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글러 박사의 연구실. 늦은 밤이라 다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구실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연구실이자 본부의 의무실인 이 곳은 늘 열려있어 새로운 환자를 수용하는 공간이다.
"찾으셨어요, 박사님."
하나가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온다. 후드를 눌러 쓴 그녀는 들어오면서 연구실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딸깍, 하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잠근다.
더 이상의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뜻인가.
"네. 그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요즘은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야 늘 그렇죠."
하나가 말한다. 하지만 하나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하아, 하고 그녀가 한숨을 쉰다.
"빈도는 어떤가요?"
"빈도야 들쑥날쑥하죠. 안할땐 한달 가까이도 안하다가 하기 시작하면 몇일을 계속 하는거죠."
묘하게 그녀의 말에 불만이 묻어 있다. 아아, 그 일 때문인가.
"그렇군요. 그래도 하나양을 만나고 많이 줄었어요. 약의 용량도 줄었고요. 덕분이에요."
"덕분이요?"
그녀는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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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걸 처음 발견한건 하나와 레나가 연인이 되고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레나는 묘하게 하나에게 장난을 거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장난을 거는 레나였지만, 유독 하나에게는 그 빈도와 수준이 도가 지나쳤다.
그날은 사람들이 전투에 투입된 날이었다. 인터넷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수준의 오지였고, 모두들 피로가 쌓일대로 쌓인 상태였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장난은 하나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제발 그만좀 해요! 짜증나니까."
하나는 결국 화를 내버렸다. 레나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눈에는 공포와 불안이 깃들었다.
"오늘은 내 방에서 잘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하나는 레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는 우연히 자다가 눈을 떴다.
평소에 유난히 자신에게 붙어서 자는 언니가 없어서였을까. 자다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자신의 방이었다. 그리고 언니는 없었다.
'바보 언니. 그냥 자기가 들어오면 뭐 어때서.'
하나는 다시 잠을 자려고 뒤척거렸다. 피곤해서 유난히 짜증을 낸 경향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언니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공포, 불안까지는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무언가... 베개를 얼굴 위로 덮었지만 그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마치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오금이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씨."
결국 하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는 잠을 못 잔다. 저 바보언니가 눈치가 없으니 내가 고생하는거야. 하며 하나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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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들어갔을때 느껴진건 서늘한 공기였다.
그리고 소리. 언니가 숨을 왜이렇게 몰아쉬지? 흐느끼는거 같기도 했다. 설마 내가 소리지른거 때문에 우는거야?
하나는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도 레나의 시간가속기는 빛나고 있었기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시간가속기는 빛을 내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는 갑갑하다며 본부에 오자마자 벗어던지는걸 차고 어딜 나간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그 때, 하나는 보았다.
침대 아래, '무언가'가 이불을 덮어쓰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의 근원은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 저게 뭐지?
"어, 언니?" 하나는 레나를 불렀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저게 뭔지 확인을 해야 했다.
마음을 다잡은 하나가 천천히 다가가 이불을 걷어냈다.
그 순간 화악- 하고 시간가속기의 불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레나의 등이었다.
"언니, 놀랐잖아 뭐하고 있는거야."
하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레나의 등에 손을 댔다. 그리고 레나가 흐느끼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언니?"
하나가 레나의 등을 확 돌린 그 순간.
툭 하고 레나의 손에서 뭔가 떨어졌다. 소리를 따라 하나의 눈이 바닥으로 향한다. 가속기의 불빛에 반사되는건 금속 재질의 무언가. 아, 날붙이었다.
이걸 보면 안돼. 하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눈은 생각과 다르게 올라간다. 그리고 하나의 눈이 천천히 올라가며 본 것은 레나의 팔뚝에 그어진 칼자국이었다.
"뭐, 뭐 하는거야 지금?"
"아..자기.."
맥이 빠진 듯한 목소리를 하고 레나는 하나를 쳐다본다. 멍하니 있는 눈빛에서는 해결사의 모습따윈 찾아볼 수 없다.
"저기..그게.. 내가 제대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부끄러운걸까, 아니면 미안한걸까. 레나는 하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 상처가 의미하는 레나의 정신건강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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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울면서 화를 냈었다. 그 다음에는 멍하니 그녀가 하는 것을 바라봤었다.
레나와 헤어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스스로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규칙성을 찾기 시작했다.
의외로 규칙성을 찾는건 간단했다. 하나에게 심한 장난을 칠 때 - 평소보다 힘든 임무를 맡았을때 - 레나가 시간가속기를 무리해서 사용할 때
그 수많은 시간 사이에 하나의 붕대 감는 솜씨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존재하는걸 확인하고 싶다니. 좀 자세히 설명해줄래?"
독한 소독약 냄새가 가득 찬 방에서 하나는 레나에게 물었다. 레나의 팔뚝에는 이미 붕대가 감겨 있다.
독한 항우울제의 영향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레나는 하나의 질문에 마치 전원이 들어간 인형처럼 살짝이나마 눈에 빛이 들어왔다.
"지금 이곳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아프고. 숨쉬고. 웃고. 눈물흘리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느낌. 그 사람이 내가 상상으로 만든 누군가가 아니라 진짜 사람..
앙겔라고 윈스턴이고 다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이니까 내가 만들어낼수 있고. 메이나 루시우, 자리야씨들은 장난을 쳐도 화를 안내니까. 날 때리거나 하지 않으니까..."
레나가 멍해진 머리와 어눌한 발음으로 띄엄띄엄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으며 하나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었다.
: 레나 옥스턴은 자신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짖궂은 장난을 치고 그에 대한 처벌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그것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은 송하나, 바로 나이다.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극도의 불안감 및 우울감과 현실에 대한 혼란으로 자신에 대한 자해를 행한다.
오버워치 요원들은 레나의 이런 상태를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레나를 방치했다.
마지막 추론의 내용은 하나를 분노하게 했다. 오버워치에서 가장 밝고 환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존재가 실은 우울증 환자에 자해를 하는 사람이라니.
그러고도 오버워치는 세상에 영웅으로 알려져있다.
그럼 영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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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약속 하나 하자.
하나는 레나에게 말했다. 레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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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 덕분이에요. 레나가 자해를 하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비교적 요즘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당신을 부른거에요, 하나. 대체 어떻게 한거죠?"
"그걸 왜 물으시는건가요?"
"의사로서 환자가 증상이 완화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건 안되나요?"
"박사님이 보통 의사라면 괜찮겠지요. 하지만 앙겔라 치글러 박사님. 당신은 '메르시'잖아요.
전투상황에서 병사들을 어떻게든 일어나게 해 다시 전투로 몰아세우는 역할."
치글러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나는 이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얘기를 한다.
"왜요. 제가 죽거나 하면 그 방법으로 어떻게든 레나언니를 움직이게 하시려는거죠? 저는 전투의 선두에서 움직이는 요원이니까.
근데 알아요? 당신들은 시작 단추부터 잘못 끼웠어. 레나언니가 그런 상태인걸 알았을때 진작 임무에서 배재를 하고 그녀를 고쳤어야지."
"시간가속기가 그 해답이에요."
박사의 답에 하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박사님.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하나가 박사의 눈을 바라보며 이를 악문채 말한다.
"레나언니가 시간가속기를 사용함으로써 언니의 수명에 어떤 영향이 가해지는지 밝혀졌나요?"
치글러 박사는 그저 하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시간을 가속할 경우, 그녀의 세포는 노화될까요, 아님 그대로일까요. 역으로 시간역행을 사용할때 그녀의 세포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일까요, 비축하는 것일까요?
당신들은 언니에게 그걸 계속 사용하도록 강요해왔어. 정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거 알아? 당신들이 그녀의 목숨을 생각않고 마음대로 쓰는 한, 당신들은 영웅이 아니야.
그녀는 현재 시간과 공간에서 붕 떠있는 사람이야. 그 사람의 불안을 무시하고, 공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영웅질을 강요한 당신들은 악당이야."
하나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레나언니를 진정시키는지 알려주지 않을거야. 당신들도 평생 알 수 없을걸. 만약 우리에게 모종의 조치를 가하려고 한다면,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그녀의 시간가속기에 대한 비밀을 밝히고 안정화시켜. 지금 너희들은 그걸 강화할 생각만 하고 있잖아?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곳에서 그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이걸 연구할 자금과 두뇌가 있는 곳으로 가겠어. 그곳이 어디든."
"그건 오버워치 본부에 대한 배반으로 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생각해요. 애초부터 나는 정의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니까."
치글러 박사가 더 말을 하려고 하자 하나가 손을 들어 막았다.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에요."
휴대폰을 들어올려 보이자 발신자의 이름이 보였다. <레나 옥스턴>
"응 언니, 나 지금 앙겔라 박사님 연구실. 응, 머리가 아파서..."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의무실의 문을 연다 그리고 동시에 전화를 끊는다.
문 밖에는 레나 옥스턴이 서 있다. 하나는 가볍게 박사에게 목례를 하고 문 밖으로 레나의 손을 잡고 나간다.
"자기 머리 괜찮아?"
"응. 그냥 편두통. 요즘 언니가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그렇지."
"나 때문이라고? 미안해 자기. 오늘은 그럼 말썽 안부릴게."
"말도 안되는 소리는 그만하고, 나 오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치글러 박사는 둘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감싸쥔다.
송하나는 보통이 아니다. 그녀가 없다면 레나는 전보다 더 무너지겠지.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몇 개 없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녀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수를 취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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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나 옥스턴은 하나의 귓볼을 만진다. 마치 아이가 엄마의 귓볼을 만지며 안정을 찾는것처럼 습관적으로 그녀의 귓볼을 만진다.
"무슨 일 있어? 또 불안해?"
"으응, 아니. 그냥 심심해서."
하나는 게임기 패드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돌아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춘다.
"걱정하지 마. 언니. 언니는 지금 여기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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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글 중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여지를 많이 남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나 옥스턴을 진정시키는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의도한 것은 글 안에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도 정답이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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