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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Legacy - 4

"응. 우린 집에 도착했어. 그쪽은 괜찮아? 뉴스 봤어.
...응. 많이 다쳤어? ...응, 그렇구나. 다행이다.
..혹시 또 사고난건 없어? ...그래. 그것도 다행이다.

우리는 내일 밤 비행기로 돌아갈게, 모레 아침이면 도착할거야.
응, 그때는 나도 흥분해서 비행기 시간을 착각했어. 고마워 휴가기간 늘려줘서.
그래. 잭, 고마워. 응."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은 굳어있다.

꿈과 똑같아. 양 손으로 얼굴을 두어번 쓴다.

인도에서의 게릴라 임무. 파리하와 앙겔라는 꿈과 똑같이 정찰 임무를 맡았고, 꿈에서처럼 파리하가 부상을 당했다. 그 후에는 조기 후퇴.

그리고 22시, 베타 집결지에서의 폭탄. 이번의 폭탄은 우리가 발견하지 않았다. 잭과 라인 아저씨가 먼저 발견했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침착했고,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폭탄을 제거할 수 있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나의 행동에 자책감을 느낀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바보 레나 옥스턴. 그렇게 덤벙대니까 사고가 일어나는거야. 바보.


하지만 피했어. 괜찮아. 꿈과는 달라.
거울 속 나에게 웃어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입만 웃고 있다.

걱정하지마, 레나 옥스턴. 미리 안 덕분에 피할 수 있었어.
하나를 지킬 수 있어.

가볍게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나선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거실 장식장에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예상치 못했지만 이렇게 휴가를 보낼 수도 있구나.


***


집으로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밤, 런던의 전형적인 날씨처럼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춥진 않지만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언니는 내 어깨를 감싸안고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켜더니 '화장실에 다녀올게.' 라며 자리를 비웠다.

벽난로에서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옷을 말린다. 옷이 어느정도 마르고 몸에 훈기가 돌았을까, 거실을 쭉 훑어본다.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거실, 쇼파와 테이블, 장식장에는 모두 천을 덮어씌워 먼지가 쌓이는 것을 방지했다.
오늘 하루지만 여기서 지내려면 천을 벗겨내야지. 창문을 열고 천들을 걷어낸다.

천을 걷어내고 환기를 시켰음에도 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지만 일단은 얌전히 기다리기로 한다. 기다리는 김에 장식장을 살펴본다.

장식장 안에는 언니의 사진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사진. 그 속에는 한 가족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기념하기 위한 사진일까, 새빨간 얼굴의 아기를 사이에 놓고 부부가 웃고 있다. 언니처럼 장난스러운 얼굴을 한 여성, 언니처럼 하늘로 뻗은 머리를 한 남성. 언니의 엄마 아빠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언니의 흔적을 찾는다. 이렇게 작은 아이였구나, 우리 언니.

그 다음의 사진은 왁자하게 웃으며 걷는 언니, 처음으로 레몬을 먹은 듯, 오만상을 찌푸리는 언니의 사진이다. 이때부터 언니의 머리가 하늘로 뻗기 시작한거 같다. 오만상을 찌푸리는 언니의 얼굴을 보며, 저번에 매운 떡볶이를 해 줬을 당시의 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다음 사진은 학교에 들어간 이후일까,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는 언니와 피아노를 치는 언니의 사진이 있다. 언니는 피아노도 쳤구나. 처음 아는 사실에 사진을 더 집중해서 본다.

이 이후에도 소풍을 가서 장난을 치는 언니, 상을 받는 언니의 사진을 차례대로 지나간다. 이 모든 사진에 언니의 엄마나 아빠가 함께 찍혀 있다.

그리고 다음 사진을 보니 한참의 시간이 지난듯, 지금의 언니와 가장 비슷한 나이대의 언니가 있다.

공군에 입대한걸까,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한 언니가 있다. 입꼬리는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지만 아까의 사진들과 비교하면 묘하게 침착한 느낌이 든다.

"이 사진부터는 부모님이 안 계셨거든.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돌아가셨어."
뒤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니가 나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아, 언니…"

"오랜만이네 이 사진들…" 언니가 손끝으로 사진을 쓴다. 부모님의 얼굴이 찍힌 사진들은 유난히 더 손이 머문다.
"그리워요?"

"안 그립다면 거짓말이지? 내가 마지막 옥스턴이야. 우리 아버지는 형제도 없었고, 나는 외동딸이었거든. 외로웠었지. 하지만 뭐 지금은…"
어깨를 으쓱이며 언니가 마지막 사진을 가리키고 나를 가리킨다.

오버워치의 요원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나.

언니가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응. 외롭지 않아. 꼬맹이가 있는걸."


**


분위기가 칙칙해지는 것 같아 화재를 바꾼다.
"언니 피아노도 쳤어요? 처음 아는 사실이네?"

"그렇지? 중학교때는 밴드부 활동도 했어. 내가 클래식을 연주하는건.. 좀 취향에 맞지 않아서."
손가락으로 허공의 건반을 두드리던 언니가 씩 웃는다. 보여줄까? 언니에게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 올라가 방 몇개를 지나간다. 여기는 부모님이 쓰시던 방. 여기는 내 방. 그리고 여기. 언니가 방 하나하나를 소개하고는 언니의 방문 옆에 있는 문을 연다.

창문조차 없는 좁은 방, 언니가 방의 불을 켜자 윈스턴의 연구실처럼 큰 모니터 두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앞에는 볼륨을 조정하는 복잡한 음향장치와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가운데에는 전자 피아노가 있다.

언니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기계의 전원을 켠다. 그리고는 헤드폰 두 개를 꺼내 나에게 하나를 건네고 자신도 하나를 쓴다.

"이건 녹음기야. 우리 말도 녹음이 될 수 있고, 악기를 녹음할수도 있지. 자, 아무 말이나 해봐."

아무 말? 갑작스러운 요구에 머리가 하얗게 된다.

"큼큼.. 아아, 나는 송하나입니다."
언니가 버튼을 누르자 내 목소리가 다시 재생된다. 바보같은 목소리에 얼굴이 빨개진다.

"이게, 휴대전화로도 동기화가 되는데.. 이렇게 하면… 음음,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언니가 휴대전화에 대고 내가 종종 하는 말을 한다. 화면을 터치하자 "음음,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언니의 말이 내 목소리로 나온다.

언니가 과장해서 평소보다 더 도도한 말투를 내서 그런가. 내 목소리에 내 얼굴이 더 빨개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거든?! 언니의 팔을 주먹으로 치니 언니는 그저 낄낄 웃는다.

"우와, 이게 뭐야? 범죄에 악용될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범죄에 쓸 정도로 정교하진 않아. 음성 인식을 보안수단으로 삼는 기기는 그렇더 정교하게 목소리를 분석하지. 아마 siri같은 간단한 음성 명령은 인식되지 않을...까…"

언니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곰곰히 뭘 생각하는거 같아 가만히 있다 심심해서 건반을 눌러본다. 생각보다 큰 소리가 헤드폰에 울려 언니와 나 모두 어깨를 움찔한다.
아, 미안 생각할게 있어서. 라며 언니가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장난기가 가득 찬 얼굴이 된다.


*


"이렇게… 하면 피아노."
언니가 몇번 손을 풀듯 건반을 누르더니 천천히, 피아노를 연주한다.
재즈를 연주할 줄 알았는데, 언니가 치는 곡은 어딘가 슬픈 느낌이 나는 곡이다. 하지만 뭔가가 비어 보이는데…

"이걸 이렇게 녹음하고… 이렇게 하면 현악기의 음색이 나오지."
그 다음은 현악기를 연주하듯, 느리게 손을 움직인다. 헤드폰에서 구슬픈 현악기의 멜로디가 나온다. 아, 이게 메인 멜로디구나.
그렇게 여러가지 악기의 음색으로 언니가 연주를 한다. 그리고는 기계를 조종한다.

"그리고 이렇게 섞으면, 자."

분명 언니 혼자서 연주한 곡인데, 많은 사람이 합주한 음악이 나온다. 신기해 언니를 바라보니 언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멋지지? 언니가 이렇게 숨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야. 어때? 칭찬을 하려면 지금이야."

"그러게. 멋지다… 언니와 어울리지 않게 슬픈 곡이고…"

"마지막 말은 좀 신경이 쓰이지만, 뭐 괜찮나.." 언니가 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일어선다. 내 뒤에 서더니 내 등을 돌려 마주본다.

응? 하고 궁금해 언니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니 언니가 몸을 숙여 나와 눈을 맞추다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상자를 여니 오래된 반지가 들어있다. 그리 굵지는 않은 반지, 위에 루비 몇개가 장식되어 있고, 가운데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하나였던 악기는 외로웠잖아. 노래도 단조롭고.
너와 함께 있으니 재미있어. 내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야.
결혼...은 좀 그렇겠지? 네가 아직 어리니. 그러니 내 약혼자가 되어줄래요, 송하나양?
우리 함께 재미있게 연주하자."

언니가 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떨리는 눈동자를 통해 언니가 긴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본거 같아 얼굴이 빨개진다. 언니가 혹시 내 캐비넷을 본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언니가 이마에서 배어나오는 땀까지 연출할 거짓말의 귀재가 아님을 안다.

"응, 나야 좋지. 언제라도 환영이야 언니."

언니의 볼을 감싸안고 입을 맞춘다.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입술에 닿는 언니의 입꼬리도 함께 올라가 있다. 언니도 웃고 있구나.

"고마워, 사랑해 하나야."

그렇게 깊고도 긴 입맞춤을 나누며 우리는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온다.
방 벽이며 복도에 몸이 부딪치지만 개의치 않고 입맞춤을 계속 한다. 언니가 손을 뒤로 돌려 언니의 방 문을 연다. 그렇게 언니가 이끄는 대로 나는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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