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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첫 걸음 - 7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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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손 놓지마! 손 놓으면 진짜 미워할거야! 돌아가서 베개로 엄청 때릴거야!"


뒤에서 아이의 허리를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걷는다. 아이도 뻣뻣하다만 천천히 앞으로 걷는다. 아이가 걷는데에 집중해 한창 인상을 구기고 있을때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아이가 허리가 허전한지 어? 하며 몸을 굳힌다. 그 순간 몸이 아래로 푹 꺼지려고 한다.


이크, 재빨리 아이의 허리를 잡아 일으켜 세운다. 턱에 물이 닿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손 놓지 말라고 했잖아!"


"하하! 그래도 두 걸음이나 걸었잖아. 자기 이제 금방 걷겠는데?"


아이가 물속에서 씩씩대며 주먹으로 내 팔을 친다. 팔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제법 아프지만 손을 들어 막을 수 없다.


"그동안 많이 나아졌네, D.va"


오랜만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우리 둘 다 고개를 돌린다. 앙겔라와 잭이 우리를 보며 인사를 한다.



***



"이제 곧 혼자서도 잘 걷겠는데요?"

바닥에 앉아서 내 다리를 주무르는 언니의 등에 대고 치글러 박사님이 얘기를 한다. 그녀는 언제나 친절한 분이니 빈말으로라도 그런 말을 하실 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박사님의 뒤에 있는 저 아저씨다.


"트레이서, 이제 임무로 복귀하는건 어때?"


아저씨가 언니에게 묻는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질문을 아저씨가 먼저 말한다.

언니의 손이 멈춘다.


"내가 꼭 필요한 일이야?"


"우리는 늘 인력이 부족했어. 알고 있지 않아?"


흐응. 그랬었지.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내 다리를 주무른다.

그러더니 꼬맹아 잠깐, 하고 언니가 나에게 타월을 주고 그들과 나간다.



그래. 언니는 내가 잡고 있어선 안될 사람이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누군가가 언니를 데려갈줄은 몰랐어.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럼 적어도 지팡이를 짚은 채 홀로 서서 언니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꼴로는 언니에게 고백을 할 수 없다. 지금 나의 상태는 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상태다. 언니가 내 고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 자신이 지금 나의 상태를 용납할 수 없다.


타월에 얼굴을 묻는다. 생각했던 이별이 너무 일찍 와서 눈물이 나올 거 같다. 하지만 울면 안돼. 그래도 언니에게 고맙다고 말해줘야지.

한참 후 언니가 돌아온다. 언니의 얼굴도 그닥 밝은 편은 아니다. 나에게 가겠다고 얘기하는게 즐겁진 않겠지.


언니는 마저 내 몸을 닦아주고 말 없이 날 안아서 휠체어에 태운다. 언니의 얼굴이 하도 심각해서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질 못했다.



**



밥을 먹는데도 언니는 아무 말이 없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결말이 어느 쪽으로 나던, 더 늦기 전에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다.


"아저씨랑 박사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응, 업무 복귀에 대해서."


아.. 그렇구나.


"많이 바쁘대?"


"거긴 늘 바쁘지. 인력이 없으니까 고집불통인 토끼도 꼬셔오라고 날 보낸거잖아."

언니가 말 끝에 장난을 붙인다. 하지만 나는 장난할 기운이 없다.


"그래서, 언제 가는거야?"


"응? 어딜?"


"다시 임무로 복귀하는거. 더이상 날 간병하지 않는거."



***



잭과 앙겔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싸울지도 모르는 얘기를 환자들 앞에서 하고싶진 않다.


"그래서, 복귀는 언제 할 생각이지? 저정도로 아이를 일으켜 세운 것만 해도 임무는 성공이야. 이제는 그만 임무로 복귀해."


잭이 냉담하게 말한다. 그래. 그의 말이 옳다. 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언젠가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 당분간 복귀는 미룰래. 음... 휴가라고 해도 좋고, 뭐든."


"어째서지?"


"모르겠어. 저 애가 걷는걸 보고싶어."

이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을 묵살할 사람들도 아니다.


잭과 앙겔라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잭이 어깨를 으쓱, 한다.


"앞으로 1년. 안식년을 갖는걸로 하지. 이후에, D.va와 복귀하길 바란다. 그걸 새로운 임무로 생각해."


내 마음을 꿰뚫었다는듯 잭이 나에게 말한다.


"레나. 의료인과 환자 간에는 사적 관계를 가지면 안되는거 알죠? 당신이 공과 사는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별로! 하나를 좋아하거나 그런건 아닌데? 그냥.. 그 애가 씩씩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찾았으면 해서..."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하며 앙겔라가 웃는다. 그렇게 둘은 돌아간다.



둘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한거지? 그녀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 적은 많지 않았나.


그래. 그녀가 간간히 보여주는 자신만만한 모습. 활짝 웃는 모습.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어.


내 마음을 알게되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앙겔라의 말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담...



***



"간병은 1년 후에도 계속 할건데? 이번에 임무 내용이 바뀌었어. 1년 후까지 너랑 같이 있다가 같이 걸어서 복귀하는걸로."


그녀의 엉뚱한 질문에 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얼굴을 계속 살펴본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묻는다.


"언니, 혹시 나와 있는게 싫은거야?"


"아니? 그건 왜?"

싫긴, 좋아서 문제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억지로 눌러담는다.


"언니 얼굴이 어두워서..."

내가 그렇게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나? 당황스러워 물을 마신다.


"사실 나는 언니가 계속 나랑 있어준다니까 좋은데...

1년 후까지 나랑 있는다니 미리 말하는데, 나 언니가 좋아. 그러니까 언니가 그런 생각이 없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꿔줬음 좋겠어."


놀라서 물을 뱉으려는걸 억지로 삼킨다.


"자, 자기...! 무슨 소리를 하려는거야?"

물이 한번에 목으로 넘어가니 가슴이 아프다. 가슴을 쾅쾅 두드려 아픈걸 진정시키니 아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언니는 나 싫어?"


"싫은건 아닌...데!"


"그럼 여자랑 사귀는거에 관심 없어?"


"잠깐, 잠깐. 애초부터 우린 사귀면 안돼. 의료인이랑 환자는 사귀면 안된대."


이번엔 아이의 얼굴이 멍해진다. 그래, 너도 슬프지. 나도 슬퍼.

한참 아이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 안색이 밝지는 않다.


"언니..."


그래. 내일 다시 임무로 복귀하자. 그게 우리 둘에게도 좋을거야.


"간병인은 비 의료인이야."


응?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자 하나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천천히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



"앙겔라."


"네?"


"레나에게 왜 거짓말을 한 거지? 간병인은 비 의료인이잖나?"


앙겔라가 피식 웃는다. 들켰네요. 하고 그녀는 말을 잇는다.


"편한 임무를 하는데다가 연애까지 하잖아요. 어린 애들이. 그냥 질투가 나서요."


잭이 고개를 젓는다. 하여간 못 말리는 사람들이야,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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