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영어 대화
[ ] : 한국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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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정말 여기 놀러가고 싶어?"
언니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제발 윈스턴 아저씨의 발명품을 이런 쓸데없는 감정표현에 써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고 물으니 한국 팬에게 선물과 함께 한국에 온다면 이 곳을 꼭 놀러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팬이 뭘 보냈나, 하고 살펴보니 한복이다. 언니 치마도 입어? 하고 물으니 못 입을것도 없지. 라고 대답한다.
저고리 위에 시간 가속기를 입으면 예쁘지 않을텐데... 라고 잠시 생각하는데 그새 참을성 없는 언니가 호텔의 바닥을 뒹굴고 있다.
[가볼래~ 민속촌~ 여기! 여기! 주세요~ 옥레나 민속촌~]
"알았으니 일어나, 언니. 그 한국말은 어디에서 배운거야?"
"응? 한국어 교본이랑 자기가 나온 드라마랑 유튜브. 그리고 이거, 팬이 줬어!"
언니의 책상에서 스티커 있는 곳만 풀어진 한국어 교본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래서 저렇게 짧구나.
나중엔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하는데 언니가 주머니에서 짠, 하고 뭔갈 꺼낸다.
팬이 보낸 것일까. 주민등록증에 언니의 사진과 옥래나(玉래나)라고 써져 있다. 역시 한국 팬들은 쓸데없는 곳에 정성스럽다.
"그래, 가보자. 근데 나는 한복 없는데 괜찮겠어?"
"아냐, 자기것도 보내줬어. 그냥 가면 될거야."
준비성이 철저한 팬이구나.
이번 가을 휴가에 언니와 어디에 갈까 고민하다가 온 한국, 언니는 한국에 온다는 것을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렸고 많은 팬들이 관광할 여러 곳을 추천해줬다.
그래서 언니의 뜻을 존중해 언니가 가고자 하는 곳 위주로 관광을 다녔다.
오늘, 언니의 선택은 민속촌.
단순히 옛날의 건물만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용해 과거의 사람들이 살던 모습까지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 곳이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이 직원들이 벌이는 다양한 돌발 이벤트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이 곳을 가길 주저하는 이유도 이 돌발 이벤트 때문이다.
교란을 전문으로 하는 요원이 아니랄까봐 돌발적인 상황에 더 사람을 당황시키는 돌발적인 대응을 하는 언니가 대체 뭔 짓을 할 지 짐작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여기를 가면 언니는 엄청난 일을 벌일 것이다. 언니의 팬들이 만든 영상들이 유튜브에 엄청나게 올라오겠지. 그래도 언니의 저 강아지 같은 눈을 보면 거절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언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또 나도 언니의 그 돌발적인 행동이 매우 재미있으니까.
**
탈의실에서 옷을 보고 매우 놀랐다. 언니의 팬이라는 분이 손으로 한땀한땀 만드셨는지 꼼꼼한 바느질 솜씨에 처음 놀랐고, 고운 색감에 한번 더 놀랐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댕기를 따고 토끼 모양 노리개와 복주머니에 머리 장신구까지 착용했다. 정말 손을 많이 들였을텐데, 이걸 무상으로 선물한 팬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거울을 보자 연한 노랑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있어 예전에 찍은 사극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밖엘 나가자 언니가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의 가속기 빛과 전투복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거기에서 착안한 색의 한복을 입은 언니가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도포와 갓, 아무리 봐도 남성 한복이다. 도포의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시간 가속기를 보자 아아, 하고 이해가 되었다.
시간 가속기를 착용하려면 저고리가 딱 붙는 여성 한복보다는 남성 한복이 조금이나마 맵시가 있으리라.
언니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계단 위의 나에게 와 손을 내밀었다. 넉넉한 도포 때문일까, 언니의 희고 가는 목과 손목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아래에서 손을 내미는 언니의 모습은 진지해서 마치 책을 읽던 선비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 함께 가지.]
장난스러운 얼굴을 찡긋거리며 이상한 말을 하자 그제서야 내가 알던 언니와 같아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가슴이 내심 두근거렸다.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운거야?"
"직원들이 알려줬어. 이렇게 하면 네가 좋아할거라는데. 별로야?"
"[부인]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하는 말이잖아. 언니도 여자인걸?"
"그럼 자기도 나를 [부인]이라고 부르면 되지. 나랑 결혼하는거 싫어?"
뜬금없는 질문에 말이 막힌다. 내가 말이 막히자 언니는 풀이 죽었는지 입을 내민다.
풀이 죽어 입을 내미는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다 갓 때문에 대신 볼을 쓰다듬어준다. 대신 대답을 들었는지 언니가 볼에 있는 내 손을 잡고 아이처럼 헤헤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언니의 손을 잡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민속촌으로 들어간다.
***
역시 연휴 때문인지 민속촌 안에 사람들이 적진 않았다.
사람들은 금새 우리를 알아봤는지 사진을 찍어대고 사인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떨어져 각자의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사인을 하면서 틈틈히 하나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비해 하나는 팬 한명한명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유명 연예인 출신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심 서운해하던 그 때, 하나와 대화를 하던 노부부의 말이 들렸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 삼으면 좋겠네.]
며느리? 아들의 부인?
한국말을 잘 할수는 없지만 귀에 꽂힌 통역기 덕분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수는 있었다.
어디, 내가 공들여서 사귀고 있는 애인을 사인 한번에 데려가? 사인을 하다 말고 휙하니 뛰어 하나의 옆구리를 끌어안았다.
주변에서 내가 능력을 사용한걸 보며 와, 하는 탄성이 들렸다.
"언니! 내가 가속기 함부러 사용하지 말랬잖아!" 하나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노부부를 노려본다. 부부는 재미있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흥, 하나는 내꺼라구! 나는 혀를 쏙 빼물고 싶은 마음을 참고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하나, 내꺼!]
[아이고, 외국인이 한국말도 잘 하네. 네꺼라고? 근데 누구여?]
줌치를 열고 그럴때를 대비해 준비한 것을 꺼낸다.
[안녕하세요, 옥래나에요. 하나 내꺼에요. 미안해요. 내꺼에요.]
내가 할 수 있는 한국어를 모두 동원해 친절하게 노부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근데 요 꼬맹이가 내 계획을 막는다.
[어머, 아드님 사진을 한번 보고 싶네요.]
노부부는 흔쾌히 휴대전화에서 아들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셋이 묘하게 나를 보며 웃는 것이 장난임을 알게 한다. 하지만 속이 배배 꼬이는건 어쩔 수 없다.
결국 나는 멋진 옷을 입고 하나 앞에서 떼를 부린다.
[아냐아! 우리 하나! 내꺼! 사랑해줘 감사합니다! 근데 미안합니다! 하나 내꺼! 여기! 여기!]
하나를 꼭 안고 빽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서 와, 하고 웃는다. 몇몇 사람들은 동영상 촬영을 하는지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하나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하고 다시 한번 외친다.
[하나 내꺼!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를 끌다시피 해 자리를 빠져나온다.
*
"에이, 언니 장난이었어. 응? 장난."
하나가 나를 달랜다. 장난인건 알지만 그래도 토라진 마음이 풀어지지 않아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관광객들이 우리를 계속 찍는다는걸 알지만 삐진건 삐진거다.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하나가 벤치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선 매점으로 들어간다.
분홍 치마를 나풀거리며 달려가는 하나의 모습이 예뻐 볼을 부풀리는걸 잊고 뒷모습을 바라본다.
단풍을 배경으로 바람에 치마가 나풀거리는게 책에서 읽은 한복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났다. 그대로 하나가 매점에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본다.
"자, 이거 먹고 화 풀자. 응?"
하나가 건넨건 막대에 꽂힌 울퉁불퉁한 튀김이었다. 케첩과 머스타드 소스가 잔뜩 발린 그것을 한 입 크게 베어문다.
소시지 위에 두툼하게 밀가루 반죽과 감자튀김을 두른 것, 하나의 말로는 한국식 핫도그라고 했다.
한국인들은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을 한다. 생각하며 허겁지겁 핫도그를 먹는다.
"소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응?"
하나가 옆에서 내 도포자락을 잡아주며 먹는걸 도와준다. 어이구 우리 언니 잘 먹네, 라고 등도 토닥여준다.
뭐, 음식이 맛있으니 기분도 금새 풀린다.
"언니 볼 부풀린게 귀여워서 그랬어. 에이, 그 남자 늙어서 별로더라. 나는 언니가 제일 좋아."
입술에 묻은 소스를 날름거리고 있으니 하나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주며 남자의 흉을 본다.
그만 했으면 화를 풀어도 되겠다, 싶어 일어난다.
[하나 나빠! 문디 가스나!]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해야겠다 싶어 툭 던진다. 내가 장난을 치면 하나가 꼭 붙이던 말, [문디 가스나].
내 말을 듣자 하나가 일순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허리를 접어가며 웃는다.
"아아, 언니 그 말 어디서 들은거야." 내 말이 그렇게 웃긴지 하나가 엄청나게 웃는다. 주변 사람들도 엄청나게 웃는거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기분이 상쾌해져 하나에게 손을 내민다. 가자, 하나야.
그리고 우리를 보던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내 손을 잡는다.
[아이구 나으리! 한 푼만 적선해줍쇼!]
산발한 머리에 얼굴엔 검뎅을 칠한 남자, 비록 한국의 전통 옷을 입었지만 누구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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