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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첫 걸음 - 5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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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줄까, 상으로 받고싶은거 없어? 하고 물어보니 아이는 그저 눈을 보고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싸라기눈에서 함박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을 보고싶어.'라.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기쁨으로 반짝이는 아이의 눈. 

하나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런 애가 과연 보고만 싶어할까...



***



"눈은 보는게 아니라 맞는거야."

언니는 옷장을 열더니 자신의 옷을 꺼낸다. 병원에서 지낸지 1년. 나에게 겨울옷은 없다.


언니는 자신의  코트와 양말 등 겨울옷들을 꺼내 나에게 입힌다.

어서 입고 눈 맞으러 가자. 이런 눈은 맞아줘야해.


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휠체어가 잘 미끄러진다. 언니가 끌기에 불편할텐데…

언니에게 뭐라 말 할 틈도 없이 어느새 바지까지 두툼한 바지로 갈아입혀졌다. 이제 허락도 받지 않고 마구마구 벗기고 입힌다.


"업혀."


"네?"


"눈을 보면 뛰는거야. 강아지도 즐거워서 뛰잖아. 우리도 오늘  자기의 발이 처음으로 움직인 것을, 그리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뛰면서 즐기는거야."


어서, 하고 언니는 나에게 등을 들이댄다. 하는 수 없이 언니의 등에 업힌다.



***



"언니! 너무 빨라요!  무서워요! 으악!"

말로는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꼬맹이는 내 뒤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


가속기의 힘을 사용해서 건물의 사이사이를 건너뛴다. 아이가 이렇게 높은 소리로 웃는건 처음이라 기분이 좋다. 


"우리 토끼 저기다 던져버릴까!"

아이가 기분좋게 깔깔거리자 더 한 장난도 치고 싶다. 아이를 앞으로 안고 건물 아래로 던지는 시늉을 한다.


"언니! 이건 진짜 무서워! 나 싫어! 진짜 싫단 말야!"


아차,

아이의 안좋은 기억을 건드린걸까, 아이의 얼굴이 대번에 새파랗게 질린다.


손을 멈춘다. 아이가 나의 목에 팔을 단단히 두르고 있다. 이대로 내려놓을까? 미안하다 사과하는게 낫겠지?


아니,

이대로 아이를 내려놓는다면 오늘 밤의 분위기는 이대로 칙칙해질거 같다.


아이를 안은채 건물 아래로 뛰어내린다.

아이가 겁에 질려 나의 목을 꽉 끌어안는다.


가속기의 힘으로 건물 벽에 있는 난간에, 반대편 건물의 난간에, 구급차 지붕에, 차례대로 발을 디디며 땅으로 닿는다.


꼬맹이는 겁에 질려 눈을 꼭 감고 있다. 나에게 이런 일은 임무 중에 항상 하는 일이기에 전혀 무섭지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겠지.


"하나야."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눈을 뜬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떨어지는건 무서운게 아냐. 내가 널 지켜줄게."


하나가 나를 멍하게 본다.


역시, 아무래도 내가 분위기를 깬 것 같다. 

미안해져 이번에는 다른걸 해 주기로 한다.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을 내린다. 무너지려는 하나의 몸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가벼워서 다행이야. 한발씩, 한발씩, 내가 그녀의 몸을 안아들어서 걸음을 옮기게 한다.


<뽀드득 - 뽀드득> 아이의 발 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난다.


"아….."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히 감탄사가 나온다.


"자, 이거 봐. 눈은 이렇게 즐기는거야. 재밌지?"


아이의 몸을 뒤에서 안고 눈을 밟는다. 아이도 오랜만에 느끼는 눈의 촉감에 고개를 땅에 대고 있다.


잠시 후, 아이가 몸을 떤다. 하아아, 하고 떨리는 숨결에서 나오는 입김이 하늘로 타고 오른다. 나는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단단히 안아준다.

그렇게, 계속해서 우리는 눈밭을 걷는다.



***



언니는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난 욕조에 앉아 부스의 반유리로 비치는 언니의 실루엣을 본다.


"언니는 아까 떨어질때 걱정같은거 되지 않았어요?"


"무슨 걱정?"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지 않을까, 잘못해서 크게 다치진 않을까..."


깔깔깔, 언니가 샤워를 하다 말고 웃는다.


"아, 그럴 리는 없어. 설사 발을 헛디뎌도 다시 거꾸로 돌리면 되거든."


그렇구나.

여태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언니는 트레이서, 오버워치의 전투 요원이다. 그런 언니가 벌써 한 달이 넘게 나만을 보고 있다.


언니는 다시 현장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까?


"언니."


"응?"


"언니는 다시 임무하러 나가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물소리가 끊기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 소리가 들린다.

말이 잠시 멈추고 수건이 비벼지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에 차 있다.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빠진 만큼 다른 사람의 부담이 커지니까."


역시...



***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나오니 아이의 표정이 어둡다. 아까 옥상에서 뛴 것이 아직도 무서웠던 것일까.

몸을 닦아주고 침대에 눕혀 마사지를 해주는데도 아이의 입은 조개처럼 꾹 닫혀 있다.


"자기, 아까 내가 옥상에서 뛴건 미안했어."


"그런거 아니에요." 


아이가 고개를 휙 돌리고 게임기를 잡는다.

그간 아이의 두려움을 극복해주기 위해 다시 게임을 하도록 권했다. FPS나 액션 게임은 힘들어도 경영이나 리듬게임은 곧잘 했다.

아이가 게임기로 얼굴을 가리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말 없이 다리만 주무른다.



"아, 언니. 오늘은 따로 자 주실래요?"


잘 시간이 되어 아이의 옆에 누으려 하니 아이가 거절한다.

평소에는 자기가 먼저 옆에 누으라고 하더니 불편하다며 내려가 자라고 한다.


아이가 갑자기 차가워진것이 이상하다. 불을 끄고 보조침대에 눕는다.

어두운 방, 빛을 등지고 있는 나의 모습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밖에서 들었던 아이의 높은 웃음소리, 웃는 입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때의 얼굴은 과거 내가 아이에게 보여줬던 사진과 비슷하다.

자신감 있는,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는 얼굴. 뜬금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마 나도 오늘 많이 흥분했기 때문일거야. 그래. 몸을 움직여 자리를 좀 더 편하게 만들고 잘 준비를 끝낸다.



***



부스럭대는 소리가 멈춰 고개를 돌려 언니의 얼굴을 본다.


언니가 있을 곳은 이 병실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전장터이다. 내가 언니와 같이 싸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6개월? 1년?


1년이 지나도 보통 사람처럼 걷는건 힘들 것이다. 그때까지 언니는 내 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럼 언니 없이 혼자서, 다시 걸어야 하는걸까.

괜히 마음 한켠이 추워진다.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보고 눈을 감는다. 외로운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나올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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