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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센티넬버스AU) Present - 10

신쿤(@nerf171)님의 썰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 http://sinkoonote.tistory.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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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1.10.22.토요일>

언니는 오늘도 무사히 내 옆에 있다.


오늘로 언니가 돌아온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돌아온 이후로 아직까지는 피곤해보이긴 하지만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평소보다 더 나에게 치근덕거리는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언니는 제대로 된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 여태 쉬는 시간엔 뭘 했냐고 물으니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와 체스 게임을 한번 해 보았다. 보이지 않는 언니를 위해 자석으로 된 체스판을 준비해 말이 체스판에서 쉽게 움직이지 않도록 했고 판의 경계마다 질감을 다르게 해서 언니가 구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말도 흑색 말 위에는 점자로 표시를 해서 어떤 말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다행히 언니는 마음속으로 체스판과 말들의 배치를 쉽게 구상했다. 총 다섯 판을 했는데 세번 내리 이기고 언니가 한 판을 따낸걸 보면 게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닌거 같다.


언니는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도록 다양한 경험을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일은 공원에 가서 자전거도 타 보고 공원의 푸드 트럭에서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오늘 아침, 오버워치의 제 5연구실 지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한 쌍의 센티넬과 가이드 소년들의 죽음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로 판명났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두 소년은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하지 못한것을 비관하여 나란히 목숨을 끊게 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관은 이 일에 대해서 청소년 능력자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자신들의 실책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집이 조용해 틀어놓은 TV에서 즐겁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일기를 쓰다 말고 고개를 돌려 뉴스를 자세히 보았다. 제 5연구실, 그 곳은 언니가 태어나 자란 곳이었다. 그 곳에서 사는 센티넬과 가이드라면 등급을 받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자신들의 신변을 비관해 자살을 한 것일까. 나는 문득 어제 꿨던 꿈을 떠올린다.


유리와 강철로만 이루어진, 아주 차가운 방이었다.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유리방 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필립 크라이머, 사진 속에서 봤던 그 사람이 금속 기구를 언니의 눈에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다. 언니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지만 눈에서는 눈물도,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 누구든 살려주세요! 비명 사이에서 끊어지듯 언니의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자신의 손에 든 메모보드에 알 수 없는 글자만을 휘갈기고 있었다. 언니가 이를 악물자 구속구에 고정되어있던 언니의 팔이 풀렸다. 그리고 언니는 크라이머, 그 자의 팔을 붙잡았다.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와 내가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을 꿈이다. 하지만 방금 저 뉴스를 보자 어제의 꿈이 더 생생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나 언니나 이제 저 연구소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능력자들은 저기에서 인간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겠지. 인간은 그들의 태생적인 특징과 관계없이 인간으로 대우받아야만 한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없을까.

출신으로 귀천을 나누던 그 센티넬과 가이드가 생각난다. 그들은 이 사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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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끊긴다. 나는 내 생각에서 빠져나와 일기장을 덮고 TV를 끈다. 언니에게는 TV는 그저 시끄러운 기계에 불과해 그걸 켜놓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TV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한다.


"자기! 나 씻고왔어!"


물기도 제대로 닦지 않은 언니가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다. 언니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언니, 그 지옥과도 같은 연구실에서 살아남아줘 정말 고마워.


"물기나 제대로 닦아야지! 이대로 자면 머리가 더 뻗친단 말이야! 침대에 눕지 마!"


"그래도 지금 딱 누우면 잠이 올거 같은데? 그냥 자자."


"이대로 자면 감기들어!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누워서 팔다리를 바당거리는 언니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서 화장대 앞에 앉혀 머리를 말려준다.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이 마음에 드는지 언니가 배시시 웃는다.

뒤에서 가만히 언니의 머리에 코를 대 본다. 언니의 냄새가 올라와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내일은 언니와 함께 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자.



***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힌다. 바람 속에서는 호수에서 나오는 물 냄새, 잔디 냄새, 그리고 내 앞에 앉은 하나가 쓰는 샴푸 냄새가 끼쳐온다. 자연의 냄새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니까요, 라고 하나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 확실히 기분이 좋다.


하나가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멈춘다. 

"그렇게 하면...내 룩을 이 쪽으로 옮기니까... 체크메이트."


딸깍, 소리가 난 후에 하나는 자신의 룩을 어디에 뒀는지 내 손을 이끌어 알려준다. 맞아. 이 수가 있었구나? 나는 체스 판 위의 여러 말들을 만져본다. 하나쯤 내가 살 방법이 있을거 같은데...


"아이, 체크메이트라니까요. 내가 이번 판은 이긴거야."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나 잘 하는거야? 이번 판은 이길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나도 이번판은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수가 보였어요. 뭣보다 언니는 체스 배운지 이제 사흘 될까말까인데, 이 정도 하는것도 대단해요. 내가 살짝만 다른 생각을 하면 파고들어서 이기잖아요."


그런 언니가 어떻게 보면 반칙이에요, 하나는 볼멘소리를 하며 체스판을 정리한다.


"그럼 내가 이겼으니까 점심은 언니가 사는거 알죠? 뭐 먹을지는 내가 정할게요."


왕창 비싼거 사 먹어야지. 하나가 다시 그 알 수 없는 콧노래를 부르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난다. 그녀는 이렇게 기분이 좋을때면 흥얼흥얼 알 수 없는 콧노래를 부른다. 음조도 뒤죽박죽인걸 보면 그녀 자신도 자신이 콧노래를 부른다는걸 모르는듯 하다.


처음으로 공원엘 왔다. 아니, 임무 때문에 공원을 집결지로 둔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공원에 온 것은 처음이다.


하나는 내 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날 이끌고 어디론가 간다. 잔디밭을 지나 블록으로 구성된 길을 걸으니 저 멀리서 달큰한 냄새가 퍼져온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침도 먹지 않고 공원으로 놀러 나온 터라 단 냄새를 맡자 배가 요동을 친다. 무슨 냄새지? 와플인가?


"와플?"


"크레페."


뭘 드릴까요? 라고 유쾌하게 묻는 아저씨의 옆에서  하나가 딸기와 바나나, 생크림을 얹은 크레페를 주문한다.


"언니도 주문해. 여기 토핑으로 얹어지는게...."

하나의 입에서 수많은 과일들을 비롯한 토핑들과 소스들이 쏟아져나온다. 응? 응?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하나가 말한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자, 뭐 고를거야?"


뭐가 있었지? 시험공부를 할 때보다 훨씬 더 긴장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충 내가 먹을걸 알아서 골라줬는데 하나는 나에게 먹을걸 고르라고 한다.


"그...참치랑...누텔라."


"누텔라? 괜찮겠어? 언니 누텔라가 뭔지 알지?"


"응. 땅콩버터같은 질감에 맛은 초코잖아."


"그거랑 참치? 보통 참치 크레페는 마요네즈, 머스타드, 케첩을 넣지 않아?"


"참치 누텔라 크레페, 양상추랑."


확고하게 다시 한번 더 내 취향을 밝힌다. 왜. 달고 짜고 괜찮을거 같은데?

내 단호한 표정에 하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내 주문을 크레페 아저씨에게 전한다.


"누텔라 많이 주세요. 그거 좋아하거든요."

옆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흥, 취향인데 뭐 어때.



*



"그거 맛있어?"


하나가 나에게 물어본다. 응, 괜찮은데. 먹어볼래? 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손에 든걸 내밀었더니 괜찮다며 내 손을 밀어낸다.

그럴거면 물어보질 말던가. 나는 한 입 가득 하나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참치 양상추 누텔라 크레페"를  베어문다. 하나가 먹는 달달한 크레페야 나도 먹어봐서 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내가 먹고싶어한 그 맛이다.


"달고 짭짤하고 씹는 질감도 괜찮아."


"하여간, 취향 참 확실하게 독특하다. 햄버거 빵 사이에 고기 대신에 감자튀김을 끼울때부터 알아봤어."


"어, 그건 너무한데? 그건 영국의 소울푸드나 다름없는거야."


"언니, 영국의 소울을 매도하지 말아줘."


하나가 낄낄거리며 내 말을 받아친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크게 크레페를 한 입 베어문다. 너무 크게 베어물어서일까, 앗 하는 사이에 따뜻한 누텔라 크림이 내 셔츠자락에 떨어진다.


"에이. 흰 셔츠인데. 잘 안 지워지겠네."

하나가 혀를 차며 냅킨으로 내 셔츠자락을 문지른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로 판단하건데 마른 휴지로는 얼룩이 지워지진 않을 듯 싶다.


"아, 안되겠네. 물티슈 사올게요."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누가 본다고? 집에 가서 빨면 돼."


"내가 봐요. 그리고 좀 있다 자전거 타고 집에 가면 너무 늦어요. 물티슈로 대충이나마 닦아놓게요."

그녀가 금방 갔다 올게요, 라며 벤치에서 엉덩이를 뗀다. 나도 같이 갈까 하고 일어서니 내 어깨를 한 손으로 잡는다.


"뭐하러 언니까지 따라가. 언니는 여기 있어. 금방 갔다올게요."


그래? 하고 앉으려던 나에게 한번 더 바람이 불어온다. 셔츠의 얼룩이 묻어 젖은 곳에 바람이 닿아 가슴 언저리가 기분 나쁘게 차가워진다. 하나를 혼자 보내고싶진 않아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왜요 언니, 무서워?"


"응. 무서워. 혼자 있는건 싫은걸?"

응. 무서워.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왜인지 모를 불안함? 초조함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스믈스믈 퍼져나간다. 하지만 언니인 내가 말도 안되는 어리광을 부리는거 같아 혼자 있는게 싫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장난스러운 말을 뒤에 덧붙였다.


"하여간... 혼자서 나이는 안 먹죠? 그 나이 먹고 혼자 있는게 뭐가 싫어요."

하나가 나에게 면박을 준다. 하지만 그 말 끝에는 빙긋 웃음이 머금어져 있는게 어조에서 느껴진다. 그녀의 손을 잡고 머리를 부볐다.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에이구, 여행 갔다 오더니 애가 다 됐네.

하나는 자신의 손에 마구 부벼오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혼자서 자리 잘 지키고 있어요. 여기 가방이랑... 알죠? 올 때 자전거도 빌려 올게요."

내 콧등에 보드라운 무엇인가가 닿았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몇 초 후, 나는 그게 하나의 입술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내 손을 놓고 이미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



보석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희소성과 아름다움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돌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차가운 돌, 사람들은 언니의 눈을 보석안이라고 높였지만 그 뒤에서는 쓸모가 없는 돌덩어리라고 매도했다. 감정도 드러나지 않고 앞을 볼 수도 없는, 쓸모 없고 예쁘기만 한 장신구.


누가 언니의 눈에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고 말 했는가.


-날 혼자 두고 가지 마.-


언니의 눈을 보고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면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것일까. 그럼 같이 가지 왜 나를 두고 가? 라고 물어보는 언니의 눈에는 아쉬움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비록 그 눈에 나는 빛나지 않겠지만 언니의 모든 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강아지처럼 큰 귀를 쫑긋거릴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귀를 쫑긋거리고 있을 것이다. 안 돼. 라고 말 해보고 싶었다. 분명히 귀가 축 처지는게 눈에 보일 거 같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콧등에 입을 맞췄다. 그럼 분명히 입술에 뽀뽀해줘! 라고 나에게 떼를 부릴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달랐다. 언니는 어, 하며 내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을 풀어 버렸다. 오히려 뽀뽀를 해줬다고 좋아서 방방 뛸 줄 알았던 언니는 멍한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더 부끄러워져 편의점 방향으로 뛰어가 버렸다.


평소에는 능글맞은 변태 언니가 왜 이럴땐 아무것도 모르는 바둑이 같은 눈을 하는데! 시원한 가을 바람에 볼을 식히며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가 부딪힌다.

죄송합니다. 앞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었기에 그 분에게 머리를 숙이며 먼저 사과를 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급해서...


"아, 괜찮습니다. 실례지만 여기 자전거 대여소가 어디죠?"


"어... 그럼 제가 잠시 편의점만 들렸다가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안 그래도 제가 자전거를 대여할 생각이거든요."


그 사람의 미소에 나도 함께 웃어주었다. 좋은 날씨죠? 그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묻는다. 그러게요, 되게 선선하고 기분 좋은 날씨네요.



***



하나가 떠난 방향으로 고개를 향한 채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을 못하겠다.

손을 올려 콧등을 쓸어본다. 하나의 입술이 닿은 곳에서 열이 나는거 같다. 나만의 일방적인 애정인줄 알았다. 그저 친구? 아니면 파트너? 그 정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하나에게 스킨십을 받고 싶어서 다치고 나면 은근히 하나의 스킨십을 기대한 경향도 있다. 그리고 다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 참지를 못하겠다면 장난 반, 진담 반 섞인 애정행각을 부렸다. 그 때마다 하나가 짜증을 내는 것을 겪으며 내 진심에 장난이라는 당의를 씌운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먼저 스킨십을 받았다. 바보같긴, 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그녀를 빨리 만나고 싶단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귀에서 쿵쿵거리며 내 피가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일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왔을때도 나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불어나갔다. 화약 냄새, 나무 냄새 등 모든 냄새들을 코로 들이마신다. 하지만 없다. 그녀의 달큰한 냄새가 없다.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테러. 탈론에 의한 테러이다. 나를 겨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야."


한참 굳어있다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하나야, 하고 부른다면 응 언니? 하고 대답이 들려올거 같다. 찰랑거리는 머리와 함께 그녀의 샴푸 향기가 훅 끼쳐올거 같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냄새도 끼쳐오지 않는다. 여전히 내 콧속에 있는 냄새는 그녀가 없는 텅 빈 세상의 냄새이다. 어디 갔지?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진거지? 그녀가 간 방향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지금 뒤에서 풍겨오는 화약의 냄새가 너무 짙어 내 코가 얼얼한 탓이다. 앞으로 나가면, 자기가 간 편의점 방향으로 걸어가면 금방 하나의 냄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벤치 뒤나 풀숲 사이, 나무 뒤에 내 토끼가 숨어있을 것이다. 부들부들 떨고 있을거야. 그녀를 데리고 여기서 도망가야해. 집으로, 집으로 가면 돼. 거기 가서 하나를 달래주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그렇게 둘이 꼭 끌어안고 자는거야. 그래 그러면 돼. 그러고 나면 잊혀질거야. 근데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의 냄새가 느껴질까.


"하나야."

그래서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 봐. 하나야.


사방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내 몸에 부딪혔다. 몇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일어나려 무릎 위에야 손을 얹었을 때, 내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진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누군가 내 이마에 총부리를 갖다 대는 것이 느껴졌다.


"센티넬-레나 옥스턴을 확보했습니다. 아직 Code Black의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를 폭주를 방지해 구속구를 착용시키겠습니다."

팔에 단단한 수갑이 채워지고 머리 위로 천이 덮혀지는게 느껴진다. 



**



차가운 공기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미묘한 화약 냄새. 과거 내가 있었던 방이었다. 철과 유리로 되어있는 방 밖에서 모리슨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송하나가 납치되었다."


나에 대한 거짓된 위로의 말 따윈 없이 바로 결론을 전달한다.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다. 현실을 나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 방이라면 폭주도 걱정 없다는건가. 아마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 아래에 폭약이 설치되었을 터였다. 만약 내가 살짝의 흥분 징후만 보이더라도 방을 통째로 터뜨리겠다는 기세이다.


"그녀는 탈론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많은 공원에서 송하나라는 19세 동양인 소녀를 납치한 점, 그리고 폭탄을 터뜨렸지만 한 명도 다치지 않은 점을 보면 오버워치를 겨냥한 공격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하나는 무사할거다. 그 때까지 너는 이 곳에 있을거야."


"구출 작전을 실행해야지. 그들이 하나를 무사히 돌려보낸다는 보장을 할 수 있어? 하나가 그들의 요구에 거절할 경우, 그들은 하나를 죽일지도 몰라."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능력자들의 인권 신장을 그들의 표어로 삼고 있어. 그들이 쉽게 하나를 죽이지는 않을거야."


"그렇지. 하나는 구출 작전 중에 오버워치 요원의 총기 오발 사고로 죽을거야."


그런건 수용할 수 없어. 내가 그 생각을 품자마자 방 전체에서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그걸 무시한 채 나는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 걷는다. 손을 뻗자 손잡이가 손에 잡힌다. 철컥, 하는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를 들어보니 방에 설치된 총이 나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희귀한 자원이다.


"진정해. 레나 옥스턴."


"죽이고 싶으면 죽여. 나는 이 방에서 나가야겠어. 문 열어."


"레나."


"손 더럽힐 필요 없이 내가 죽어줄까? 문 열어."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아무리 그 쪽 관련 능력이 없다고 해도 내가 가진 힘은 이 방을 설계한 사람보다 더 강하다. "레나!" 모리슨이 나를 향해 벌컥 소리를 지른다.


방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지 말라는 고함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모리슨은 문을 열어준다.


"고마워요 모리슨."


"지금 당장 가는건 말도 안돼. 일단은 진정해."


"충분히 진정했어요. 단지 그녀를 구출하러 갈 때에 나를 제외하지 말아줘요. 그 때엔 내가 나를 어떻게 할 지 장담할 수 없어요."


알았네. 그가 나의 등을 툭, 친다.


내 사람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왔다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를 나에게서 빼앗아갔다.

여태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욕심을 부릴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널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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