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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센티넬버스 AU) Present - 6

이 글은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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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가 나는건 네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 아냐."

가을볕을 등지고 앉은 소년의 아버지는 평온한 어조로 조곤조곤 소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오늘 학교는 어땠니?'라고 묻는 자상한 아버지의 웃음을 띈 그의 입가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서재의 큰 창으로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볕을 쬐는 소년은 빛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한 듯 새파랗게 얼어있었다.
몸은 최대한 뒤로 뺀 것이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은듯 보였으나, 뒷짐 진 손이 그런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 동양 출신의 돌연변이를 뒤에서 습격한건 아주 잘했어. 가이드가 센티넬의 뒤에 숨어서 있었던 것은 옛날의 이야기지.
같은 센티넬-가이드 페어의 싸움이 된다면 상대 가이드의 목숨을 빼앗아 적 센티넬이 네 센티넬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게 현명한 전술이야."

"하지만..."
창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중년 남성은 소년의 눈을 마주봤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소년을 바라보는 남성의 눈은, 마치 그의 양복깃에 매달린 의원 뱃지처럼 차가웠다.

"너와 네 센티넬이 그 장애인에게 졌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

신문을 내려놓은 남성은 손 끝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자신과 상대 당의 당대표가 웃으며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야의 극적인 화해.>

"이 사람이 자신의 딸을, A-급 가이드인 딸을 B급 가이드인 내 아들에게 주도록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잊지 마렴."

"우리 집안은 유서깊은 가문인거 알지?"
남성은 사진 속에서 지었던 온화한 미소를 건네며 아들과 악수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있을 당 대표 교체와 관련된 회의에 나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소년은 아버지가 나간 뒤에도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 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치약을 들어 손 끝에 치약을 짠다. 손 끝에 적당히 묻은 치약을 칫솔에 바르고는 이를 닦는다. 치약이 묻은 손은 수도꼭지 아래에 대고 물로 씻는다. 양치컵을 들더니 검지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컵 안으로 걸쳐넣더니 물을 받는다. 적당히 받은 양칫물로 입 안을 헹군다.
세면대 바닥에 손바닥을 대 손등으로 물높이를 가늠한다. 물 나오는 소리가 시끄러운 틈을 이용해 몰래 폼 클렌징이 있던 곳에 다른 화장품을 놓는다.
자연스럽게 언니의 손이 화장품을 집어든다. 집어들더니 고개를 한번 갸웃 하고는 나에게 손을 뻗는다.

"내놔."

"참 귀신이야, 어떻게 알아맞췄어?"

"냄새만 맡아도 알지. 자기 장난에 호응해주느라 이거 한 번 들어준거야."

눈을 감은 채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 언니에게 폼 클렌징을 건네준다. 씻을 때에는 선글라스를 벗을 것이고, 그러면 눈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눈을 감으면 되는구나.
언니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말린다.
대충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나가려는 언니를 붙잡는다. 지금 그 꼴로 나가려고?

"일부러 그렇게 머리를 하는 줄 알았더니 자연으로 그렇게 뻗치는 거였구나."

"응. 나름 괜찮지 않아? 말 그대로 '트레이서' 스럽잖아."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모습을 알아요, 나는 롤빗과 드라이기를 들고 언니 앞에 선다.

"응, 그래도 내가 오늘 언니를 단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줄게요."


**


"언니, 정말 그 모습으로 가게?"

"왜, 이상해?" 내가 역으로 던진 질문에 "그건 아니지만...." 하고 아이가 말꼬리를 늘어뜨린다.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리는게 수상하다.

"솔직히 말해봐. 어떤데 그래? 바보같아?"

"바보같긴! 많이 단정해졌어. 차분해 보이고.... 음... 그래! 어려보인다! 어려보여, 엄청!"

언니 임무에 늦겠다, 나도 학교 가야하고. 하나가 내 등을 밖으로 떠민다. 나는 지팡이, 하나는 가방. 하나는 걸어서 학교에 가고 나는 임무를 위해 기관에서 보낸 수송 차량을 탄다.

"공부 열심히 하고, 딴 짓 하지 말고. 싸우면 꼭 이겨!"

"그게 언니가 동생에게 해 줄 말이에요? 언니야말로 오늘 다치지 말고 무사히 다녀와요. 7시 전에는 올 수 있죠?"

하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손을 흔든다. 아이의 가벼운 발소리가 멀어져가는걸 듣는다. 발소리가 중간중간 멈추며 '어서 가요! 늦겠어!'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릴때마다 나는 손을 크게 흔들어준다.

징계 덕분이다. 하나가 학교에서 징계로 근신 3일을 받는 동안 확실히 우리 둘은 친해졌다. 특히 그녀가 신기해 한 것은 시각장애인인 내가 어떻게 무리 없이 생활을 하느냐였다.
그리고 내가 보여주는 생활하는 모습에 하나는 정말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그녀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센티넬이 아니라 레나 옥스턴으로서 처음으로 받는 관심이 부끄럽기도 했다.

수송 차량에 타려는데 뒤에서 하나의 발소리가 들린다.

"잠깐 언니!"

응? 하고 뒤를 도니 하나가 나에게 어꺠동무를 한다.

"45도 위를 바라보고. 예쁘게 웃어요, 까꿍!"

까꿍(Peekaboo!)? 그게 뭐야. 내가 애야? 피식, 하고 웃으니 어이구 우리 언니 잘했어요. 하고 엉덩이를 톡톡 두들긴다.

"오늘 언니 머리 되게...되게 웃기니까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 싶어서요." 하나가 한참을 깔깔 웃더니 진짜 가요, 하고 저 멀리 뛰어간다.
 그녀가 내 곁에서 떨어지는게 괜히 불안하다. 임무를 하고 돌아오면 분명히 집에 있을텐데... 그래도 불안함을 억누르기 힘들다.

"하나야!"
결국 "그녀"가 알려준 방법을 사용한다.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은지 꼭 문자 보내줘! 재료 사 가게!"

"같이 사러 나가요! 먹고 싶은 과자도 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차 문을 연다. 그래. 오늘 저녁도 하나와 할 수 있어. 응 괜찮아.
차에 타자 운전기사가 풋 하고 웃는다. 어때요, 귀엽지 않나요? 처음으로 농담을 해 본다. 운전기사가 내 농담에 맞장구를 쳐 준다.
그렇게, 처음으로 운전기사와 대화를 하며 임무 현장으로 나간다.


***


"얼굴이 좋아 보이네. 3일동안 즐겼나보지? 누구는 자기 때문에 집에서 욕이나 먹고 그랬는데 말이야. 이래서 부모 없는 것들은 안돼. 수치라는걸 모르거든."

질투, 부서진 자존심은 말의 가시를 더 날카롭게 했다. 점심을 먹고 온 하나는 교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질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자신의 자리가 없어졌다. 책상과 의자 모두가 다 사라진 상태였다.
가만히 자신의 의자와 책상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는 하나에게 렉스는 더 크게 웃었다. 빅터는 하나의 책걸상을 가지고 나간지 오래이다. 아마 학교 뒤 소각장에서 그걸 조각내고 있을 터였다.

"원래 부모도 없는 거지였잖아. 앉아서 공부해도 되지 않아? 애초부터 공부가 필요 있나? 변태 센티넬에게는 적당히 몸만 갖다 대면 되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는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렇게 더러운 말로 언니와 날 모욕하지 마. 정말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가슴이 아플 정도인데 그런 말로 그 사람을 더럽히지 마.
화가 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여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던 하나조차도 목 아래까지 차고 올라오는 화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 아래까지 뜨겁게 달군 바늘들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바늘들이 성대를 콕콕 찔러서 어깨로 숨을 쉬게만 하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못하고 사람만 치는데?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는게 부끄럽긴 한가 보지? 치고 싶으면 한 대 더 치던가."

더 이상의 징계는 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더 듣게 할 뿐이다. 기분 나쁘게 하는 대상은 없애는 것이 낫지. 이 교실에 있는 누구라도 이 돌연변이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은 없다. 아들이 학교에서 맞았다는걸 알면 아버지도 그에 걸맞는 대응을 하실 것이다.
하나가 손을 한번 더 들어올리는 것을 보며 렉스는 한 마디를 더 했다. 이건 그가 집에서 근신하는 3일동안 조사한 자료이다. 이걸 말한다면 그녀조차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자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잖아. 너는 그 장애인에 대해서 뭘 알아? 그게 너랑은 그저 몸만 섞고 싶다는 소리 아ㄴ..?!"

바늘들이 모두 녹아 뜨거운 쇳물이 되었다. 하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것.

'왜 언니는 나에 대해서는 다 알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말해주질 않지?, 언니는 어떤 사람이지?, 그 선글라스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언니는 왜 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 같지?'

왜 만난 지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얻지 않았을까. 그것이 뜨거운 쇳물이 되어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렉스는 그것에 대한 최악의 이유를 댈 것임에 분명했기에 그의 입을 막으려면 손을 들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뺨을 맞은 그가 다시 입을 열기 전에 한번 더 손을 올렸다.
그리고 분명히 손을 내리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손은 단단한 벽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자신의 등 뒤에서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손에 잡힌 손목이 천천히 위로 끌려올라갔다. 발 끝이 땅에 닿지 않게 끌려올라가자 팔 하나로 지탱되는 무게 때문에 어깨죽지가 찢어지듯 아팠다.
옆에서는 렉스가 빅터의 팔을 잡고 있었다. 가이딩은 이미 진행되었을 터였는데. 왜 빅터는 나를 내려놓지 않는거지? 하나는 렉스의 입을 바라봤다. 렉스는 얼어붙은 듯 빅터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죽여버려, 빅터."

이 말을 끝으로 하나는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그것도 잠시, 온 몸에 통증이 내달렸다. 얼마나 되는 학교의 기물에 부딪혔는지, 자신이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 인지할 수가 없었다. 단지 흐린 시야의 저 편에 표정이 없는 렉스와 심상치 않은 기색의 빅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이 느껴졌다. 

"네 마음대로 해."
렉스가 빅터에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언니가 보고싶다. 언니라면 저 괴물을 막아줄텐데.


***


레나의 임무는 비교적 수월한 것이었다. 그녀가 주로 참여하는 임무는 포로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임무였다. 앞이 안보이는 레나는 피아구분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에서는 특별히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음역대의 음을 내는 장치를 아군에게 부착시켜줬다.

그녀는 다른 센티넬과는 다르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한 그녀는 등을 돌리거나 시간을 가속해 도망가는 순간에도 적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리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그녀의 부모처럼 되겠지.
그렇기에 그녀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웠다.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적의 공격을 한 번 받은 후 공격을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녀는 대부분의 센티넬들이 그렇듯 다른 센티넬들과 그리 친한 관계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녀와 친한 센티넬이 있었다.
윈스턴도 레나처럼 누군가를 죽이는걸  좋아하지 않는 "별종" 센티넬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손으로 적을 죽이기보다는 그가 앞서 나가 적의 총탄을 대신 맞고 적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적진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적을 혼란시키는 윈스턴과 적들의 배후를 치는 레나, 그들은 뜻이 맞았으며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둘이 함께 하는 임무는 훨씬 수월하게 끝낼 수 있다.

오늘도 평소와 똑같은 임무 중 하나였다. 그녀는 빠른 시간 내에 그녀가 거둬가야 할 목숨들만을 앗아갔다.

"레나, 머리가 아침과는 사뭇 다른데? 점점 더 뻗치는거 같아. 그래... 지금 상태는 양아치가 되기 전의 고등학생 같다고 할까."

옆에서 윈스턴이 웃으며 레나에게 장난을 친다. 오늘 레나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대체 뭐야, 어디서 그렇게 단정한 머리를 하고 온 거야.' 하고 말했다.
하나의 머리 손질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그녀의 머리의 자유분방함은 하나의 손길에 거세게 저항했다. 결국 오늘 오후가 되기 전에 단정했던 머리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의 장난을 웃어 넘기며 레나는 휴대전화를 연다. 음성메세지가 여러개 남겨져 있었다.

"레나, 무슨 일 있어?"

임무 일지를 작성하던 윈스턴이 코 끝에 안경을 걸친 채 레나를 바라본다. 새파래진 레나의 얼굴을 처음 보는 윈스턴은 지금 그녀의 상태를 의무관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하나가 다쳤다고 해. 수송차량... 가장 빠른게. 아니, 아냐."

허둥지둥하는 그녀의 모습은 푸른 빛만을 남긴채 금새 사라졌다. 여태 찾던 가이드를 드디어 발견했다더니.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윈스턴은 레나의 서류도 집어든다.


***


오자마자 나는 유리로 된 방에 갇혀졌다.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흥분한 센티넬에 대한 조치는 일단 격리되는 것이다.
유리로 된 방 저 편의 보건실에서는 하나가 응급조치를 받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녀가 만져질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 그녀가 있을 건너편 유리벽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하나의 손이 아니라 차가운 유리 뿐이었다. 연구소에서 구급차가 곧 도착한다고 한다.

반대편 유리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쪽에 하나를 다치게 한 아이들이 있다. 하나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를 가지고 있던 가이드가 똑같은 마음을 가진 센티넬의 감정에 휘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센티넬이 폭주하려는 것을 진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방관해 폭주(Code black)의 직전 상태(Code gray)까지 갔다고 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보안요원들의 총구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우스운 것들이다. 내가 복수심에 가득 차서 지금 눈 앞의 벽을 부수기라도 할까 싶은가보다. 하지만 폭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저들을 아무리 죽여봤자 하나의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레나."

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은 독한 진통제와 진정제를 투여한 터라 그녀는 잠들어 있어요. 연구소에 가면 즉시 수술을 시행할 거에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회복에 꽤 시간이 걸릴 거에요. 부상이 경미하진 않아요."

"그녀 옆으로 갈 수는 없나요?"

"안돼요. 당신은 지금 Code red 상태입니다. 당신을 여기에 부른건 단지 수술동의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어요. 일단 그녀의 보호자는 당신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녀가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들어 그녀의 안내에 따라 종이의 한 구석에 서명을 한다.
유리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들것에 그녀가 실려서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내가 하나의 보호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하다못해 그녀의 손도 잡아주지 못한다. 그저, 그녀 옆 방에 갇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듣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없어지면 내가 또 예전과 같은 상태가 될까 두렵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몸에도 그대로 나타나는지 팔찌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진정해요. 당신이 조금 더 진정하면 하나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내 말 믿어요."

진정하려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이로 씹는다. 피맛이 입에 퍼진다. 하지만 아픔 덕분에 불안함이 덮어진다.

-조금만 꼭 참으면 내가 올거에요. 눈 감으면 금방인 시간이에요.-

그래, 하나는 나와 같은 시간에 있어. 그녀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지금까지 잘 참아왔잖아.

앙겔라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요, 진정해요 레나. 같이 하나가 있는 곳으로 가요. 앙겔라가 나의 팔을 부축하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