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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축가



빗토(@bitto34)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twitter.com/bitto34/status/794142743031205889



-이제 둘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신부님의 인자한 목소리가 너무 조용해서일까, 아니면 이 봄날이 너무 따스해서일까. 나는 하마터면 박자를 놓칠 뻔 했다.


열도 없이 차디찬 손에선 무슨 일인지 연신 땀이 났다. 그래서 혹시나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끄러질까 식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바지에 연신 손바닥을 문질렀다. 하지만 식이 시작하고 네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것조차 잊어버렸다.

다행히도 네가 입장할때의 곡은 내가 수만번 연습한 곡이기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손가락은 제 건반을 찾아 두드렸다.


너는 오늘따라 더욱 예뻤다. 늘 입고 다니는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어도 예뻤었는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너의 모습은 예쁘다는 말로는 모자를 정도였다.



-결혼하려고.

-너같은 애가 무슨 결혼이야?

-언니, 나 진심이야...어? 표정이 왜 그래? 내가 시한부 선고라도 받아온거마냥.


차라리 시한부였음 좋았을걸. 그랬다면 너의 마지막이라도 내가 지킬 수 있었을텐데.

아니, 그건 내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혐오스러운 생각을 한 나 자신을 저주했다.


-좋아해?

사랑하는 사람이니? 라고는 차마 묻질 못했다. 너의 입에서 누군갈 사랑한다는 얘길 듣는다면 여태 "쿨"한 모습을 유지해온 해결사 트레이서가 없어질거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해는 무슨, 내가 애야?

너는 깔깔 웃으며 내 팔을 손바닥으로 찰싹 쳤다. 하지만 네 얼굴이 살풋 붉어지는걸 보며 나는 네 손바닥이 닿은 곳이 얼얼하기보단 시렵고 아렸다.


-사랑해. 좋은 사람이야. 용감한 사람이고, 나만 지켜봐주고. 무엇보다 날 정말 사랑해줘.

듣고싶지 않은 말이 너의 입에서 나왔다. 눈물이 나올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마치 얼음물을 쉬지않고 들이킨것처럼 뱃속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널 사랑해! 나도 널 지켜봐주고 있었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녀는 네가 아닌 그 사람을 보고 있냐는 질문이 뒤를 따랐다.

'용기가 없었다. 난 그저 쿨한 언니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주먹을 쥐고 울음과 함께 모든 말을 집어삼켰다. 대신에 내가 돌려줄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축하해.



나는 끝까지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네가 너의 결혼식에서 나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했을때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대신 무슨 일이 생기길 바랐다. 갑자기 거절하지 못할 출장이 생기거나, 내가 독감에라도 걸려 침대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길 바랐다.


내 바람대로였다. 나는 과한 업무에 치었고, 독감에 걸려 끙끙 앓아누웠다. 하지만 오늘,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네 앞에서는 말끔하게 나았다.



너는 나의 연주를 들으며 서 있다. 둘의 결혼에 이의가 없다고 말한 나는 여기 앉아 너를 바라보며 연주를 하고 있다.

열이 펄펄 끓었을때도 연습을 쉬지 않은 내 손가락은 이번에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해내고 있었다.


(고마워.)


너는 나에게 입모양으로 속삭인다.


아, 그래. 나는 박자를 놓칠뻔한게 아니다.

나는 내가 한 음이라도 틀리길 바랐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너의 가장 행복할 결혼식에 한 점의 얼룩이라도 되어 남고 싶었다. 네가 그 귀여운 눈썹을 찌푸리고 난처한 표정이라도 짓길 바랐다.



(축하해.)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랐다.

네가 고맙다면 됐다.

내가 치는 한 음 한 음이 너의 마음에 남아주기만 한다면, 수십년 후에 "결혼식에서의 모든 것이 정말 완벽했어. 그 신부님의 졸린 말씀만 빼면."이라고 얘기할 때, 내가 그 '모든 것'에 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잘 가 하나야.

행복하길 바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