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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Legacy - 2

전자시계가 있다. 시계는 5분에 맞춰져 있었던 듯, 내가 상자를 열자 4분 59초에서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이, 이게 뭐야?"


시계의 옆, 메모가 적혀 있다.


<시계를 들어올리면 폭탄은 5초 내에 터진다. 반경 10m는 폭파할 수 있는 위력이다.

시계를 들어올리지 않을 시, 5분 안에 폭탄이 터진다. 위력은 반경 10km를 파괴할 수 있다.

상자를 열지 않는다면, 10분 내에 상자 자체가 폭파한다. 반경 100km를 폭파시킬 수 있다.>


메카에서 내려온 아이가 내 옆에서 메모의 내용을 중얼거린다. 아이의 얼굴이 파랗다. 아마 내 얼굴도 그럴 것이다.


5분 내에 폭탄 처리반이 올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걸 우리가 처리하기에도 곤란하다.


내가 가속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메카가 부스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운이 좋게 이걸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대안은 없다.


"여기는 트레이서, 베타 집결지에 폭탄이 놓여져 있다. 폭탄의 내용은..."

내가 무전을 보내는 사이, 하나가 집중해서 메모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일단 무전은 보냈어...."

일단은, 하지만 상황은 전혀 좋지 않다. 높은 확률로 우리 둘은 큰 부상을 당할 것이다. 5분 안에 10km, 도망갈 수 있을까.


하나가 나의 손을 붙잡고 메카로 간다. 아, 메카의 방어모드! 마음 속에 빛이 들어온다.


하나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 메카에 오른다. 하나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메카, 해치 봉인. 방어모드 개시."



**



해치가 닫힌다. 아무리 개방 버튼을 눌려도 열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조종간이 쑥, 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조종간을 당기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기! 뭐하는거야! 메카! 해치 개방! 방어모드 해제! 해치 개방!"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지만 메카는 잠잠하다.


"언니 미안."


하나가 나에게 툭, 하고 내뱉는다.


"메카에는 한 사람밖에 못타. 그 이상으로 타면 작동이 안되더라고. 좀 다치긴 할거지만 그래도 괜찮을거야."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다.

 

"야! 송하나! 이거 열어! 무슨 짓이야! 자기야! 이거 이기적인 짓이야! 뭐하는거야!"



"응, 알아. 이기적이야 나. 그래서 언니와 같이 죽는것도 싫고, 언니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사는것도 싫어.


언니가 있음으로 내 인생은 빛으로 가득 찼어. 언니는 햇살과도 같은 사람이니까. 언니가 너무 좋으니까.


그러니까 미안. 차라리 날 미워해."



하나가 상자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송하나! 소리를 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상자 앞에 멈춰선다. 그리곤 나를 바라본다.


손을 좌악, 펴 나에게 흔든다. 사랑해. 그녀가 입모양으로 말한다. 그리곤 반대편 손으로 시계를 든다.


"하나야!"


나의 말은 큰 폭음에 묻힌다. 여기저기 머리를 부딪힌다. 그리고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뜬다. 본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푸른 숲이었던 곳은 검은 재로 뒤덮여 있다.


"하, 하나야!"


벌떡 일어나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요, 레나!"


앙겔라가 나의 어깨를 바닥에 누른다. 그녀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앙겔라, 하, 하나, 우리 꼬맹이는?"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나의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한다.


"앙겔라!"


앙겔라의 손을 붙잡는다. 그녀의 눈동자가 더 심하게 떨린다.


제발, 제발 무사하다고 해줘. 우리 꼬맹이가 아무 일이 없다고.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폭탄이 작동했어요. 정확하게 10m, 그 범위에 폭발이 미쳤죠. 레나 당신은 메카에 타고 있던 덕분에 부상만을 입었어요. 하지만 하나는..." 


앙겔라가 말을 잊지 못하고 입술을 깨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 눈물인 양 내 볼을 타고 흐른다.


"무슨 소리야, 이거 몰래카메라지?"


하나를 찾아야겠어. 이런 미친 몰래카메라를 제작한 꼬맹이 머리통을 쥐어박을거야.

내가 프로포즈 거절했다고 이런, 이런 빌어먹을 장난을 쳐?

내가 찾아야겠어. 찾아내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낼거야.


앙겔라의 몸을 밀어내고 일어나려고 반대편 팔에 힘을 준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만이 느껴질 뿐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라는 한 마디만 끊임없이 되뇌인다. 웃기지마. 꼬맹이가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유일하게 말을 듣는 팔로 땅을 내리친다. 땅을 내리친 손이 너무 아파서, 꺽꺽 울고 말았다.



**



하나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찾아낸 것이 그녀의 뼈 한 조각.

그것을 곱게 갈고 나니 손바닥만한 종이로 싸일 정도로 작아졌다.


그녀는 가족도, 한국에 집도 없었다. 그녀가 남긴 것이라고는 숙소의 게임팩과 캐비넷 안의 짐들 뿐.

캐비넷을 연다.


바로 눈 앞에 작은 상자가 있었다.


깁스를 해 한쪽 팔로만 불편하게 상자를 열다 바닥에 떨어뜨렸다. 땡그랑,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반지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작은 보석이 박힌 심플한 반지,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보다 상자 안에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언니, 나와 결혼해줄래?

언니. 내가 언니에게 프로포즈 하는건데.

언니 사랑해, 나랑 함께 살자.

언니가 성을 바꿀래, 내가 성을 바꿀까?

이거 그냥 선물이야.

언니 사랑해. 언니 사랑해. 언니 사랑해.>


작은 쪽지 안에 까맣게 써진 글자들. 그 위에 그어진 선들, 그리고 확실하게 밑줄이 그어진 문구.

그녀의 청혼 문구.


청혼 반지 치고는 너무 작잖아, 돈도 많은 애가. 문구는 왜이렇게 촌스럽고 고루하담.

글씨는 왜 이렇게 못 썼어? 좀 쓰려면 큰 종이로 하던가.


피식, 하고 웃음과 함께 눈물이 나온다.


얼마나 이 앞에서 고백 연습을 했을까.


이 반지가 나에게 맞는지 알아보려고 그렇게 손가락을 만졌던 거야. 반지를 사기 전에 손가락 두께를 쟀어야지.


내가 장난으로 한 말에 얼마나 놀랐을까. 하긴, 그렇게 놀랐으니 손을 벴겠지.


바보같긴.


레나 옥스턴 이 바보야. 그렇게 청혼을 단칼에 거절하냐. 얘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송하나, 너도 바보야. 나에게 이걸 이렇게 던져놓고 대답도 안 듣냐.



무릎에서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는다. 입을 막자 눈물이 그녀의 쪽지 위로 떨어져 글자가 번진다.


하나의 흔적이 번지는거 같아 황급히 손가락으로 쪽지 위의 물기를 훔친다. 훔치면 훔칠수록 글자는 더 번진다.


그녀가 나에게서 점점 사라지는거 같아 손길이 더 다급해진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제발.



**



"언니! 언니! 일어나봐!"


눈을 뜬다. 시야가 흐릿해 눈을 만진다. 손에 물기가 묻어나온다.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럴리가 없는데. 하나는, 너는 죽었는데.


"언니! 무슨 꿈을 그렇게 험하게 꿔, 자면서 엉엉 소리내 우는건 처음 보네. 괜찮아?"


하나가 나의 얼굴 양 옆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눈 팅팅 붓겠네, 이게 뭐야.


"하나...야?"


"내가 그럼 누구야, 혹시 함께 자는 딴 여자 있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나의 코 끝을 톡톡 두드린다.


"하나 맞구나! 자기야!"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하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네가 죽는 꿈을 꿨어. 너무 무서웠어. 네가 없어져서 너무 힘들었어.

다행이야. 꿈이어서 다행이야. 그래도 다시는 꾸고 싶지도 않아.


언니! 좀 진정해! 하는 하나의 입을 내 입으로 막는다. 그녀의 옷을 거칠게 벗긴다.


"하나야, 사랑해.. 다행이다.. 아, 다행이야 자기야.."



***



영국 신사는 무슨...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하늘을 바라보지만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가 있다.


온 몸이 뻐근하고 나른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내 위에 엎드려있는 언니를 노려본다.


언니는 평소보다 몇배는 더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보고있다. 심통이 나서 입을 내밀자 내 입에 쪽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한다.


"대체 왜 그래?"


"무서운 꿈을 꿨거든.."


"내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언니와 잠자리를 갖지 않는 꿈?"


내가 심통을 부리는데도 언니는 뭐가 즐거운지 깔깔거리고 웃는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나쁜 꿈.


"대체 그 꿈이 뭔데?"


"말 안할거야. 너무 끔찍하고 끔찍해서 말도 하기 싫어."

언니가 나에게 키스를 하며 내 손 위로 깍지를 낀다.


아...

가만히 깍지를 빼 언니의 약지 두께를 손으로 재 본다.

얼추 맞으려나...


갑자기 언니의 키스가 멈춘다.

응? 하고 올려다보니 언니가 얼굴을 굳힌채 나에게 묻는다.


"자기, 혹시 나에게 줄 반지 샀어?"


귀신! 놀라서 손을 머리 위로 올리려다 협탁에 부딪힌다. 날카로운 통증이 손 끝을 지나간다.

아얏, 하고 보니 손 끝이 협탁 모서리의 까끌한 곳에 쓸려 찢겨졌다.


언니가 새파래진 얼굴로 내 손을 바라본다.


"왜그래, 그냥 찢겨진거야. 내가 저번에 사포로 다듬으려 했는데... 구급상자좀.."


"꿈이 아니야..."

언니가 중얼거린다. 뭐?


"꿈이 아니었어..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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