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再来(재래-sairai) - 1<Start>



사막의 밤은 춥다.


낮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열 두개에 의해 사람을 직화구이로 만들거 같았지만 해가 지면서부터는 얘기가 다르다.

지열은 순식간에 식어서 서 있는 사람의 몸을 싸늘하게 만든다.


"으으으. 추워추워."

그리고. 그 싸늘해진 기온에 하나는 발을 동동동, 구르고 있었다.


낮에는 냉방이 되지 않는 메카에서 더워 죽을거 같다라며 축 늘어져 있더니 밤이 되자 이번에는 추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메카를 조종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옷을 들고 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낮에 흐르던 땀이 식어버리자 하나는 남들보다 더 추워하는 것이다.


"메카에도 트렁크를 달아주지. 그럼 여분 옷을 들고 올텐데."


"어차피 자기는 그 옷채로 메카를 자폭시킬거잖아."


그런 그녀를 보는 레나-그녀는 자켓을 하나 더 들고 왔다-는 안쓰러워 하나에게 자신의 자켓을 벗어 덮어 주었다.


"빨리 수송선이 와야 할텐데.. 오기 전까지 입고 있어."

괜히 남겠다고 해서 하나까지 고생시키는구나, 하고 레나는 생각한다.


본부에 있던 큰 수송선에 고장이 나서, 라며 소형 수송선을 갖고 와서는 두명을 더 태울수 없다고 수송선 조종사는 얘기했다.

그래서 레나는 자진해서 자기가 남겠다고 얘기를 하곤 하나를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 또한 자기 대신 치글러 박사를 먼저 태우고는 '언니랑 갈게요.' 라고 말했었다.


"언니도 추울텐데, 괜찮아."

하지만 하나는 레나의 자켓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도 나는 자기처럼 땀이 식지는 않으니까 괜찮은데..."

레나가 안타까운 눈으로 자켓을 입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들고만 있자, 하나는 레나에게 직접 자켓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는 레나의 자켓 속으로, 정확히는 품 안으로 폭 안겼다.


"자, 이러면 우리 둘다 따뜻해질거야. 뭐해 빨리 꼭꼭 안아주지 않고."


저런 애교는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건지 모르겠어. 레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 지역의 달은 아직 그믐이어서 다행이야. 라고 레나는 생각한다.

만약 이 얼굴을 들킨다면 '얼레리 꼴레리~'라는 요상한 한국어 주문을 날리며 하나가 자신을 놀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나를 꼭 안기는 했지만 괜시리 부끄러워 하늘만 쳐다본다.

아까까지만 했어도 빨리 수송선이 왔으면, 했지만 이제는 조금만 늦게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순간, 하나가 확 자신을 밀쳐버린다.



----------



신종 장난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나는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양손으로 총을 쥐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감이 빠르네, 아가씨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거기서 총이 발사된다.


'빠르다.'라고 생각하며 레나는 하나를 안은채 시간을 가속해 도망간다. 일단은 이 곳에서 멀리 떨어져야해. 라고 생각한다.

수송기와의 무전은 끊긴건가? 수송기에게 무전을 보내는데 응답이 없다.


도망을 가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여서일까, 그 무언가에게 자신의 옆구리를 걷어차인다.


시간을 가속해 도망을 갈 때에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적이 없다. 레나는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공격을 당하자 공포심이 밀려왔다.

메카가 없는 하나를 지켜야 하는데 자신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옆구리를 걷어차였지만 레나는 공격이 온 방향으로 총을 발사한다. 하지만 무언가가 맞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하나와 등을 마주대고 서서 주변을 경계한다.


"젠장, 수송선이 너무 늦는걸."

하나가 긴장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걱정마 자기, 해결사가 있잖아. 여기서 떨어지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지켜줄게. 떨어지지 마. 라고 생각한게 잘못이었을까.


이번에는 하나가 누군가에게 차여 날아간다.

하나의 옆으로 가서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일단은 하나가 맞은 반대방향으로 총을 쏜다.


또 빗나간건가, 하는 순간 총소리가 나며 손등에 뜨거운 고통이 달린다.


이 상황에서 아플 순 없어, 하며 자신의 시간을 되감는데, 멀리서 하나가 자신의 뒤쪽으로 총을 발사하는게 보인다.



----------



급박한 상황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레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걸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뒤로 붉은 빛이 빛나는게 보인다. 그리고 탕, 하는 소리.


지금은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 역행과 가속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역행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에게 달려간다.


"하나야! 하나야! 송하나!"


그녀는 의식을 잃은 듯 하다. 다행이 숨은 쉬고 있다. 그녀를 안아들자 등을 받쳤던 손에 피가 배어나온다.


"아. 제길. 하, 하나야! 제발. 아무 일 없을거야!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의식을 잃은 하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자기에게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자기는 무방비한 상태일텐데, 더 이상의 공격은 없다. 인이어에서 지지직, 하는 잡음이 들리더니 현재 상황을 묻는 무전이 들려온다.


"여기는 트레이서! 적의 공격을 받았다! 부상자 발생! 빨리 와줘! 제발!"


"하나야. 금방 수송선이 올거야. 박사님은 널 고쳐줄거야. 괜찮을거야. 정말 괜찮을거야."


레나는 고장난 인형처럼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



"자기! 오늘 기분은 어때?"


레나는 활기차게 하나에게 묻는다. 손에는 대야와 물수건을 들고 하나에게 다가간다.


그 날 이후, 둘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치글러 박사의 기술로도 하나를 다시 걷게 하는건 불가능했다. 척추의 손상이 심각해 그녀가 팔을 쓰게 하는것으로도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다음으로 생각하는건 그녀의 하반신을 사이보그화 하여 다시 걷게 하는것이었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죽어도 받기 싫어하는 하나에게, 그때까지의 회복기간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사이보그화 된다는건 그녀의 하반신을 없애고 새로운 기계 하반신을 단다는 것이다. 자기애가 강한 하나는 이 사실이 정말로 믿겨지지 않았다.


하반신을 없애고 걸어 다니느냐. 내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대신 평생 걷지 못하느냐.


"박사님이 뭐라셔? 언제, 내 몸을 자른대?"


그녀의 날선 말에 레나는 순간 몸을 굳혔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하반신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곁에서 묵묵히 남아있는건 레나 뿐이었다.


"에이, 자른다니. 치료지. 아직 안씻었지? 물 가져왔어."


"자르는거지. 나를 잘라다가 기계에다가 붙이는거지."


하아. 오늘은 다른 날보다 기분이 안좋구나.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은 레나의 눈에 게임기가 들어왔다. 게임기는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게임기를 주워들어 버튼을 누르자, 가만히 서 있던 게임 속 캐릭터가 힘차게 걷는다.


"자기, 이거 떨어뜨렸나봐."


"버린거야."


"버리긴, 떨어뜨렸음 말을 하지 주워줄ㅌ...."


하나는 레나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의 손에서 게임기를 집어 힘껏 벽으로 집어던졌다.


"버렸어! 버렸다고! 언니는 지금 내가 침대 아래로 떨어뜨린 물건도 못 줍는 병신이라고 생각한거야? 그래서 지금 동정하는 거냐고?"


"송하나!" 

말이 심하잖아. 그녀의 갑작스런 폭발에 레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하나를 쳐다본다.


"잠깐 나갔다올게. 너도 열 식히고 있어."


"돌아오지마.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얼굴 그만 보고싶어."


"야..!"


"병신에게 동정하지 말라고. 그 사고, 언니 탓 아니니까. 내가 멍청해서 병신 된거니까."


하나의 독설은 레나의 마음을 파고든다. 독이 서서히 몸으로 퍼지듯 레나의 몸에도 화가 점점 퍼졌다.

병신, 병신.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


"알았어. 나도 자기를 병신이라고 말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야. 혼자서 게임을 하던 게임기를 버리던. 마음대로 해."


레나는 방 밖을 나간다.



----------



꿈을 꿨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임무에서 자신은 다리를 삐었었다. 박사에게 가려고 했는데 다리가 아파서 걷질 못했다.


다행히도 적들은 이미 소탕되었고, 천천히 걸어가면 될 일이었다.


"언니 다리 아파?"

하나는 자신이 절룩거리며 걷는걸 보자 놀라서 뛰어왔다.

괜찮다고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하나가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업혀. 월드스타 등에 아무나 못 타는거 알지? 언니는 엄청 비싼 어부바를 받고 있는거야."


하나의 등에 업혀 가면서 레나는 하나가 너무 든든해서, 그리고 그녀의 등이 너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았었다.



눈을 뜨자 해가 지고 있었다. 하나와 싸우고.. 낮잠을 길게 잤네. 하고 일어나는데 눈에서 눈물이 투둑, 하고 떨어졌다.

꿈을 꾸면서 울었던걸까. 그 때의 하나가 너무 그리웠다.


괜찮아. 다시 가서 잘 말해보자. 라고 생각하며 레나는 눈을 소매로 닦으며 일어났다.



--------



병실의 문을 열자 화악, 하고 바깥바람이 얼굴을 스쳐간다.

누가 창문을 열어줬나. 하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밝은 얼굴로. "자기, 아직도 삐졌어?"


하얀 커튼이 펄럭인다. 하얀 커튼들 사이로 하얀 발목도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로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 대체 저 긴 줄은 어디에서 구했을까. 대체 저기에 어떻게 줄을 매달았니. 힘들진 않았니.

대체.. 왜 그랬니.



--------



똑똑, 윈스턴은 자신의 굵은 손가락으로 방을 두드린다.

역시, 대답이 없을줄 알았어. 그래도 매너니까.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레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불이 꺼진 침대 위. 그곳에 그녀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레나. 너에게 줄게 있어."


들고 온 상자를 레나의 앞에 놓고 연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 푸른 빛이 가득 찬다.


"난 그거 다시는 안 찬다고 말했는데, 아저씨. 그거 치워버려. 꼴도 보기싫어."


하나의 자살 이후 그녀는 가속기를 가슴에 달지 않게 되었다.

본부에는 그녀가 휴대용 가속기를 착용하지 않고도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가속기와 비슷한 장치를 해 두었다.

본부를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는 것은 힘들었다.


진정제를 투여하고 몸에 구속구를 채우는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윈스턴은 그런 그녀에게 가속기를 내밀었다.


"새로 만든거야. 모의실험결과 성공률은 5% 미만. 실패작이라고 할 수도 있지."


"자살 모의인가. 웬일로 아저씨가 내 맘에 드는 선물을 준비했어?"


그녀답지 않은 비아냥을 무시하고 윈스턴은 말을 잇는다.


"이거는 더 긴 시간을 이동하게 할 수 있어. 너의 신체의 시간 말고."

레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걸 보아 자신의 말을 듣고있는걸 안 윈스턴은 다음 말을 한다.


"의도된 대로라면 시간의 범위는 길어야 1-2년. 그 이상은 무리일거야. 뭐, 성공한다면 말이겠지만.

나는 그냥 너에게 오늘 만화책을 가져다주러 왔어. 그 뿐이야."


상자 속, 시간가속기 아래에는 만화책이 잔뜩 있다.

레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윈스턴은 방을 나선다.



----------



레나는 옷을 갈아입는다. 매우 오랜만에 다시 전투복을 입는거 같다.

윈스턴의 실패작을 가슴에 착용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래, 내가 바꿔볼거야.


레나의 방에서 푸른 빛이 빛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