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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훈련

한국어 : [ ]
영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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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레나와 만나며 느낀 점은 이 언니가 엄청나게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욕을 들어도,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해도 네에, 하면서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는걸 보고 있자면 분통이 터졌다.

하나가 대신 화를 낼라치면 '에이, 화 내서 뭐해 자기. 우리 뽀뽀나 하자.'라며 입술을 부딪혀와 하나가 대체 무엇에 화를 냈는지조차 잊게 만들었다.
왜 화를 안내, 언니는 화도 안나? 라고 물어보면 '화를 낼 필요가 없어. 귀찮기만 해.'라면서 하나가 기가 찰 말만을 했다.

아마 이 언니의 뱃속엔 부처나 바보. 둘 중에 하나가 들었을거야. 라고 하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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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한달에 한번꼴로 한국에 방문했다. 프로게이머, 육군 대위, 오버워치 요원이라는 여러 직책을 맡고 있는 그녀가 이 모든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번의 방문은 기동기갑부대에 방문해 메카를 타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메카의 운용방법에 대한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훈련을 받는 병사들은 한국에서 간간히 발생하는 옴닉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즉 실전부대였다. 하지만 모의전투를 실행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하나에겐 그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빈틈이 많아 보였다.
뭐, 머릿수로 밀어붙이자면 옴닉을 처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옴닉들은 전투의 경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모두 메인 컴퓨터에 보냈고, 그것은 다음 옴닉들이 그것에 대항한 전투를 하게 했다.
때문에 언제라도 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전이 가장 좋은 훈련이긴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하나가 몇달에 한번씩 와서 그들에게 새로운 전투방식을 시연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입장에서 하나는 그리 달가운 사람이 아니다. 애초부터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 든 자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고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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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게 움직이는거 좋네요. 죽기 딱 좋아.]

이렇게, 접근하면 죽기 딱 좋아. 하면서 하나는 병사의 메카가 움직이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빈틈을 메카의 총끝으로 콕, 하고 찔렀다.
말이 콕이지 핑크색 메카가 쿠웅, 하고 병사의 메카를 치면 병사의 메카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쯧쯧쯧.. 아저씨 메카 운전 안배웠어요? 중심 못잡으면 그대로 죽어요. 현충원에 그렇게 자리 많지 않아요.]

단체를 대상으로 강습을 할때도 그녀의 독설은 여전했다.

[거기, 까까머리 안경 아저씨! 거기서 총을 쏘면 어떻게 해요. 앞에 있는 사람 죽이려고요? 원호를 하려면 그 자리보다 조금은 더 나가야지.
융합포가 어디로 날아갈지 계산하고 서세요. 옛날부터 적군에 의한 전사보다 뒤에 있는 아군이 잘못 쏴서 죽는다더니 여기 그 죽이는 군인이 있네.]

[아저씨는 그렇게 나가면 죽어요. 그렇게 죽을거면 자폭을 쓰고 말지. 자폭버튼 잘 보이죠, 그렇게 나가고 싶음 적 한 가운데에서 쓰는거 잊지 마요.
달리기 연습 많이 해야겠네.]

그녀가 이렇게 독설을 퍼붓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 여기에 와서는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날때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야~] 라고 시작하는 그들의 말도 안되는 변명들이 이어졌다.
거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친절하게 대해주니 [첫키스 해봤습니까, 남자친구는 있나요, 아님 여자친구나.] 하는 식의 성적인 희롱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대한 까칠하게 그들을 대해 욕을 먹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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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는 근처에 앉아 하나가 말하는걸 듣고 있었다.

하나가 아무리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노력해도, 한국 뉴스에서 듣던 아나운서들의 억양과 비교하면 독특한 억양을 사용했다.
억세보이면서도 노래하는듯한 그 억양은 굳이 뜻을 모르더라도 듣는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미묘하다. 특히 하나가 자주 가리키는 안경을 쓴 남자는 대놓고 하나에 대한 불만어린 표정을 짓곤 해서 괜히 마음이 쓰였다.
레나는 가방에서 휴대용 통역기를 꺼내 귀에 꽂았다. 하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와아..."
하나가 평소에도 말을 툭툭 내뱉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독설이었다. 왠지 하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신이 처음으로 조종기를 몰았을 때, 자신을 가르치던 상관이 떠올랐다.

<"옳지. 그렇게 조종간을 쭈우욱. 올리면... 조종기가 뒤집히지. 레나 훈련생 죽고싶어서 환장한건 알겠지만 이 조종기는 비싼 거라 네 관으로 쓰긴 아깝다.">
<"이야. 착륙이 이렇게... 위험할수 있다는건 처음 알았군, 항공기 사고의 90%는 이착륙시 발생하는데 그 확률을 자네가 더욱 높이는군.">

싱글싱글 웃으며 독설을 퍼붓던 상관의 얼굴이 떠올라 그녀는 가볍게 얼굴을 흔들었다. 그래도 그런 말 한번씩 들으면 다시는 그런 짓 못하지..
하지만 하나의 나이가 어린 탓일까. 같은 독설이지만 병사들은 그녀의 말이 매우 고까운듯 했다.


[모두들 수고하셨고, 점심식사 끝난 후 다시 훈련하겠습니다.]

땀투성이의 조종사들이 메카에서 내려와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갔다.
우리도 갈까, 하고 레나가 하나에게 다가오자 [짬밥] 맛없어.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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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말을 상냥하게 하는건 어떨까 자기."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레나는 하나에게 말했다.
레나의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통역기를 보고 하나는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다 듣고 있었대요. 근데 진짜 못하잖아요. 조종간도 뻣뻣하게 요래요래 잡아서..."

"자기는 천재니까 잘하는거고. 그사람들은 평범하잖아. 자기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

그건 사실이었다. 하나는 순수한 천재였기 때문에 그들이 왜 메카를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격도, 메카의 움직임도 둔하고 허술하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하지, 그들이 자신과 같은 능력이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건 하나가 훈련을 진행할수록 느끼는 바가 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 그냥 몸으로 딱, 하고 느껴지지 않나?

때문에 레나의 말은 하나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누구에게 너는 이걸 못하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레나의 말은 '하나는 누굴 가르치지 못한다.'라고 들리기만 했다.
그리고 여태 살면서 자신의 이름에 우수함. 만이 있었던 하나에게 이 말은 매우 불쾌하고 짜증나기만 했다.

"그 사람들이 바보인것도 내 책임인가."

"그래도 좀 이렇게, 이끌어줘야지."

"그만해요. 별로 듣고싶지 않네요."

"..자기."

"언니가 해본적도 없으면서 말하지 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새 부대 안으로 들어왔고, 하나는 화가 난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앞서서 척척척, 걸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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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훈련은 더욱 혹독했다. 자신의 분노를 모두 이 훈련에 집어넣어주겠어! 라는 매우 아이같은 생각으로 하나는 훈련을 지휘했다.
훈련 과정에서 다치는 사람도 나왔지만 [잘 피하고 잘 넘어지는것도 중요하지, 왜 그렇게 넘어지냐.]라는 하나의 폭언이 이어졌다.

뙤양볕 아래에서 훈련을 하는건 힘들었기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몇몇 군인들이 그늘진 구석으로 가는게 보였다.

하나는... 아직 레나에게 남은 감정이 있는지 레나와는 반대편 그늘로 가 게임기를 켜고 말 없이 게임을 했다.

하나의 화를 풀어주는 것도 좋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레나는 군인들이 향한 구석으로 간다.
그들은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간간히 [하나]라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억양으로 봐 좋은 뜻은 아닌거 같았다.

레나는 숨어서 통역기를 다시 귀에 꽂고 휴대폰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하... 저 X년 X나게 쪼아대네. 기집애들 땍땍대는거 X나게 사양이다. 이 날씨에 이게 뭔 고생이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김병장님.]
[XX년이 외국물 쳐먹고 오더니 말하는 뽄새 하고는. 우리가 나이도 많은데. 아 그냥 엎을까, 확 엎어버려?]

그들은 화가 나서 하나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대화에 섞이는 욕들이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거지. 하고 레나가 돌아서려는 그때.

[꼭 저런 X들이 침대 위에서는 빌빌 긴다니까.]
하는 김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하고 나머지 병사들이 웃었고, 순간 레나는 발이 얼어붙은 레나는 그 뒷말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쟤 외국에서 있으니 양놈들이랑 해봤겠지?]
[해봤을겁니다. 거기 양놈들이 물건이 크지 않습니까.]
[이야. 그러다가 이제 해외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오는거야. 프로게이머 하나 송. 이렇게. 큭큭큭큭]
[내가 저런 애들이랑 자봐서 아는데, 저런 애들이 은ㄱ...]

그들의 음담패설은 거기서 중지될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레나가 말을 꺼내던 병사의 등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뭐야! 당신 갑자기 왜 사람을 패!]

"듣자듣자하니 당신들 아무 말이나 막 하는데."

평소 말끝마다 자기,를 붙이는 레나가 그들에게는 이례적으로 자기를 붙이지 않았다. 혐오감에 찬 표정으로 레나는 하나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그들은 계속해서 발로 찬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둘 사이에는 통역기가 없었고, 둘은 서로 다른 나라의 말만을 하고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이야기는 계속 평행선만을 달렸다.

그리고 먼저 덤벼든 쪽은 군인 쪽이었다.
맞았으니 대항하는거지, 이건 정당방위야.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비리비리한 외국 여자가 실은 매일매일 싸움을 하는걸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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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장 구석에서의 작은 싸움박질은 부대 전체의 역사에 남을 큰 사건이 되었다.

일단 연대장이 출동했다. 진압된 현장에서는 영국인 여성 한명과 자기 부대원들이 있었다.
영국인 여성도 입술이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자기 부대원들은 안 맞은 곳이 없게 골고루 두들겨 맞았다.

이 일은 국가적인 분쟁까지도 갈 소지가 충분했지만 연대장이 이 일을 덮어버린건 몇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다수의 부대원이 외국에서 온 민간인 여성과 싸움박질을 한것.

둘째는 싸움을 하고서는 진 쪽이 우리라는것. 이게 공개되면 부대의 이미지가 추락하는건 순식간이다.

셋째는 영국인 여성이 화가 나서 던진 휴대폰에 있던 녹음내용이었다.
"연대장 당신만 듣고 잘 판단해. 누가 잘못한건지."라고 그 여성이 눈에 불을 번쩍이며 얘기했지만, 연대장은 그것을 사건의 당사자들과 그 보호자까지 있는 곳에서 공개를 해 버렸다.

따라서 "조용히 있으라고 했는데,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싸움을 하고 그래요! 언니가 애에요?!" 라고 레나를 혼내던 하나까지 그 녹음의 내용을 모두 다 들어버렸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의 싸움은 없던 것으로 한다.

상관인 송하나 대위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해당 부대원들은 군사재판에 맡겨진다.

송하나 대위의 건의-한달에 한번 훈련을 해 주던 것을 6개월에 한번으로 바꾼다.-를 수리한다.

대신 이번 일에 대한 어떠한 것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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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야야야! 살살해 자기야."

"으이구. 싸움박질 하고선 아프다고 하기는. 싸움을 하기 전에 상처가 아플거라곤 생각 안했어요?"

의무실에서 하나는 레나의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아야야야 아파 자기. 하면서 귀도 꼬리도 축 처져있는 모습이 아까 연대장 앞에서 이를 악물고 얘기하던 여자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 웃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고 쥐어패요. 팰거면 다치질 말던가."

"시간가속기를 쓰면 내가 누구인지 들켜버리잖아. 본부까지 문제에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어."

그 와중에도 문제의 범위를 좁히려고 노력한 레나에게 하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 이 언니가 누구와 다투고 있다고 할 때, 이 언니가 오늘따라 나를 괴롭히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대장이 녹음을 재생하려는 순간 하나를 위해 재생을 반대하던 레나의 모습은 하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괜히 내 열등감에 의해 언니에게 화를 냈다는 점이 미안하기도 했다.
때문에 약을 발라주는 하나의 손끝은 살짝 떨렸다.

약을 발라준 하나는 일어서서 레나의 얼굴을 가슴에 안았다. 이 언니의 얼굴을 보면 괜히 또 내 허세가 솔직한 말을 못하게 할거 같아서였다.

"오늘 고마워요. 나는 내가 어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무시당하거든. 특히 한국은 나이가 중요해서 더 심해.
거기다가 나는 여자니까 군대에 와서 이런걸 하면 사람들이 날 무시하고 성희롱적인 발언도 해.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내가 그 사람들이 못하는거에 대해서 무시하니까 괜히 더 욕하고 싶은거겠지.
그래서 나도 감정적으로 나간건 있어. 언니처럼 차라리 증거라도 잡고 쥐어 팼으면 나았을텐데...
언니가 아니었으면 난 계속 뒤에서 욕을 들었을거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짜증났을거야. 고맙고 사랑해, 언니."

하나는 가슴에서 레나의 얼굴을 떼내 들여다본다. 씨익, 하고 레나가 웃는다. 하나의 눈에만 보이는 그녀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쪽 쪽 쪽. 레나의 이마에 코에 입술에 뽀뽀를 해 준다.
고마워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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