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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얼굴을 만지고 있다. 관자놀이부터 볼을 타고 턱 끝까지 스르륵,하고 손이 내려간다. 조물조물, 하고 귓볼도 만진다. 익숙한 사람의 살 냄새가 좋아 가슴으로 파고든다. 등을 토닥토닥 쓸어주며 나를 깨운다.
"꼬맹아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안좋은 꿈을 꿨다구요. 지금은 이렇게 잠깐만..
"우리 토끼는 아침에 약하다니까."
레나언니가 낮게 웃으며 내 정수리에 입을 맞춘다. 언니의 웃음소리가 너무 기분이 좋아 가슴에 더 고개를 파묻는다.
"자기, 그러면 간지럽다고. 그만그만!"
허리를 간질이자 그녀가 이불을 걷어낸다. 아, 아쉽다. 그녀가 내 다리를 쭉쭉 주물러준다. 난 성인이니까 더 이상 키가 크질 않아요. 하지만 그녀는 늘 내 다리를 주물러준다.
꼬맹이는 다리를 너무 웅크리고 자서 내버려두면 쪼그라들거야. 라고 말한다.
쭉쭉이가 기분좋게 잠을 깨워준다. 몸에 닿는 햇빛도 아래에서 내 다리를 주물러주는 그녀의 손도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그릉거리게 된다.
가볍게 씻고 나와 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는다. 오늘 작전은 오랜만에 적 소탕이 아니다. 분쟁 지역의 한 도시에 구호 물품을 제공하는 NGO 단체를 지키는 것이다.
"처음으로 언니랑 같은 조네요."
"응! 오늘은 뭐 지키는 거니까. 내가 딱히 뒤에서 누굴 놀라게 하는것도 아니고. 자기랑 같이 얘기도 하고 메카도 타보고 싶어!"
"무슨 소리에요, 왜 언니가 메카에 타요."
"메카가 핑크핑크한 토끼같이 생겼는데 왠지 그게 춤을 추면 엄청 귀여울거 같지 않아?"
"안돼요."
"응? 자기- 제발-"
"안돼요! 저 그럼 사유서 써야 해요. 한국 국군의 고리타분한 윗선들은 그걸 이해 못한다구요."
어이없는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기는 치사해. 재밌는거 자기만 갖고 놀고. 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언니 입에 토스트를 물려주니 웅으웅으웅으 투정을 부리며 와삭와삭 먹는다.
하여간 애 같다니까...
그래도 누구를 죽이러 가는 일이 아니라 오늘은 한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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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엉망이네, 여기."
"...네."
현장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파괴된 가옥들이 펼쳐진 곳에 천막 하나가 지역 주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병자와 건강한 사람이, 남성과 여성이, 아이와 어른이, 산 자와 죽을 자가 구별없이 누워 있다.
그들에게 깨끗한 물과 신선한 식량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핀다.
NGO 출신의 의사와 치글러 박사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한다. 다른 사람들은 천막을 설치하고 구덩이를 판다. 구덩이는 죽은 사람들을 파 묻고 화장을 하려는 용도이다.
"이런걸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 자기는 괜찮아?"
"..."
"자기?"
"...아, 아.. 네... 나는 괜찮아요."
무의식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기억들이 의식 위로 떠오른다. 이럴 줄 예상했어야 하는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잊고 있었나보다. 게임이라고, 게임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지만 결코 게임이 아니다.
게임에서 상대방 진영을 파괴하면 그 진영의 파괴된 잔해와 시신들은 몇 초 후에 사라진다. 하지만 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몇년이고 끈덕지게 남아 당사자의 마음 속에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우리 저쪽으로 가자."
레나언니가 내 얼굴을 살피며 나를 끌어당긴다. 정신차려, 자기. 하면서 내 메카 위로 오른다.
"와- 경치 좋아! 꼬맹이는 늘 이정도 높이에서 싸우는구나."
"우리 놀러 온거 아니니까 내려와요. 어디에서 저격 당할수 있잖아요."
아까 본 것 탓인지 기분이 가라앉아 언니에게 한 소리를 한다.
"익숙해지지 않을거야. 늘 볼때마다 아프지."
"네?"
언니가 내 눈을 바라본다. 장난기가 가득 찬 얼굴이 아니다. 처음으로 보는 진지한 얼굴이다.
"자기. 그러니까 우린 이런걸 막기 위해 싸우는거잖아. 한 사람이라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글쎄요.. 저는 그런 이유로 싸우고 있을까요..
아무 말 없이 앞을 바라본다. 시야의 저 편에서 어떤 움직임이 포착된다.
언니도 그것을 보았는지 권총을 손에 쥔다.
아이었다. 힘 없는 걸음걸이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순간, 뭔가 반짝였고 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쓰러진다.
"자기, 엄호해줘!"
내가 뭐라 말 하기 전에 언니는 아이에게 달려간다. 좀 진정하라구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확인하는게 먼저다. 메카는 저격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언니를 위해 견제를 할 수는 있다.
총이 날아왔을 것이라 예측되는 곳에 융합포를 쏜다. 언니는 그 아이를 살피는 듯 하다. 아이가 죽지는 않았는지 우선 아이를 데리고 근처의 폐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인이어에서 언니의 다급한 구호 요청이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바주카포의 포성이 들린다. 이번에도 방어 매트릭스를 펼쳐 날아오는 포를 맞춘다.
쿠궁, 하는 큰 굉음과 진동을 수반하며 하늘에서 포가 터진다. 다행이야, 하고 언니를 살펴보는데 순간 몸이 얼어붙는다. 언니가 있었던 건물이 먼지를 뿜으며 잔해만을 남기고 있다.
순간.
머릿속에서 수 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나에게 손을 뻗은 옆 반 아이. 살려달라고 손을 뻗은 그 아이의 손. 내 뒤로 들리던 총성. 죽어가던 옆 침상의 남자. 도와줘. 살려줘. 하는 신음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것. 썩은 냄새. 화약의 냄새. 덥고 습한 공기. 왱,하는 파리의 소리. 수많은 구더기. 메카가 밟은 잔해 밑에서 배어 나오는 피. 그 밑에서 나온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 그리고 무표정하게 시신들을 태우는 사람들. 부모님.... 도망치는 나.
도망치는 나.
머리가 찡, 하니 아파온다. 콧속에 과거에 맡았던 그 곳의 냄새가 난다. 소름이 돋지만 내가 느끼는건 그 당시의 습하고 더운 공기이다. 머릿속에서 파리 소리가 왱왱거리는거 같다.
도망칠 수 없어!
다시 생긴 가족이야. 부모님은, 그 친구는 내가 힘이 약해서 지키지 못했지만. 언니는 지킬 수 있어. 또 잃는건 싫어.
방어 매트릭스를 펼칠 생각도 않고 부스터를 작동시킨다. 메카에는 손이 없다. 메카에서 내린다. 돌더미를 치운다. 언니, 죽지마 언니. 나를 두고 죽지마.
총알이 메카에 맞는다. 팅팅팅, 하는 총알이 튕기는 소리가 난다. 악,하는 순간에 튕겨진 총알이 내 팔에 상처를 낸다. 아프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언니를 찾아야해. 살릴 수 있어.
잔해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순간 언니의 피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 피는 총알에 맞은 내 몸에서 나온 피이다. 기억 속 뭉개진 시신의 모습이 언니로 대체된다. 눈물이 나올거 같고 숨을 쉴 수 없다. 하지만 찾아야해.
"자기야! 자기야! 여기서 뭐해!"
누군가가 내 손을 붙든다. 내 손을 잡지 마. 나는 언니를, 언니를 찾아야해. 도망칠순 없어.
"정신차려! 메카가 곧 터질거야!"
그 사람이 나를 강하게 껴안는다. 날 내버려둬! 나는 언니를 찾을거야!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단단하게 붙잡고 먼 곳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메카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쪽에서 메카를 터뜨린거 같다. 언니를, 언니가 불탈텐데...! 나는 일어나려고 하지만 나는 일어날 수 없다.
[놔줘! 언니가! 언니가 안에 있단 말야!]
"하나! 하나! 자기야, 정신차려!"
[도망칠 수는 없어! 안돼!]
내가 발버둥을 치자 누군가가 온다. 따끔, 하는 느낌이 들고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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