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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센티넬버스 AU) Present - 7

이 글은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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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을 붙잡히면서 손목뼈가 부서졌다. 그리고 인형을 던지듯 손목을 잡은 그대로 던져지면서 반대쪽 팔과 다리 등에 일어난 다수의 골절이 있었다. 확실히 치료하기 쉬운 부상은 아니다. 아마 몇 달은 양쪽 팔을 쓸 수가 없을 것이리라.

하지만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연구소에서 최근에 개발한 새 의료기술은 "적어도" 골절된 뼈 만은 금방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마 수술이 끝난 지금은 뼈가 붙어있겠지.
문제는 갑자기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강한 힘으로 내던져지느라 으스러져버린 어깨의 관절이었다.. 현재의 의학기술로도 그녀의 어깨관절이 다시 재생되기까지는 몇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그 동안 그녀는 한쪽 어깨를 쓸 수가 없다.

막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들어간 하나의 상태를 파악하던 앙겔라의 생각은 보호자 대기실에 서 있던 레나를 보자마자 중단되었다.
아무리 센티넬이라 해도 너덧시간 이상 걸리는 대수술 앞에선 지칠 터였다. 하지만 수술실의 입구를 향해 선 그녀의 모습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치글러,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요?"

석상처럼 움직임 없이 서 있던 레나를 부르려 한 앙겔라보다 먼저 레나가 그녀를 불렀다. 레나는 가이드가 다쳐 미쳐 날뛰는 여느 센티넬들과는 달랐고, 오히려 그런 점에서 더 위험해 보였다. 조용히 그녀를 부르는 레나를 보며 앙겔라는 오래 전 교수님 앞에 선 햇병아리 의사 시절로 돌아갔다.

"수술... 수술은 성공적이에요. 하지만 왼쪽 관절은 재생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두세달은 필요할거에요."
긴장한 탓에 자기도 모르게 쇳소리가 나와 앙겔라는 목을 가다듬고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걱정하지 마요. 이제 회복실에서 회복 중이고, 곧 있으면 병실로 옮길 거니까요. 이제 앞으로 하나를 간호하려면 레나가 고생하겠네요."

그녀는 레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의 딱딱한 얼굴을 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레나는 그녀의 설명에도 굳은 얼굴은 펴지지가 않았다.

"앙겔라. 하나가 앞으로 수술을 더 받아야 하나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하나를 집으로 데려가겠어요. 여기에 하나를 두고 싶지 않아요."

지하에 그 녀석들이 있잖아요. 레나는 굳은 얼굴로 앙겔라에게 덧붙인다.
그 녀석들, 레나는 태연한 어조로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을 지칭했지만, "그 녀석"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쌩한 냉기가 감돌았다.

"걱정하지 마요. 이번 사태로 인해 둘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따로 격리되어 생활할 거에요. 더 이상 하나를 건드릴 수 없어요."

연구실에 따로 격리된다는 것, 그것은 센티넬과 가이드로서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폐기를 의미했다. 보통은 가이드까지 폐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센티넬의 폭주에 가이드가 한 몫을 거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처벌은 꽤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후에 겪을 일에 대해서는 레나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제가 그들의 어깨를 부술수도 없고, 설사 부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어깨가 돌아오지는 않아요. 죽여도 쓸모없는 일이죠. 그저 저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하나를 두고 싶지 않은거에요."

앙겔라는 레나가 그렇게까지 혐오감을 드러내는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앙겔라는 레나의 폭주가 염려되어 휴대용 단말기에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레나의 뇌파와 심박동 모두 아슬아슬하게 안전권에 있었다.
Code yellow인가... 부탁입니다, 라고 레나가 덧붙이는 것을 들은 앙겔라는 더 이상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알겠어요. 회복실에서 나오자 마자 하나를 집으로 데려가도록 하죠. 단, 그녀의 처치가 필요할 때에는 제가 직접 방문할 것이니까 제발 문전박대만은 말아줘요."

앙겔라는 레나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하나를 옮기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할 것이었다.


"자, 이제 저는 가볼게요. 잘 있어요."

진통제에 취한 하나는 침대에 늘어져서 잠을 자고 있었다. 레나는 앙겔라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차가운 바닥에 앉아 침대에 턱을 괸 채 하나의 손 끝에 자신의 손 끝만을 갖다 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더 이상의 행동을 한다면 그녀가 부서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하나를 위해 바닥난방을 설치한 것이 다행이야. 앙겔라는 바닥에 난방을 넣고는 레나를 돌아봤다. 여전히 레나는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마치 하나가 보이는 양 하나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오른팔이면 조금은 움직여도 될 거에요."

"네?"

"오른팔은 괜찮으니까 살짝 움직여도 된다고요. 그렇게 손가락 하나만 만지작거리며 겁내지 않아도 돼요."

그렇구나... 레나는 용기를 내는 듯 손을 뻗어 하나의 손등을 쓸어보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앙겔라."

미동도 없이 앉은 레나의 모습을 보다 조용히 나가려던 앙겔라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등 뒤의 일을 모조리 알고 있다는듯 레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이 언제죠?"

"오늘은... 2071년 9월 28일이네요. 무슨 일인가요?"

"아뇨, 그냥... 하나가 온 뒤로 너무 들떠서 제가 날짜를 세지도 않고 살아왔어서요."

대답을 마치자 하나와 레나는 마치 그림 속의 풍경처럼 미동도 없이 있었다. 가이딩을 하지 못하는 하나의 손이 머리에 얹어졌을 뿐인데도, 레나는 Code yellow 이상으로 자신을 흥분시키지 않았다.
숨소리마저도 허용하지 않을 그 광경에 앙겔라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

-미안... 구하러 와 줬었구나. 나만 까맣게 잊고 있었어. 미안해.

-자, 괜찮아. 무서운 사람은 아니야. 단지 조금 특별하고 연약할 뿐이란다. 지금 이 사람도 겁에 질려 있어. 여기, 네가 쓰다듬어주면 덜 무서워할거야.


손을 뻗어 괴물을 살짝 쓰다듬었다. 괴물은 내 상상처럼 차갑고 딱딱한 존재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또 따뜻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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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것도 같았고, 혹은 어떤 꿈도 꾸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또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자 세상이 온통 반짝거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일까, 분명히 내가 잠을 자고 생활을 하던 내 방인게 틀림없는데 전혀 새로운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나무가 있었다. 나는 나뭇가지 사이에 손을 넣은 채 잠에 든 듯 했다. 가지는 너무도 유연하고 부드러워 손가락을 움직이니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손가락 사이사이에 감겨왔다.
그 아래에, 나무의 수액이 굳어 만들어진 호박이 있었다. 좀 더 진한 호박 위에 새로운 수액이 덧씌워진걸까. 햇빛에 반짝이는 그 호박이 아름답다, 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갔다 와서 바로 잠에 든 걸까, 그만큼 피곤했었나. 하고 멍하게 생각에 잠기는데 잠에 들기 직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짐승처럼 목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내던 빅터, 그리고 렉스의 불타는 눈. 렉스가 빅터의 팔을 붙잡아준 덕분에 다행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무서운 기억에 호흡이 가빠져온다. 숨을 쉴때마다 왼쪽 어깨부터 시작해 손목까지 통증이 지잉, 하고 울린다. 어깨를 움켜쥐려 손을 거두려 할 때, 내 손등 위로 누군가의 손이 포개졌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자기."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나무라 생각했던 게 사실은 언니었다.

언니가 바닥에서 일어나 내 양쪽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어준다. 반짝이는 언니의 호박색 눈 덕분에 아까의 무서운 기억은 날아갔다. 대신...
언니가 다시 바닥에 앉는다. 그러더니 내 오른손 손등에 입을 맞추곤 다시 머리 위에 얹는다.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머리칼들이 간지러웠다.

"이대로가 좋아. 이렇게 있어줘. 자기 잘 잤어?"

선글라스가 콧등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것도 모르는지 언니는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선글라스 안쪽에선 저런 눈을 하고 있었구나.

"언니, 눈..."

응? 언니가 황급하게 선글라스를 고쳐 쓰려고 한다. 아니, 그 눈이 더 보고싶어. 나는 언니의 손을 붙잡는다.

"언니 눈이 예뻐요. 보석같아."

나도 모르게 손을 내려 언니의 눈을 찔렀다. 약 기운 때문일까, 머리에서는 하면 안된다고 크게 외치고 있었지만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손 끝에 닿은 언니의 눈은 우리의 눈처럼 미끈거리고 말랑한 안구가 아니었다. 보석(珤石)같다고 했었지. 그 돌과도 같은 차가운 느낌에 나는 뒤로 손을 뺐다. 그 갑작스런 움직임에 반대편 어깨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쉬잇... 언니가 떨어진 내 손을 다시 잡아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했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요?"

"응. 이나 손톱처럼 그냥 딱딱한 느낌인걸. 물론 뽑으려고 하면 아프겠지만."

"뽑아요? 언니가?"

머릿속에서 언니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자신의 눈에 손가락을 쑤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바닥에는 아름다운 호박색 보석이 나뒹굴고 있다.

"에이, 그럴리가." 언니가 손을 뻗어 내 한쪽 얼굴을 만져준다. 돌로 되어있어 보일리 없을텐데도 느껴지는 그 다정한 눈빛을 보며 아까의 상상을 저 멀리 지워버린다.

"연구소에서 연구 목적으로 뽑은거야."

"그럼 박사님이?"

"아니. 그 사람은... 죽었어. 10년 전에."

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얼굴을 만지고 있었지만 언니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폭주한 그 사건. 그것이 이 눈과 관련이 있어. 그 이후에 난 S등급 센티넬이 되었고, 이렇게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지."

언니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개가 기울어지며 여태 빛에 반사되지 않던 한쪽 눈이 오후의 햇빛을 반사했다. 다른쪽 눈이 매끄럽게 빛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빛을 내는데 반해, 이쪽 눈의 안쪽에는 여러개의 실금이 그어져 그녀가 고개를 움직임에 따라 눈 안쪽에서 프리즘이 생겨나고는 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내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는거 자체가 이상한 것이었다.
선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은 꿈 속도 깜깜한 어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꿈은 그렇지 않았다.

미래가 보였다. 그리고 과거가 보였다. 나 자신이 보였고 주변의 사람들이 보였다.
'당신은 이러이러했군요.', 혹은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날거에요.' 라고 신나서 떠들었었다. 그렇게 내 능력을 뽐내다보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도 좀 더 편히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딘가로 불려 나가 몇일이나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몇일 후 돌아오셔서는 나를 안고 하염없이 우셨다. 늘 부모님에게서는 상처에서 나는 비릿한 피냄새가 났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그 냄새조차도 맡을 수 없었다.

-보석안. 제 3의 눈. 미래와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망원렌즈-

필립 크라이머라는 연구원은 내 얼굴에 침을 튀겨가며 감탄을 했다. 그의 침 냄새와 독한 스킨 냄새가 섞여 머리가 아팠다.
그는 내 눈을 만져보며, 그리고 내가 전해준 이야기들을 들을때마다 내 눈에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줬다.

연구실 안에 있는 수술실이었다. 차가운 금속침대에 등이 닿자마자 그들은 내 팔다리를 꽁꽁 묶었다. 눈꺼풀에 차가운 쇠가 닿더니 눈을 감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쪽 만이면 된다. 어차피 센티넬이잖나.-
훅, 그의 스킨 냄새가 내 얼굴에 뿜어졌다.
그리고 펜치와도 같은, 딱딱한 무엇인가가 내 눈을 꽉 물었다.

-인류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최후의 희망-
그것이 내 눈에 대해 그가 남긴 마지막 별명이었다.


***


"너무 아팠거든. 그래서 소리를 질렀어. 그 아픔을 없애준다면 뭔 짓이든 했을거야. 그래서 그를 죽였어.
그 후에 독방으로 가게 되었고. 3개월 후에 나오니 나는 S급 센티넬이 되어 처음으로 연구소를 나오게 되었어. 그제서야 난 반쪽짜리지만 사람이 되었어."

어떤 위로도 건네질 못하고 그저 언니의 얼굴을 엄지로 쓸었다.

"그럼... 그때 언니는 어떻게 돌아온거에요? 보통 폭주 상태에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던데."

"글쎄, 어떨거 같아?"
언니는 내 손바닥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말해주지 않으려나 보구나. 손을 언니의 머리로 올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자 언니가 눈을 떴다. 노을을 받아 호박 눈동자는 붉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영롱함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예쁘다. 왜 감추고 살았어요?"

"아냐. 자기가 더 예쁜걸."

언니는 한참이나 머리로 내 손을 부비더니 손을 깍지껴왔다. 본 적도 없으면서 저렇게 즉각적으로 칭찬을 할 수 있을까. 언니의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거짓말은 프로야. 그래도 보석보다 예쁘다니 고마워요."

"그럼. 오죽하면 내가 자기를 보고 그 눈부심에 눈이 멀었겠어."

눈이 멀어? 방심한 틈에 한방 더 언니가 큰 웃음을 줬다. 웃음을 참으려고 했는데도 결국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덮쳤다.
차마 크게 웃지도 못하고 울음 섞인 웃음소리를 내자 언니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괜찮아?"

"괜찮아요. 나 일어나고 싶은데, 좀 도와줄래요?"

언니가 허리를 잡고 내 몸을 일으킨다. 그 작은 행동에도 어깨에서 전신으로 고통이 퍼져나가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는 질병 휴학으로 휴학계 냈어. 오른쪽 어깨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3개월은 왼쪽 팔을 쓰지 말아야한대. 그러니까 그 동안은 내 방이나 자기 방에서 함께 지내자."

"무슨 소리에요? 학교는 왜 갑자기 휴학을 했어요. 저 왼손으로도 글 쓸수 있는데..."

"아니, 내 말 들어. 나는 자기 보호자야. 내가 허락 안해줄거야."

매일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언니가 얼굴을 단단하게 굳히고 나를 바라보자 입 밖으로 나오려던 불평이 쏙 들어갔다. 내가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자 만족스러운지 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침대에서 일어난다.

"배고프지? 바로 식사를 하는건 무리고, 스프 끓여줄게. 감자가 좋아 옥수수가 좋아?"
버릇처럼 언니는  코 끝에 걸려있던 선글라스를 콧등 위로 올리려고 했다. 그게 아쉬워 나는 언니의 옷깃을 잡았다.

"이제 그거 쓰지 마요. 나 언니랑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보고 싶어요."

-자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잖아. 너는 그 장애인에 대해서 뭘 알아?-
내 가슴을 태우던 쇳물이 씻겨져 내려간듯한 느낌을 받는다.

"언니가 오늘 용기내 언니의 일을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생각해보니 나는 언니의 가이드인데도 언니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태 모르고 있었어. 언니랑 가까워지는걸 겁냈기 때문일까?"

언니가 멍하게 나를 바라본다. 언니의 반짝거리는 눈을 바라본다. 비록 언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손에서 땀이 찬다.

"근데 이제 알겠어요. 언니의 그 고백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도 잘 모르겠고 내 마음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는데..."
가슴이 쿵쿵, 빠르게 뛴다.

"언니가 나에게 그런 고백을 했을때 엄청 떨렸을거 같아요. 겁쟁이 언니가 그렇게 용기를 내 줬다니 정말...정말 고마워요. 지금 이 얘기를 서로 눈을 마주보고 하니 정말 좋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금씩 서로 마음을 털어놓아요."

언니가 다시 침대에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아아.. 자기 늦은거 아냐. 일찍 알아줘서 고마워. 진짜 좋다. 진짜...자기 냄새 너무 좋아."

"무슨 소리에요, 씻지도 않아서 구질구질하구만."

"응, 그래서 더 좋아. 더 진해져서 좋아."

"그거 냄새나는거잖아요! 이 변태언니가 저리 떨어져요!"

부끄러워 언니의 얼굴을 밀어내지만 한 팔로는 역부족이다. 결국 언니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 코를 킁킁댄 후에야 품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언니가 내 얼굴을 양 손으로 잡는다. 그러고는 더듬더듬, 나의 얼굴을 손 끝으로 훑는다.

"보고싶다, 우리 하나. 정말..."


***


빅터와 렉스는 같은 방에 투옥되어 있었다. 그들은 평생 연구소에서 실험대상으로 사용될 것이고,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렉스는 빅터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부모님이 자신을 그렇게 빠르게 외면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에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명문이라는 그들의 부모님들은 빅터와 렉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처했다. 부모님들은 자녀의 존재를 거부했고, 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거나 양자를 들이는 식으로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그래, 그렇게 둘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의 흔적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런 그들에게 이 한 밤중에 찾아올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강철로 된 문은 조용히 열렸다. 빛을 역광으로 받은 사람의 그림자가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로 그렇게 실험양으로 살 예정인가? 네가 네 센티넬을 폭주시킨건 네가 그만큼 센티넬에게 잘 동화되고 있다는 증거야.
그 동양인 돌연변이가 다친 이유도, 장애인이 그녀를 지키지 못한 이유도 모두 한 가지지. 약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너희 부모님들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센티넬과 가이드에게 약한 인간을 지키라고 강요하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어."

그 그림자는 두 소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것이 자연의 법칙이야. 너희들은 어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