그녀의 우수함 그 자체가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잡는다. 그녀가 그렇게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고 다니는 이유였던, 어깨에 온통 짊어지고 있던 짐을 대신 덜어주기로 한다.
"하나야, 이렇게 하자. 자기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구할게.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은 그냥 내가 구하지 못한 목숨인거야. 내가 책임질게.
나는 해결사잖아."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 알지? 하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어준다.
소녀의 눈이 떨린다. 또르륵, 하고 볼로 눈물이 흐른다.
이제서야 어깨가 무거웠다는걸 알게 되었다는 듯, 아이가 내 품에서 엉엉 운다.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아이는 누군가를 향해서 계속해서 사과를 한다.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인다. 아이의 무게만큼 가슴이 묵신함을 느낀다.
한참 아이를 울게 내버려두고 난 후, 아이에게 웃으며 말한다.
"이쯤 되면 수송선이 왔을 텐데. 돌아갈 때가 되었어. 알지? 돌아갈래?"
아이가 내 손을 꼭 붙잡는다. 아이의 왼손에 뭉쳐있는 전사자의 이름표를 대신 받아든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돌아간다.
***
"괜찮아?"
정신을 차리니 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세상이 나에게 부과한 과업을 해결해준 언니. 해결사.
"레나, 레나 언니."
어떻게 언니를 잊어버릴 수 있지? 내 인생의 해결사인 그녀를 어떻게 이리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었을까.
기억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언니가 나에게 장난을 치던 기억, 그런 언니의 장난에 나도 모르게 웃고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언니와 가까워지고, 마치 숨을 들이쉬듯 언니에게 사랑한다 고백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나 대신에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언니.
"미안해, 미안해. 잊어버려서 미안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조바심 갖지 않아도 돼. 왜 이렇게 일찍 기억해냈어."
언니가 나를 꼭 안아준다. 손가락으로 나의 눈가를 쓸어준다. 조용히, 언니가 한숨을 쉬는게 느껴진다.
*
한참을 울었을까, 고개를 들자 언니가 그때처럼 씩 웃는다.
"이제 마지막이야. 돌아갈 때가 되었어. 알지? 돌아가고 싶어?"
같은 질문.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언니의 눈동자는 살짝 떨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니를 믿는다. 그렇기에 언니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응.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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