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15
---------
모든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내가 자라던 마을이 불타 없어지는 것도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TV에서만 보던 불을 날리던 사람들, 순간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건물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마냥 웃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조리 내쫒은것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놀래켜서 미안, 괜찮아. 아무 일 없을거야."
괴물같은 사람을 진정시킨건 체구가 크거나 강해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나와 눈을 맞춰 사과했었다.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어릴 적에 집을 잃고 고아원에 들어간 후에는 한동안 이 낯선 천장을 보는 것이 매우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나도 모르게 시트를 손으로 더듬고는 픽 웃는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인데 혹시 이불에 실례를 한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하는 행동은 어제의 일처럼 매우 자연스럽다.
"일찍 일어났네요."
방에서 나오니 앙겔라 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금발의 여인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도 어색한 영어로라도 같이 인사를 한다.
그렇게 낯선 여인이 차려준 낯선 아침식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
고3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적성검사를 하는 것, 그리고 적성검사 중 뇌파를 검사한다는건 우리 모두가 의아해 하던 일이었다.
적성에 따라 진로의 폭을 좁혀준다는 취지는 이해하겠는데, 왜 거기에 뇌파를 끼워넣는가. 모두들 장난으로나마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격리당하는거 아니냐는 농담을 했었다.
"하나양의 적성검사 결과, 높은 수치의 가이드 지수, 즉 뇌파 중 감마-G파 지수가 높게 나왔어요.
때문에 하나양의 신변은 앞으로 UN 산하의 센티넬/가이드 전문 연구 및 관리 기관, 속칭 오버워치에 귀속됩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 온 날 기다리는 것은 입양이 허가되었다는 서류와 스위스로의 비행기 티켓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일이 처리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중요한 과정에 내 의사는 하나도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제가 그곳에 가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면 뭐가 바뀌나요?"
자신을 오버워치의 연구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아뇨.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양의 신변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의 당국과 이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이 입양서류가 통과됨과 동시에 하나양은 한국인으로서의 국적을 잃었습니다.
거기다가..."
적성검사를 실시한 지 몇 시간만에 비자 수준이 아니라 국적 수준이 바뀌는구나... 아연실색한 나에게 그가 이어서 한 말은 더욱 놀라웠다.
"...하나양의 꿈은 UN평화유지군에 속해 우리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것 아니었나요?"
***
"원래 이렇게 일이 순식간에 처리되는 것인가요?"
하나양이 엘레베이터 저 편에서 태블릿에 적혀진 센티넬과 가이드에 대한 다양한 연구자료와 수칙들을 눈으로 훑으며 묻는다.
일이 순식간에 처리되기는 했다. 보통 세계 각지에서 실시되는 뇌파 검사의 결과를 분석하는데만 해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 그리고 그 결과 뽑힌 몇 안되는 가이드가 센티넬과의 상접수치를 측정하는 데에도 한 달.
그 사이에 민간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가이드들은 가이드들이 알아야 하는 센티넬에 대한 각종 정보들과 센티넬을 관리하는 방법 등을 숙지한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
레나 옥스턴에게 폭주의 기미가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폭주가 잦아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놀랐다.
화상 회의에 참여했을 때에는 이미 레나의 목소리는 많이 격양되어 있었다. 그에 맞춰 모니터 한 켠에 띄워놓은 그녀의 뇌파 또한 격렬하게 파도치고 있었다.
"한국, 서울의 종로구쪽에서 전달된 실험 결과를 다 꼼꼼히 살펴봐. 거기에 내 가이드가 있어."
"일단 기다려, 레나. 그 사람이 가이드라는것을 확신할 증거가 없어. 네가 할 일은 수송선을 타고 한시라도 빨리 이 곳에 도착하는 것이야. 난동 피우지마."
모리슨이 침착하게 레나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증거가 없긴 왜 없어! 내 몸이 증거야. 그러니까 제발, 여기 있는 의무관들 좀 떼어내봐, 앙겔라."
그녀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나 또한 매우 당황했다. 분명히 그녀의 몸이 스스로 치유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스스로 폭주되는 것을 억제했다는 점이 연구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일단은 둘 다 진정하세요. 모리슨, 레나의 말대로 한국, 서울 종로구에 감마 G파가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나오는 학생이 발견되었어요. 레나의 부탁에 따라 우선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요."
맞지? 레나의 뇌파가 다시 흥분으로 요동치는 것을 보며 내가 그녀보다 먼저 입을 연다.
"하지만 그녀를 이 기관으로 데려와서 당신의 가이드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적어도 한 ㄷ..."
"웃기지마."
그녀의 흥분된 뇌파가 순식간에 안정되는 것이 모니터상으로 나타났다. 이 다음은 폭주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그녀 주변의 의무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옥스턴 양, 일단 진정하고요..."
"가족? 있다면 다 없애고 데려오면 되잖아. 너희들 절차라고 얘기하면서 이것저것 실험하는 족속들인거 내가 모를거 같아서 그래? 내 거야. 내 가이드라고. 털 끝 하나 건드리면 가만 안 둬."
"가족은 없어요. 고아에요. 과거 탈론의 습격에 의해 모두 죽었어요. 하지만 어느정도 가이드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그녀는 민간인 가정에서 태어난 특이 체질이라고요."
레나, 약속할게요. 그녀에게 저희가 할 것은 상접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 검사, 그것만 실시할게요.
확고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전한다. 그녀의 뇌파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교육은 필요없습니다. 그냥 내 옆에만 있어주면 돼요.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아니면 내가 들어갈거에요, 치글러 박사님.
제가 몰래 들어가는데엔 선수인거 아시죠? 보통 센티넬들이 처음으로 가이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는 박사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그녀의 말에 결국 손을 든다. 모리슨의 얼굴을 흘끔 바라보자, 그도 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얼굴이다.
"알았어요. 그럼 기관에 온 다음날, 당신과 만나게 해 드리죠."
---
"S급 센티넬의 경우에는 상접수치가 높은 가이드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이 좀 빠르게 처리되기도 해요."
나는 어제의 얘기를 떠올리며 하나양에게 적당히 둘러댄다.
"제 센티넬은 어떤 사람이라고 했죠?"
하나양의 질문에 답을 해줄까 하다 레나의 당부가 생각나 아무렇게나 둘러댄다.
"다른 센티넬에 비해선 비교적 덜 폭력적이고 조용한 사람이에요. 다만 그 사람도 센티넬이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죠.
가이드의 역할은 단지 센티넬이 폭주하지 않도록 막는 것만이 아니에요. 센티넬의 감정을 가이딩을 통해 대신 인지해주고 그것을 표현해주는거죠.
이를 통해 센티넬은 단순한 전투 로봇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전투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을 유지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나름 중요한 것이에요."
부차적으로 덧붙인 설명 때문일까. 하나양의 표정은 더 긴장된 듯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하나에게 단 하나, 전해줘야 하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이 가이드의 역할이기 때문에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녀에게 이 역할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엘레베이터는 목적지로 향했다.
***
센티넬을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신 감정을 남들보다 약하게 느끼거나 아예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많이 부족한 능력은 공감능력.
이 두 가지 특성과 그들의 초능력이 결합될 경우, 악질 범죄나 테러를 일으키는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탈론이다.
탈론은 말은 센티넬과 가이드의 인간적인 대우, 더 나아가서 센티넬과 가이드의 지배에 의한 계급 사회를 주장하며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벌이고 있다.
그런 센티넬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이드의 역할이라고 한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둘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이드에 대한 두려움이 아랫배에 묵직하게 차 오른다.
이 두려움은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몇 개의 철문과 방화벽을 지나고, 연구원들이 감시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리방으로 들어가자 더더욱 심해졌다.
"걱정 마요,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당신을 우리가 지켜줄게요."
일단 그녀는 그런 일을 하진 않을거지만 혹시 몰라서요. 치글러 박사가 우리를 둘러싸고 뒤에 서 있는 총을 든 군인들을 가리킨다.
센티넬은 가이드를 만날 경우, 처음으로 느끼는 흥분된 감정에 의해 의도치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상접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폭력의 형태는 성적인 것으로 변해간다.
그녀의 위로에 하나도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을 느낄때 유리벽이 열리며 익숙한 여인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저번에는 사복 차림으로 만났지만 이번에는 오버워치 요원들이 입는 검은 전투복 차림에 가슴에는 기계장치를 차고 있다.
앙겔라가 내 뒤에서 그녀를 부른다.
"레나, 당신과 99% 일치하는 상접수치를 지닌 가이드가 이쪽 방향에 있어요. 이름은 송하나, 한국에서 왔어요."
탁탁탁.. 흰색 지팡이로 땅을 치며 그녀가 나를 향해 온다. 이틀 전에 만났는데, 나를 모르는 걸까? 하긴, 길게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
"안녕하세요, 레나 옥스턴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상냥하게 나에게 손을 내민다. 짙은 선글라스 때문에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가볍게 올라간 입꼬리가 내 불안을 잠시 거두어간다.
이 손을 잡으면 어떤 감정이 전해질까, 기쁨? 쾌감? 파괴욕? 성욕? 잠시 손을 잡는걸 주저하다 가볍게 손을 잡는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런 감정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ㅂ, 반갑습니다. 송하나에요."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기에 나는 손을 잡고 그녀에게 인사를 돌려준다.
주변을 돌아보자 안도하는 표정으로 군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유리벽 너머의 연구원들이 손이 바쁘게 무언가를 기록하며 우리를 촬영한다.
앙겔라가 온화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요.' 그녀가 입으로 나에게 말을 전한다.
"각자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따로 서류로 전달해 드릴게요. 일단은 둘이 오늘부터 함께 생활을 하시면 될 것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손을 꼭 잡은채 옥스턴씨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나는 레나 옥스턴의 가이드가 되었다.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센티넬버스 AU) Present - 3 (2) | 2016.10.04 |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2 (0) | 2016.10.04 |
(센티넬버스 AU) Present - Prologue (0) | 2016.10.04 |
민속촌 下 (1) | 2016.09.16 |
민속촌 上 (0) | 2016.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