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Legacy - 1

내 볼에 따뜻한 입술이 닿는다. 부드러운 딸기 향. 누구인지 알기에 눈을 뜨지는 않는다. 이대로, 더 그녀가 나를 어루만져줬음 좋겠다.


아직 내가 깼다는걸 느끼지 못해서일까, 이번에는 그녀의 손이 나의 이마를 쓸어본다. 엄지손가락으로 눈썹 위를 만져보곤 검지로 콧등을 쓸어준다.


그리고는 내 손등을 쓸어보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굵기를 재려는 듯, 감싸봤다가 자신의 손바닥과 내 손바닥을 맞춰 비교해본다.


하나의 모든 손짓에서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게 느껴져 부끄럽다. 얼굴이 빨개지면 들킬텐데, 진정하자, 진정.


"언니, 깬거 다 알아."


아이도 이제 깬걸까, 평소보다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려있다. 평소에 높은 톤의 목소리는 아이같은 느낌이 들어 귀여웠는데, 지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관능적인 느낌이 든다.

내가 깨어있다는걸 알면서도 꼬맹이의 손은 나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기분이 좋아 눈도 뜨지 않고 아이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하나의 가슴골에 코를 박고 그녀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가슴골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턱으로 쉼 없이 입술을 댔다.



*



"어후, 아침부터 뭐야."

아이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투덜거린다.


햇빛을 맞으며 아이의 등을 바라본다. 손을 뒤로 돌려 브래지어의 후크를 채우는 그녀를 보고 또 몸이 달아오른다. 천천히 그녀의 뒤로 기어가 등에 입을 맞춘다.


"짐승도 아니고, 언니 그만!"

아이가 벌떡 일어나 나를 뒤로 확 민다. 내가 평소에 윈스턴을 놀릴 때 하는 말을 그녀가 하니, 생각보다 더 야해서 부끄럽다.


"그치만 오늘 자기가 너무 예쁜걸."

누운채 투정을 부린다. 그런 나를 보며 하나가 한숨을 짓고 시계를 가리킨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됐어. 점심 먹고 훈련 나가야지."


벌써 열두시가 다 되어간다.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났네. 희한한 일이다.



**



토스트와 서니 사이드 업, 베이컨을 접시에 담고 컵에 따른 커피를 쟁반에 담아 식탁으로 가지고 온다. 아침 겸 점심이니 둘 다 든든하게 먹는게 좋을거 같아 잔뜩 요리해봤다.


하나는 맞은편에서 사과를 깎고 있다. 그녀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는 것은 늘 보기가 좋다.


한 손은 사과를 쥐고 다른 손은 과도를 쥔 채, 뱅글뱅글, 솜씨 좋게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 껍질에 대비해 하얗고 긴 손가락이 두드러진다. 손가락...


"아, 자기. 아침에 유난히 내 손가락을 만지더라?"


"응. 그게 왜?"

꼬맹이의 볼이 살짝 붉어진다. 어? 왜 붉지?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던져 본다.


"왜? 언니에게 반지 선물하려고? 결혼 하자고 하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얏! 하고 꼬맹이가 사과를 놓친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그녀가 서둘러 싱크대에 가 수도꼭지 아래에 손을 대고 상처를 씻는다.


"자기 괜찮아? 손 많이 베었어?"


"응, 괜찮아. 구급상자 좀 가져다줄래?"



구급상자를 가져와 하나의 손가락에 밴드를 붙인다. 다행히도 심하게 벤 것 같지는 않다.


"뭐 정곡이라도 찌른것 마냥 놀라서 손을 베어. 엄청 미안하네..."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까보다 더 붉어져 있다. 손을 베어서 놀라 붉어진건가.


"언니가 이상한 헛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프로포즈를 받으려면 내가 받아야지, 왜 해."

아이가 볼을 부풀리고 화를 낸다.



**



훈련이라고 해 봤자 딱히 하는 것은 없다.

단지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 뿐.


하나가 나를 불러서 가까이 가 보자 하나가 재미있는걸 보여준다.


"언니, 이거봐라? <해치 개방>"

말만 했을 뿐인데, 메카의 해치가 개방된다.


"우와, 이제 음성인식도 되는거야?"


"응. 그거 말고도 이번에는 방어 모드도 있대."


아이가 메카에 들어가 앉는다. 그리곤 <해치 봉인. 방어모드> 라고 외치자 외부로 돌출된 조종간이 안쪽으로 들어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오오, 이제 이게 방어력도 신경을 쓰는 걸까?"

내가 질문을 하자 아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이렇게 되면 공격을 못하잖아. 그냥 이건 조종사가 구조를 요청할때까지 숨어있는 목적인가봐. 다리가 끊어져도 이건 계속 지속된대."


"그래도 이제 어느정도 조종사의 목숨은 생각해준다는거네. 자기, 희망을 가져!"


내가 활기차게 말하자 아이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우리의 웃는 소리를 뒤엎듯, 사이렌이 울린다.

긴급이다.



**



"작전지역은 인도. 탈론이 게릴라 작전으로 마을 한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인도 군대가 출동했을 때엔 이미 숲 속으로 도망간 상태, 때문에 많은 수의 병력은 오히려 불리하다.


파라와 메르시는 공중에서 정찰 및 요격, 트레이서와 D.va, 나와 라인하르트, 메이와 자리야는 각각 조를 이루어 정찰된 정보를 기반으로 적을 격퇴한다.


작전시는 17시 00분. 작전 종료 후 집결지는 알파와 베타로 나뉜다. 알파 집결지에는 20시에 수송선이 오며, 베타 집결지에는 22시에 수송선이 온다. 이상."


우리는 굳은 얼굴로 각자의 장비를 점검한다.

앙겔라와 파리하가 위에서 요격한다고 하더라도 둘씩 짝을 지어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까다롭다.


"괜찮아 언니. 뭐 별 일 있겠어? 내가 하는 게임은 다 이겨. 그러니까 언니도 아무 문제 없어."

그리고 하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채 게임을 하고 있다. 그녀의 그 모습에 긴장이 다소 풀린다.


"그러게. 내가 별 걱정을 다 했다. 자기도 나만 믿어. 내가 다 해결해줄게."



*



<여기는 메르시, 파라 부상. 후퇴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여기는 메르시, 파라 부상. 후퇴합니다.>


총성이 빗발치는 가운데에 그녀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린다. 역시, 하늘에서 상황을 정찰한다는건 그만큼 적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녀들 덕분에 적의 위치 및 본거지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메카 덕분인지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임무 지역을 처리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 메카의 움직임이 다르다. 보통 부스터를 사용해 부웅, 하고 가는것이 아니라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다.

걱정이 되어, 하나를 슬쩍 본다. 메카의 뒤쪽으로 적이 총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속기의 힘으로 적을 무력화한다.


"오늘 언니가 너무 활약하는거 아냐? 나는 뭘 하라고?"


"그냥, 오늘은 이상하게 잘 보이네. 자기랑 같은 팀이라 그런가?"


그러게, 하고 하나가 웃는다.

나는 교란 위주의 임무를 맡고 하나는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역할을 맡는다. 때문에 우리 둘이 함께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같이 싸우고 있는 지금, 나는 하나가 걱정됨과 동시에 그녀와 함께 싸운다는 것이 즐겁다는걸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는걸 즐거워 하는건가, 하는 죄책감도 든다.


그렇게, 우리는 차근차근 적을 정리해 나간다.



*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가 맡은 적의 거점을 파괴해서일까. 우리는 미리 베타 집결지에 가기로 결정했다.

미리 가서 우리가 먼저 그 주변을 정리하고 수송선을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긴장을 놓지는 않으며 우리는 천천히 숲 속을 걸었다.


"오늘 엄청 열심히 싸우던데? 근데 자기, 메카가 그 꼴이 나면 보통 자폭시키고 새걸 부르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하며 그녀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이미 부스터는 맛이 갔어. 근데 호출기가 말을 안 듣네. 그래서 못 부른거지. 괜히 자폭시키고 여길 뛰어다니고 싶진 않거든. 언니에게 짐만 되고.

그러는 언니는 오늘 가속기를 유난히 많이 썼네. 괜찮은거야? 조금 위험해 보이는데?"


하나가 내 가속기를 가리킨다. 내 가슴에 있는 가속기에서 바지직, 바지직, 하고 소리가 난다.


"뭐, 오늘 잘 보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힘을 써댔네. 사라지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어야겠지?"


하나의 메카가 여기저기 파손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평소보다 더 무리를 했다. 때문일까, 가속기에 과부하가 온 듯, 금방이라도 고장날거 같다.


사라지면 윈스턴이 구해주긴 하겠지. 그리고 어차피 이 힘을 사용하면 가속기 자체가 부숴지니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 언니."


살짝 불안한 감정을 갖고 집결지로 갈 때, 아이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본다. 메카 안에 엎드린 아이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웃지좀 말고. 아이의 투정에 입꼬리를 긴장시킨다.


"언니, 결혼 어떻게 생각해?"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자 아이가 볼을 부풀린다.

진지하게 좀 생각해봐!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아, 미안미안. 왜, 프로포즈는 내가 하라며."


"뭐, 언니는 지나치게 바보이기도 하고. 기다리다가 내가 지칠수도 있으니 먼저 할 수도 있는거지. 여튼, 언니는 결혼 어때?"


"너랑?"


그럼 여기에 누가 있어? 언니 딴 여자 있지! 아이가 융합포를 나에게 겨눈다.

미안, 하고 외치곤 메카의 위로 도망친다. 


무심코 점멸을 사용해서일까, 가속기에서 더 크게 바지직 하는 소리가 난다.


올라가지 마! 내가 힘들게 닦았는데! 투정을 부리던 아이가 조용해진다.

우리 둘 다 숨을 삼키고 가속기를 바라본다. 다행이도 아무 일은 없다.


"언니, 돌아갈때까지 다시는 그거 사용할 생각 마."


"으응..."


하여간, 조심이라는게 없어. 하나가 나에게 핀잔을 놓는다. 괜히 민망해져 볼만을 긁는다.

그리곤 아까 아이의 질문을 다시 생각한다.


"글쎄... 우리는 힘들지 않을까."


"우리는 일단 같은 요원이고... 우리가 결혼한걸 알면 적의 표적이 되기 쉬워질거야. 그런 점에서 연애도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그렇구나. 아이가 조용해진다.

해치를 통해 내려다보니 아이의 표정이 밝진 않다.


"미안, 거절한거 같네."


"아니, 현실적인거지. 저긴가보다 베타 집결지. 근데 저게 뭐지?"


그녀가 손으로 공터를 가리킨다. 공터의 한 가운데, 상자가 놓여 있다.


하나가 나를 부르는걸 뒤로 하고 상자를 연다.

여는 그 순간, 왜인지 시간이 천천히 가는걸 느낀다.


뱃속에 납이 차는 느낌. 이래선 안된다는 느낌. 아차.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Legacy - 3  (0) 2016.08.12
Legacy - 2  (0) 2016.08.12
최후의 만찬  (0) 2016.08.08
치료법 - 完(19)  (5) 2016.08.07
치료법 - 下  (0) 201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