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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최후의 만찬

저녁 때가 되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계셨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그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이 대접에 손을 담근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20-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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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안먹어?"

하나가 나를 보며 말한다. 자기, 그런 말은 눈을 보고 말하는거야.


"헤헤이, 그런건 애인이 한 스푼 듬뿍 떠서 먹어주는거야. 그러면 입을 크게 벌리고 먹은 후에, '아. 정말 맛있다.'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먹는거야.

그러고 '역시 자기 음식이 제일 맛있어!' 이렇게 말해주는거지. 로맨스의 완성! 우후!'


루시우, 저 나쁜 놈. 평소에는 몰랐는데 저놈의 저 밝은 에너지가 주변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거였구나. 평소 나의 행동을 반성하게 한다.


꼬맹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 기세에 밀려 숟가락을 넘겨준다.

그녀가 내 그릇에 손을 넣고 "그것"을 한 스푼 크게 뜬다.


"어, 언니... ㅇ,ㅇ,아..."


토끼의 큰 연갈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숟가락도 그에 따라서 흔들린다.

얘가 치기로 나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려고 한다. 말려야 해, 얘는 지가 뭘 하려는지 모르고 있다.


"자, 자기야... 일단 진정해."


실수다. 지뢰를 밟았다. 자기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눈빛은 승부사의 눈빛이다.


-못 먹겠다면 내가 먹여주지. 꼭 먹여줄테다. 이거 전부.-


"안먹어? 내가 먹여주고 있잖아. 먹어."


하는 수 없다.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내 삶이 흘러간다.

슬립스트림 사태때는 윈스턴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떨까. 목숨만은 붙여주세요, 앙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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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예전 공군 동료를 만나러 나갔다 온 다음에 이상한 소리를 주워듣고 온 듯 하다.


"그러니까, 한식은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건강하다네. 그리고 매콤함 덕분에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걔가 그랬어.

또 뭐라더라, 비주얼은 좀 이상하게 생긴것도 있는데 맛은 좋다더라고. 하여간 그 녀석 한국 여자 만나고는 완전히 애처가가 다 되었어, 전에는 마초여서 나랑 엄청 싸웠는데."


언니가 한식에 대한 예찬을 시작한다.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건강에 안좋은 한식을 먹는 대표적인 예가 눈 앞에 있는데도 언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를 하고 있다.


"아, 그리고... 한국인들은 어느정도는 요리를 잘한다는데, 정말이야?"

대체 저 헛소리는 어디서 만든거지? 한국 관광진흥청이냐? 문화체육관광부냐? 그곳이 어디든 폭파를 해야할 듯 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에게 있다.


19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내 인생에서 남에게 못한다는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싸움이든 게임이든 무엇이든. 하면 이겨야지. 내 인생의 좌우명이다.

아니, 못한다면 못한다고 말 할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내 가장 큰 단점이다.


그래서 언니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당연하지! 나 요리 잘해!!"


"와아! 역시 자기야! 나 자기 요리 먹어보고 싶은데!

저번에 김? 김도 맛있었고, 햇반? 그것고 맛있고. 라면도 맛있어! 그러니까 자기가 손수 한 요리는 정말 맛있을거야!

내가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줄 수 있어! 자기 요리 먹어보고 싶어!"


언니의 흥분이 최대치에 달했다. 기대에 찬 강아지의 눈빛. 거절해야 한다. 지금에라도 못한다고 해야 한다....


"그럼! 무슨 음식 먹고싶어? 어떤 맛?"


아...망했다.  


"정말? 정말 자기가 해주는거야? 와! 하나야 사랑해! 나는 음. 난! 일단 야채가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어! 건강한 맛! 그리고 매콤한것도 먹고싶네. 칠리스튜도 좋아하거든.

그리고 밥으로 한 요리면 괜찮을거 같아. 저번에 김에 밥을 싸 먹었을때 맛있었거든. 그리고.. 아, 그 김치, 한국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거. 그것도 먹어보고 싶어.

근데 발효음식이니까 좀 덜 거부감 갖게. 해줄 수 있어?"


"야채, 밥, 김치, 매운거... 김치볶음밥이네?"


"김치 보끔빱? 뽀끔빠압! 뽀오끔뽭! 하나가 해주는게 그거야? 이름 재밌네, 뽀끔뽭! 아, 윈스턴에게 자랑하러 가야지!"


언니가 이상한 단어를 만들어서 방 밖으로 뛰어나간다. 잠깐, 자랑? 자랑한다고? 언니가 하는 자랑이면 약 한 시간 안에 모든 본부의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머리가 아파온다. 휴대폰으로 김치볶음밥의 요리법을 검색한다. 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대충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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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요리를 위한 재료를 구하는건 쉬웠다. 한국음식을 파는 곳에서 포장된 김치 한 봉지만 사면 나머지 재료는 기지에 있는걸 쓰면 되었다.

문제는 하나의 거칠고도 과감한 조리과정이었다.



밥, 햇반을 프라이팬에 넣는다.


기름을 두르고 적당히 볶는다. 그러다가 포장된 김치를 뜯어 그대로 넣는다.


양파와 버섯, 당근, 오이, 순무, 샐러리를 잘게 썰어서 넣는다.

오이와 순무 등 물이 많은 재료를 볶는 과정에서 물이 넘치게 되었다. 음, 왜 넘칠까. 하나는 고민했다.

아, 물은 쌀로 흡수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돌리지 않은 상태의 햇반 한개 더 추가. 양은 이인분으로 늘어났다.


매콤한 맛, 그래.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고 했지. 기름을 많이 넣었으니 느끼할거 같다. 저번에 기지에 누가 하바네로 가루를 가져온거 같은데.

적당히 두 스푼 넣는다. 후추도 두 스푼. 언니는 단걸 좋아하니 설탕도 한 스푼 넣을까.


하나는 맛보기라는걸 중요한 과정이 머릿속에 있질 않았다. 음, 이 정도면 요리를 잘 하는거네. 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슬슬 생기고 있을 때, 요리에서 향이 올라왔다.


콜록!

매운 향이다. 코와 목을 따갑게 만드는 향.


허겁지겁 불을 끄고 요리를 그릇에 담는다.


하지만 매운 향은 이미 주방을 벗어나 숙소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 향을 맡고 휴게실에 있던 사람이 달려왔다.


"누, 누가 주방, 콜록! 에서 최루탄을 터뜨렸어..요!"

기침을 하며 온건 앙겔라였다. 콜록 콜록. 한참을 기침을 하던 그녀가 하나에게 다가온다.


"하나양. 뭘 만들고 계셨던 거에요?"


"김치 볶음밥인데.. 뭔가 향신료가 강하게 들어갔나봐요."


"아아...뽀끔뽭... 레나에게 들었는데, 그게 저건가요?"


그게 저건가요. 하나의 음식에 대한 평가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어떠한 혹평 한 마디 없이 그녀가 하나의 요리에 대해 내린 한 마디에는 '의사로서 저 요리를 레나에게 먹일건가요?' 라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었다.


"저... 어떻게 하죠?"


이제야 현실을 깨달은 하나가 앙겔라에게 묻는다. 어떡해요, 이걸 언니에게 먹이면 안될거 같아요.

울상을 짓는 아이의 얼굴에 앙겔라의 얼굴에도 미소가 핀다. 앙겔라는 하나를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못하는거 하나 정도는 있어야 매력도 있죠. 솔직하게 레나에게 요리는 처음이라고, 그래서 못한다고 말해보는건 어떨까요? 레나도 그런 하나양을 귀여워 할거에요."


"그런가요? 다행이다..."


하나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앙겔라의 조언에 따라 하나가 레나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면, 레나는 하나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 기지를 돌아다니며 하나의 반전매력에 대해 전도하고 다녔겠지.

하지만 현실은 이야기보다 잔혹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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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언니가 루시우 오빠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왔다. 켈룩, 언니와 오빠 모두가 기침을 했다. 

내가 먼저 말해야 해, 이건 못하겠다고 말하는거야. 언니에게 그릇을 들고 가려는데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혼돈을 만드는 것. 그것이 루시우 오빠의 일이다.


"오우! 레나 저것 봐. 너의 자기가 만든 그 음식이잖아? 어때 맛있어보이지 않아?"


언니가 기침을 하다 말고 나와 눈을 마주친다. 햇살이 비추던 언니의 얼굴에 구름, 그것도 먹구름이 낀다.

언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짧은 시간 안에 나와 박사님, 루시우, 그리고 뒤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을 훑어본다.


"그럼! 자기 음식은 최고지!"

안돼. 언니. 그런 말은 안돼...


"그렇지? 자! 안그래도 언니 부르려고 했어! 이리 앉아. 따뜻할때 먹어야 해!"

...나도 안되는거였어.



그리고 30분 후, 언니는 그릇을 모조리 비웠다. 빨리 이 고문을 끝내려는 차원에서 머슴이 먹는 밥마냥 숟가락 가득. 언니의 볼이 미어터지게 밥을 밀어넣었다.


"쓰읍...하... 자기..음식..후우...하아... 자기...음식..."


언니의 뒤에 선 사람들도 말이 없다. 모두들 레나언니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라도 한듯 인상을 쓰며 언니를 바라보고 있다.

언니의 얼굴이 빨갛다. 아니, 터질거 같다. 눈물을 억지로 참은 눈도 빨갛다. 손도 벌벌 떨리고 있다. 이러다 머리 색도 눈 색도 빨개질거 같다.


"쓰읍... 자기...하... 많이...만들었네....?"


괜찮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언니는 물도 마시지 않은 채 음식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고 있다.

제발, 괜찮으니까 물을 먹어. 내가 물을 따라 언니에게 건네자 언니는 물잔을 든 채 감상을 기여코 남기려고 한다.

아, 신사의 나라 영국.. 그런데까지 신사적일 필요는 없어.


"자기 음식...맛..있네..쓰읍...매콤하고...후우웁...채소도 많...고.."

언니가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는 누구보다 빠르게, 가속기의 힘으로 쓰레기통에 얼굴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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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움직인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언니는 늘 이 시간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한다. 참 겉보기와는 다르게 바른생활 언니야.


조용히 의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박사님에게 조용히 목례를 한다. 박사님도 아무 말 없이 손만을 가볍게 흔들고는 한쪽 침상을 가리킨다.



아, 아직 자고있네. 배가 많이 아팠겠지. 괜히 얼굴도 헬쓱해진거 같아.

언니가 깰까, 손끝으로 살짝, 얼굴을 쓸어본다.

언니가 눈을 살짝 뜬다. 생각보다 아침엔 예민하구나.


"으응? 자기 왔어?"


"응, 더 자. 괜찮으니까."


"아냐, 일어나려고 했어." 언니가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편다. 한쪽 손등에 꽃힌 주삿바늘이 내 탓인거 같아 더 마음이 쓰인다.


"언니, 여기 아침..."

내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난 이유. 작은 죽통을 내민다.


언니가 일어나기 두 시간 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여러 사이트를 뒤져 요리법을 찾아냈다.

야채를 푹 삶아서 낸 육수에 쌀을 넣고 쌀이 흐물흐물해질때까지 끓인 쌀죽.


언니 말대로 매콤한건 아니지만 쌀도 들어갔고, 채소도 들어갔다.

숟가락으로 얇게 한 술 떠서 후후 불어 식힌다. 언니 입에 가져다 대니 언니가 흠칫 놀란다.

....트라우마를 하나 더 늘려준건가.


"이건 괜찮을거야..아마도.."


"아마도, 가 엄청 불안해 자기."

언니가 농담조로 나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거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구.


언니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려 죽을 먹는다.

입을 우물우물, 하더니 입을 오, 하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


"왜, 속아파? 못 먹겠어? 토할거 같아?"


"이건 맛있다. 자기 요리 잘하는구나."


잘하긴 뭐가 잘해. 이 바보언니.

내가 언니를 쓰러뜨려서 여기 누워있게 했는데.


나에게서 숟가락을 빼앗아 죽을 우물우물 먹는 언니의 볼을 쭉 잡아당긴다.

아야야, 하고 나에게 눈을 흘기는 언니가 귀여워 한번 더 볼을 조물조물 한다.


"으이구. 바보언니. 요리 못하는 여자친구 만나 고생이네."


"응? 아니야. 요리 잘해. 이거 맛있어."

언니가 수저로 죽통을 통통 친다.


"아냐. 나 요리 못해. 처음 한거야. 내가 울컥해서 언니에게 독극물을 먹였어."

언니의 계속된 칭찬에 내가 더 미안해져 말을 많이 한다.


"미안해. 내가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좀 울컥하는 성질이 있어서.."


언니를 보는게 미안해서 무릎만 바라봤다.

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턱을 잡아 입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괜찮아. 누구나 다 처음엔 실수를 하는거지. 지금은 잘 하잖아? 이거 맛있어 정말."


"바보언니야. 이렇게 배탈이 나고도 그 소리가 나와?"


"그럼."


"그러니까 언니가 바보라는거야."


"상관없어. 자기 음식은 맛있는거니까."

언니가 한번 더,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사랑해 자기. 매일 늦잠 자는 토끼가 오늘은 이렇게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언니는 너무 행복해."

아침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언니. 언니의 얼굴에는 다시 햇살이 가득하다.


으이구 바보언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언니의 멱살을 잡아 내려 깊게 입을 맞춘다.

사랑해 바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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