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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첫 걸음 - 6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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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이 무서웠나? 내가 뭘 실수했나? 그것도 아니면 의사 선생님에게 가는게 긴장되는걸까?

레나는 하나의 휠체어를 몰며 그녀의 눈치를 본다. 아무 말 없이 게임을 하고 있지만 입이 굳어있는게 뭔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다.


아침부터 그녀는 저기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리를 주물러주면 기분 좋게 일어나서 '늙으면 아침잠도 없나봐.'라고 농담을 던지던 애가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하질 않나, 아침밥도 절반 이상을 남겼다.

기분이 좋지 않은가 싶어 화장실에서 속옷을 내려주며 '우리 하나 속옷이나 볼까?'라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싸늘하게 말을 했다.


나는 이런 싸늘함에 익숙하지 않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빈틈도 내주지 않는, 아니 모든걸 마음대로 하라는 하나의 태도에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


의사는 하나의 발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제 어느정도 위로, 아래로 움직이는 그녀의 발목을 보며 의사는 놀란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간 많이 노력하셨네요. 이렇게 되기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아니라 하나가 더 고생했죠, 그럼 이제 곧 있으면 정상으로 걷는 건가요?"


내가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했을까, 의사는 내 질문에 껄껄 웃었다.


"발목 움직이는걸로 금새 걷는다면 재활이 그렇게 힘든게 아니겠죠. 이제 종아리부터 허벅지 근육까지 전체적으로 운동이 필요할겁니다.

본격적으로 물리치료실에서 치료과정을 밟도록 하죠.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딛은 겁니다. 아, 옥스턴씨가 힘들다면 전문 간병인을 고용하는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네요."


전문 간병인?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사람은 하나를 더 잘 케어해 주려나? 그렇다면야 당연히 하나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왜일까. 하나와 같이 있지 않는단 상상만 해도 이유없이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이 감정이 뭐지? 잠시 생각한다. 아. 책임감. 이건 책임감일수도 있겠어.


"아뇨, 이왕 하기로 한 것, 끝까지 하고 싶어요. 하나가 첫 걸음을 걷는걸 꼭 보고 싶네요." 나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꽉 붙잡으며 말했다.


*


"왜 전문 간병인에게 맡기지 않은 거에요?"

진료실에서 나오자 마자 하나가 질문을 한다. 동그란 눈으로 올려다보는게 토끼같다.


"글쎄, 내가 해주는게 편하잖아. 볼거 다 본 사이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가 손을 들어 내 손등을 친다. 아무데서나 그런 부끄러운 소리 마요!


다시 하나가 밝아진거 같아 기분이 좋다. 

자, 그럼 물리치료실까지 가 볼까. 휠체어를 씽씽 밀다가 그 뒤에 올라탄다. '위험해요!' 라고 아이가 소리를 치지만 상관없다. 이상하게 기분이 더 좋네.


***


언니가 내가 걷기 전까지는 내 옆에 있어준다고 말했다. 그 말이 왜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유치한걸 알면서도 언니가 내 옆에 있어준다는거에 어제 생겼던 마음의 앙금이 사라진다.


걸을 수 있을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한두달 안에 걷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은 걸리지 않을까.

그 동안은 언니가 계속 옆에 있을 것이다. 뭐, 내가 용기를 낸다면 그 사이에 언니에게 고백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에 물리치료사가 수조에 나를 넣는다.

부담이 적게 물 속에서 걷게 하려는 목적이겠지.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물에 발이 닿자마자 깜짝 놀란다.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데 놀라서일까. 쥐가 난다. 엇 하는 사이에 얼굴에까지 물이 닿는다. 메카에서 떨어지는 느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몸이 떨린다.


아! 하고 비명을 지르자 물리치료사가 나를 세워서 수조 밖으로 빼내려 한다.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언니가 나의 몸을 안고 수조 밖으로 나온다.

심장이 쿵쿵대고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때의 느낌이 다시 몸에 생생하다.


물리치료사가 내 다리의 쥐를 풀어주려 다리를 주무른다. 아파서 소리를 지른다. 단순히 근육이 놀라 아픈 것인데 숨이 가빠진다.


"하나야, 언니 여기있어. 숨 좀 천천히 쉬자. 괜찮아. 언니가 안 넘어지게 해줬지? 안넘어질거야. 괜찮아. 언니가 지켜줄게."


지켜줄게, 여기에 있어. 걱정하지 마. 언니가 주변에서 얻은 종이봉투를 내 입에 대 주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언니의 갈색 눈만을 바라본다.

어제, 눈 내리던 밤에 봤던 언니의 눈.

-떨어지는건 무서운게 아냐. 언니가 널 지켜줄게.-


날 걱정을 하는 언니의 눈. 언니의 눈을 바라보며 점점 진정하게 된다.


***


수조에서 하나가 걷는걸 보고 있다. 나도 수조 안에 같이 몸을 담그고 있다.

하나는 수조에서 다리가 미끄러지는걸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것이 메카에서 떨어질때의 느낌을 유발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녀의 트라우마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소심하게 움직인다. 물리치료사에게 온 몸을 의지하고 스스로 서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물리치료사도 물리치료사대로 몸만 지치지 치료는 되지 않고 있다.


무섭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나에게 보여줬던 그 움직임은 어디에 있지? 하나답지 않은 행동을 보며 기분이 나빠져 머리를 벅벅 긁는다.

결국 오늘도 아무런 성과 없이 수조에서 건져진다. 지친 그녀의 몸을 마사지해준다. 원래대로라면 격려도 칭찬도 아끼지 않았을테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런걸 해 줄 기분이 들지 않는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 나도 그녀도 아무 말이 없다.


*


"요즘 자기 잘 안움직이네, 어디 아파?"


식탁을 사이에 두고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연다. 입에 음식을 문 채 그녀가 식판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하아, 이건 혼내는거 같네. 혼내고 싶진 않은데.


"빨리 걸어야지. 예전에는 겁도 없이 먼저 힘주고 그랬는데 이젠 안그런거 같아서.

예전에도 빨리 걷고싶다고 욕조에서 잡아달라고 했잖아. 근데 오히려 그걸 하게 되니 더 소심해진거 같아서."


아직도 말 없이 음식을 깨작거리는 하나를 보니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아이를 구슬리는 법을 궁리한다.


"아, 자기야. 이건 어때?"


하나가 그제서야 내 눈을 바라본다.


"만약 자기가 걷게 되면, 우리 놀이동산 갈래? 같이 놀이기구도 타고 사파리 구경도 하고... 자기는 오락도 좋아하니 오락실도 가고. 우리 놀러 나가자.

답답했잖아, 응?"


한참 나를 바라보던 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다행이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근데 수조에서 언니가 잡아주면 안돼요?"


"응?"

아이가 뭔갈 요구할 줄은 몰랐기에 되묻는다.


"언니가 내 몸을 잡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덜 불안해서 더 잘 걸을거 같아. 그렇게 해 줄수 있어요?"


아이가 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이번에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또 이게 왜 이러지?

그래도 일단 대답은 해야 한다.


"그럼! 네가 빨리 낫기 위해서라면 내가 언제든 잡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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