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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COMA - Epilogue

"이 시간부터 부지런하네요." 


"응, 자주 주물러주는게 좋다고 그랬잖아.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해야지."

앙겔라가 살짝, 문을 열며 아침인사를 한다. 앙겔라가 정신을 깨우는 향긋한 커피 냄새와 함께 온걸 보면 긴 얘기를 하려 온 듯 하다.
그래서 손을 떼고 이불을 잘 여며준 후에 쇼파로 가 앉는다.

"레나, 위에서 임무가 나왔어요."

이걸 전하게 되어 미안해요. 앙겔라가 나에게 서류를 건넨다.

"뭐, 앙겔라의 과학적 소견과 함께 얘기를 들으면 맘이 바뀔거라 생각하나보지.
내 대답은 알지?"

"그래요, 일단은 당신의 뜻을 존중할게요 레나."

일단은, 이라고 앙겔라가 강조한다.

"당신도 알고 있듯, 그녀가 언제 돌아온다고 보장 할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 돌아올수도 있고... 이대로 쭉 저편에 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레나, 당신도 그걸 잘 생각하세요. 앙겔라가 나에게 조언을 하고 나간다.


*


그래, 그렇다는 거지.
나는 다시 이불을 젖히고 하나의 온 몸을 마사지한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최대한 회복이 빠르길 기원하며 손 끝부터 발 끝까지 그녀를 어루만진다.

"자기가 돌아오면 나에게 엄청 부끄러워하겠다."

잠을 자는 하나에게 얘기한다.

"내가 당신 엉덩이에 점이 몇 개인지, 어디에 박혀있는지 외울 정도거든. 언니 변태! 하면서 나에게 주먹질을 할지도 모르겠어. 근데 뭐, 이건 의료적 행위니까 나는 떳떳해."

마사지가 끝나고 그녀의 손톱과 발톱, 머리를 정리한다.

"나는 엄청난 고급 인력이지만 비용을 따로 청구하진 않을게. 자기 머리를 이렇게 한없이 만져보고 입술을 쓸어보는것으로 나는 만족해."

오늘 할 일이 끝난 나는 이제 하나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잠자는 주문에 빠진 토끼의 손을 잡고 주문을 외듯 얘기한다.

"그러니까 돌아와줘. 자기가 거기서 날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늘 자기가 하던 바보짓을 하고 있겠지. 지키지 못했다고 울면서 자기를 탓하고 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어. 괜찮아, 자기. 괜찮아. 나는 해결사잖아?"


***


"죄송해요. 제가 더 단호했어야 했어요,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어요. 죄송해요.
미안해 언니. 나 때문에…
다 지켰어야 했는데, 내 탓이야. 죄송해요. 죄송해요."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은 듯 하다.
눈 앞의 참상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염없이 그들에게 사과한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눈 앞의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내가 더 빨리 작전을 생각했다면, 아니 해킹을 당한걸 알자마자 내가 수동으로 자폭 시퀸스를 가동했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을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지켜주던, 나를 사랑해주던, 그리고 내 짐을 대신 짊어진 언니가 떠나버렸다.

부서진 고글 잔해를 꼭 쥔다. 그 아픔으로 어깨 위에 다시 올려진 짐을 잊으려 하지만 죄책감으로 숨이 막힌다.

원래 내가 감당하고 있던 책임감을 반 덜어갔던 사람의 부재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 무게만큼의 눈물이 시간 가속기의 잔해 위로 떨어진다.


*


고글의 유리가 부서져 바닥에 떨어진다. 까끌까끌한 유리의 표면을 만져본다.
내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후회와 슬픔, 죄책감이 뒤섞인 이 가슴의 고통을 멈추게 할 한 가지 방법.

부들거리며 소매를 걷는다. 그리고 유리를 손목에 댄다.

---나는 여기에 있어, 괜찮아.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려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에 흐려진 시야를 고개를 털어 닦아낸다.

보일 리 없는 것이 보인다. 손목에 몇개고 그어진 손목의 상처를 보며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나 생각해본다.

---나는 해결사잖아, 내가 책임질게.

등에 언니의 가슴이 닿는듯한 촉감이 느껴진다. 죽기 싫어서 내 뇌에서 만든 환각일까.
하지만 환청으로라도 들은 그 목소리는 내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착각이 든다.

---내가 책임질게.

언니는 왜 그렇게 버릇처럼 나에게 그 말을 해줬을까. 실제로는 언니의 책임이 아니잖아.

---이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뭐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가장 강한 병사인데, 내가 지키는게 당연한거 아냐?

---최선을 다 했으면 그걸로 된거야.

새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언니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언니와 내가 동시에 나에게 말하고 있다.

최선을 다 했으면 된거야?
처음으로 든 생각에 혼란스러워 멍하니 있는다. 그저 멍하게, 멍하게 내가 눈물을 떨어뜨린 시간 가속기의 잔해를 본다.

천천히 손가락으로 잔해를 훑어본다. 모래먼지와 검뎅만이 묻었을 뿐 깨끗하다.
그래, 피나 살점같은 것이 없다.

사고의 현장을 차분히 생각한다. 언니가 나를 메카에서 꺼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마을 한 가운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마을과 꽤 떨어진 곳 아니었는가. 그래, 내 작전으로 메카는 마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마을과 언니를 모두 없앴다고 생각한건 나 자신, 나의 죄책감.

최선을 다 했으면 됐어.


**


고개를 든다.

구덩이 앞에, 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몇번이고 고꾸라진다. 어깨가 무거워  몸을 일으킬 수 없다.

"...언니, 도와줘."

이를 악물며 무릎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일어난다. 일어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고글의 유리를 떨어뜨린다.

문고리를 잡고 숨을 한번 들이쉰다.
언니, 도와줘.


***


책을 읽고 있었다. 밖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쳐 책을 덮고 창문을 닫았다.
하나의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 머리를 넘겨주는 그 때, 바람을 타고 온 듯 하나가 눈을 떴다.

"자기, 돌아왔어?"

마치 오늘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돌아왔어, 언니. 고마워."

그리고 그녀도 모든걸 알고 있다는 눈으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마른 손을 뻗어 그녀가 내 얼굴을 쓸어주자, 그제서야 눈물이 한두방울 하나의 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차 올라 양 옆으로 흐른다.

"불러줘서 고마워. 알려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듣는 감사 인사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겨우 한 마디를 꺼낸다.

"고맙긴. 나는 해결사잖아. 내가 다 해결해줄게."


***


미망인의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집 밖으로 나온다. 더운 날씨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언니는 안 더워?"

뒤로 고개를 돌리고 언니를 보며 묻는다. 언니의 턱 끝에 땀이 맺혀 있어 잠시 멈춰달라 하고 손수건으로 언니의 얼굴을 닦아준다.

"잠시 쉬었다 가지 않을래?" 나는 나무 아래를 가리키며 언니에게 권한다.


***


"힘들지 않아? 좀 더 회복하고 나와도 될텐데."

하나가 휠체어에서 기지개를 펴는걸 보며 나는 묻는다. 아직 병원에서 재활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오버워치의 의장복을 입겠다 고집을 부렸다.

''내가 책임을 진다 말 했잖아." 혼자 가겠다는 그녀의 고집을 꺾은 결과가 바로 이것, 나도 의장복을 입고 함께 조문을 다니는 것이다.

"괜찮아. 오히려 바깥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좋은걸?"

아이는 날 보며 생긋 웃는다. 손을 뻗어 바닥에 주저앉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잡아 볼에 부빈다. 뼈만 남아있던 손목에 어느정도 살이 붙어 기분이 좋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휴식을 즐긴다.


그 임무에서 마을은 건물 피해만 입었을 뿐 죽은 사람은 없었다. 단지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다 몇몇의 요원이 순직했을 뿐이다.

---

나 혼자서 다 하는게 아니었더라고. 모두 함께 도와주고 있었어. 덕분에 가벼워졌어.
모두가 책임을 나눠지고 있어, 그 감사함을 전해야 해.

---

저 편에서 뭘 보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더 깊은 눈을 하고 온 하나는 차분하게 날 설득했다. 
하나가 재활을 마칠 때까지 그 순직한 요원들의 가족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내가 전하려고 한 마음을 알아채준 그녀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물을 마시며 와아, 덥다. 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다 가슴이 벅차와 코 끝이 찡해진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일어나 그녀에게 깊게 입을 맞췄다.

"뭐 하는거야, 변태 언니."

하나가 나를 보며 입을 비쭉인다. 눈은 웃고 있는걸 보면 솔직하지 못한 꼬맹이인건  여전하구나.

"그냥, 사랑스러워서. 사랑해 하나야, 고마워."

볼을 감싸쥐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나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엇, 하는 사이에 넥타이를 끌어당겨져 고개를 숙인다. 이번에는 그녀가 내 뒷목에 손을 대고 깊게 입을 맞춰준다.

"나도 사랑해 언니. 고마워."

그렇게, 무더운 날 나무그늘에서 한참 우리는 입을 맞춘다.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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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망고도도(@_mangooooooo)님의 그림에서 얻은 느낌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림1

그림2

그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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