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첫 걸음 - 4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21

------------------------------


의학적 근거가 없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마시고,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의학적 조언을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아니, 사랑할지도 모릅니다.ㅎㅎ


변화는 천천히, 일어난다.
매일매일 제자리인거 같지만 어느 순간에 뒤를 돌아보면 이 만큼 왔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모든 사람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전날, 레나는 하루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


근육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하나가 걷는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반신의 신경은 정상인과 다르지 않았다. 바늘로 찌르면 통증을 느꼈고 뜨거운 느낌도 차가운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와서 걷겠다고요?

많이 힘들텐데...지금 당장 걷겠다고 하는건 무리고 일단 근육 마사지를 자주 해 주세요.
그리고 특히 발목이 체중을 견딜 수 있도록 근육 강화운동 위주로 진행을 해 봅시다.

운동 치료는 그 이후에 해 봅시다. 지금은 그냥 병실에서 이리저리 힘을 줄 수 있도록 자주 주물러주시고, 힘을 주도록 많이 격려해주세요."


**


그래서 내가 한 일은 그저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는 것,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주며 힘을 쓰도록 격려하는 것. 그 뿐이었다.

"조금 더 힘을 줘봐! 내 손을 밀어보라고!"

하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볼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아이는 온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위로 들어올린 발을 내리진 못했다.

작은 움직임도 마음대로 되지 않자 아이는 처음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 봐요. 안되잖아요. 언니도 고생하지 말고 못하겠다고 위에 말하는건 어때요?

그 후에는 짜증을 냈다.
-안되는걸 어떻게 하라는거에요! 오늘 언니 보고싶지 않으니까 나가요!

하지만 나는 꾹 참았다. 성을 내는 아이의 모습에서도 힘 없이 웃는 아이의 얼굴도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불쌍하지 않은가. 활기차게 뛰어다녀야 할 나이에 아이는 이 칙칙한 병실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때문에 나는 더 웃어줬고, 더 장난을 쳐 줬다.
다시 아이가 게임을 시작했으면 좋겠어서 게임 소프트를 사 줬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뭘 먹었으면 해서 간식을 사다가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화내서 미안해요 언니.

그런 나의 모습에 결국 먼저 손을 든 것은 그녀였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


아, 안되네. 천장을 바라보며 헐떡거리는 아이의 턱을 보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안되는걸까, 목까지 번들번들하게 땀이 젖은 꼬맹이를 보며 오늘은 이만 할까, 하고 옆에 있는 수건을 들어 아이에게 전하려 했다.
"하아… 한번만, 한번만 더요."

하나가 이를 악물고 나에게 말했다.
오늘 하나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평소라면 오늘 하던 양의 절반정도만 해도 "이제 그만, 힘들다구요!" 하면서 베개를 던졌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나에게 조금 더, 자신의 발을 밀어보라 요구하고 있었다.

"근육통이 심할텐데, 괜찮겠어?"

"응.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해볼게, 언니."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건 처음이었다. 꼬맹이의 적극적인 모습이 반가워 몇번 발목을 돌려서 근육을 풀어주고는 다시 발목을 다리 쪽으로 밀었다.

아이가 힘을 준다. 이를 악물어 볼 위로 불룩하게 이 모양이 솟았다.
역시, 꼬맹이는 내 손을 전혀 밀질 못했다. 역시 안되는거……!!


"자기야!"

조금씩, 부들거리지만 아이의 발이 내 손목을 밀고 있었다. 아니, 미는 느낌이 전해진다.
여태 내가 움직이는대로 힘없이 늘어지던 하나의 발목이 이제 내 손바닥에 약간이나마 압력을 주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해냈다! 하는 표정.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에서 성취감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서만 보이던 그 표정이 야윈 아이의 얼굴 위로 나타나자 엄청난 감동을 느낀다.


***


망할 다리. 망할 발목. 망할 언니.
1년간 움직이지도 않은 근육이었다. 움직이지 않을거란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달랐다.
언젠가는 움직일거야! 내가 움직이게 도와줄게!
태평하다 못해 멍청한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비웃음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길 바라는 그 이유를 듣고는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예전의 멋진 모습을 보고싶다고 언니는 말했다.

그래서 시작한 재활. 하지만 이 더딘 회복속도는 내 성질만을 돋울 뿐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언니의 노고를 비웃어도, 언니의 노력에 오히려 화를 내도 바보같이 웃으며 나를 달래주는 언니.

다리를 잘라서 언니에게 던져버린다면 이번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 말을 안듣는 이 다리, 그냥 버려버리고 싶어.
그 태평한 얼굴을, 밝은 얼굴을 역으로 상처입히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내 다리를 주물러주는 언니, 근육통에 시달려 끙끙 앓는 날 위해 밤을 꼬박 새며 다리를 주물러주는 언니를 보며 든 마지막 감상은 미안함이었다.

-언니 미안해.
내 말에 언니는 그냥 쓱쓱 머리를 빗어주더니 '그럼 내일은 재활할때 욕 좀 그만해.' 라고 농담을 던질 뿐이었다.


**


크리스마스 이브. 이 날 밤에는 산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갖다준다고 한다.

나는 결코 착한 아이가 아니다. 울기도 엄청 울었고, 욕도 많이 했고 남에게 상처도 줬다.
하지만 언니는 착한 어른이잖아?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발목에 아무리 힘을 줘도 언니의 손을 밀어낼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발목을 노려본다. 좀 움직이라고 이 망할 발목아.

"하아, 잠깐 숨 좀 돌려. 자기 얼굴 터지겠다."
언니가 농담을 던지며 손에 힘을 푼다. 입은 웃고있지만 언니의 눈에 드러난 것은 좌절감.

"하아..한번만, 한번만 더요."

산타 할아버지라면 착한 아이든 어른이든 선물을 줘야 할거 아냐.
산타가 아니면 내가 줄게 그 선물. 그러니까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삼키지 말아줘.

한번 더 하겠다는 말에 언니가 환하게 웃는다. 몇번 언니가 시원하게 발목을 돌려주더니 다시 발목을 위로 민다.

이를 악문다. 볼이, 팔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느껴진다.
이미 오늘 할 할당량은 다 채웠다. 근데 움직이지 않았잖아. 선물을 주려면 오늘이 제격이야.

산타던, 예수던, 부처던. 그 누구라도 좀 도와줘. 저 언니의 얼굴을 보라고.

"자기야…!"

미세하지만 발목에 힘이 들어간다. 발바닥으로 언니의 손을 천천히 민다. 후우..후우..!
발을 끝까지 밀어낸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던 힘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내 몸 위로 언니의 무게가 느껴진다.

"자기야!"

언니가 말을 잇지 못한다. 어깨에 툭,툭하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고마워! 잘했어 우리 꼬맹이. 대단해! 최고야! 아…..고마워! 고마워!"

나도 언니의 등을 끌어안는다. 산타할아버지의 감격스러운 선물에 나도 눈물이 난다.
"나도 고마워. 언니 덕분이야. 고마워."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종교가 없는 나, 성질 더럽고 못되먹은 나에게도 산타는 선물을 준다.
언니 덕분에 나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온다.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걸음 - 6  (0) 2016.08.14
첫 걸음 - 5  (0) 2016.08.14
첫 걸음 - 3  (0) 2016.08.14
첫 걸음 - 2  (0) 2016.08.14
첫 걸음 - 1  (0) 201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