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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벚꽃의 유산 - 2

옴닉들의 행동은 여태 보인 행동들과는 매우 달랐다. 그들은 전술적이었다.

기존의 옴닉들이 각각이 파괴를 위해 돌진하는 형태의 전술을 짰다면 지금 이스라엘의 시가지를 파괴하고 있는 옴닉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몇개의 조를 이루었다.

몇개의 옴닉은 본래의 파괴임무를 맡았으며 그를 보호하는 다른 옴닉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오버워치의 요원들을 유인하는 옴닉도 있었고, 공격을 대신 맞아주어 요원들의 공격을 허사로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많은 공격조의 요원들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죽음을 피했다.

공격조들을 후위로 피신시키며 오버워치의 요원들은 점점 후방으로 밀려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비쳤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전투의 현장에서 빛의 잔영을 남기며 누군가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레나는 전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녀의 관심은 토끼를 찾는 것이었다.


무너진 건물, 불타는 엄폐물, 부서진 옴닉 더미 아래. 그 어디에서도 하나는 없었다.

레나는 점점 입이 말랐다. 하나, 하나는 어디에 있지?


그녀는 점점 더 전장을 벗어나 최초의 폭발이 일어났던 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 보니 그곳은 학교였다. 보고에 따르면 현장에서 죽은 사람이나 다친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의 잔해를 샅샅히 뒤진다. 하지만 누군가의 핏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하도 뛰어서 그런가, 아니면 불안한 마음이 몸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던 중,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 영국에서 위대한 옴닉을 지키지 못했을, 그 때의 느낌. 레나는 몸을 긴장시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반짝, 학교 주변의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저격총의 스코프, 레나는 몸을 피했다. 피한 곳의 땅이 음푹 패였다.


그녀라면, 그녀라면 하나가 어디있는지 알 지도 몰라. 가속기에서 불길한 소리가 나는 것을 무시하고 그녀는 달린다. 어느새 그 건물의 옥상 문을 잡고있다.


문을 열어도 될까. 문을 여는 그녀는 순간 그런 예감이 들었다.



문을 열자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예전에 익숙했던 그 오싹한 느낌과 함께, 모순적이게도 포근한 냄새가 왔다. 딸기향? 하나가 자주 씹던 껌의 냄새.

눈이 부셔서 잠시 눈을 깜박인다.


"생각보다 더 멍청한데, Cherie."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다. 저격총은 반동도 심하고 재장전이 느리다. 하지만 그녀라면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내 미간을 쏠 수 있다.

애초부터 감정에 휩쓸려서 멍청한 짓을 한거야, 라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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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눈에 익숙해지자, 멀리 연기가 보인다. 전투의 현장. 그것을 배경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위도우메이커, 탈론의 요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 자신의 토끼가 보인다.


"하, 하나야."


붙잡힌건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움직이기 어려운데, 어떻게 하나를 데리고 탈출하지. 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하나의 표정은 달랐다.


게임리그에서 프로게이머인 하나를 봤을때의 그 표정. 자신이 목청 터지도록 그녀의 이름을 외쳤던, 그 반할만큼 멋진 얼굴. 그녀는 그 얼굴을 하고 무릎 위에 놓인 랩톱을 노려보고 있었다.

양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 마치 상대 선수를 쓰러트리는 것처럼.


"자기야?"


"어, 언니. 나 바쁘거든. 조금 있다 얘기할래?"


하나의 말에 위도우메이커가 쿡, 하고 웃는다.


"자기, 지금 뭐하는거야?"


그녀가 자신에게 검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십분여가 흘렀을까. 읏차, 하며 그녀가 랩톱을 닫는다.


"별로 어렵지 않네. 게임이랑 비슷해." 그녀의 눈은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 자신의 앞에 있는 탈론의 요원을 향하고 있다.


"그래? 다 한거야? 그럼 가도 되는거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위도우메이커가 총구를 내리고 하나에게 다가간다. 그녀가 하나의 허리를 잡는다. 뭘 하려고?


"자기야!"


"아, 지겨워졌어."



응? 레나의 머리가 굳는다. 하나가 자신의 눈을 쳐다본다. 길가의 돌을 보는 듯한 무감각한 눈. 그 검은 눈동자가 심연과도 같아 마음이 얼어붙는다.


"지겨워졌다고. 영웅 행세. 너무 쉬워서.

언니도 알잖아? 나는 하드모드만 하는거. 점점 내가 녹슬어가는거 같아서."



"무슨말을 하는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

한걸음, 레나가 하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발의 바로 옆 바닥이 음푹 파인다. 랩톱을 들고 있지 않은 하나의 손에 총이 들려있다.


"다가오지 마. 나는 뉴비는 상대 안한다는 주의인데, 뉴비가 덤벼오면 다시는 게임에 손 못대게 부숴버리는 주의거든."


"무슨 소리야.. 아, 아일린은? 나는?"


"말했지. 다 지겨워졌다고. 언니처럼. 아일린도 불량품일지 어떻게 알아? 나는 언니에 이어서 걔까지 감당 못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쪽이 훨씬 더 재미있어 보여. 나는 언니와는 달라서 정의니 뭐니 상관 없어. 나는 그냥 재미있는게 좋아."



불량품.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했던,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던 그녀가 둘 모두를 불량품이라고 말한다.

하나가 아닌거 같아. 라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그녀는 자신의 토끼가 맞았다.



"적당히 실력을 쌓고 오던가, 아니면 지금 게임 접게 해줄까?"


레나의 입에서 대답이 없자 하나는 등을 돌린다. 위도우메이커가 하나를 안아들고 갈고리를 던진다.

그렇게, 둘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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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고 모리슨이 이마를 문지른다.

그가 보고 있는것은 전투가 일어날 지역. 이번에도 옴닉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몇 안되는 도시이다.


그 후로 1년. 전투의 양상은 바뀌었다.

탈론으로 전향한 한 명의 오버워치 요원은 순식간에 전세를 거꾸로 뒤집었다. 오버워치에 아무리 유능한 요원이 많다고 하더라도 수백에 달하는 로봇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요원 한명 한명은 사람이다. 때문에 그들이 죽는 순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경험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로봇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있는 한 로봇을 아무리 죽여도 새로운 로봇이 그와 같은 기술을 지니고 싸운다.


송하나, 그녀는 프로게이머로서 가졌던 전술을 사용해 오버워치의 전 요원을 상대했다.

그녀는 마치 게임을 하듯 차근차근 도시를 파괴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대도시에서 주로 전투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인명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오버워치가 탈론에 숨겨뒀던 첩자가 있다고 한다. 그 첩자는 과거부터 오버워치에게 탈론의 정보를 알려왔고, 지금은 전투가 어디에서 일어날지에 대한 첩보를 전했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사람들만은 피하게 할 수는 있었다. 그래, 그 덕분에 적어도 사람은 죽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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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투는 도쿄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라 모두 대피시키는게 힘들거 같지만 모두들 최선을 다하자고."


"그냥 로봇을 모는 사람을 죽이면 되잖아."

나의 말에 가뜩이나 무거워진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는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인명의 보호다. 그 의견은 기각하지."


"언제까지나 사람만 대피시키고 도망다닐거야, 그냥 한방 빵. 하면 로봇들이 멈출텐데.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어?"


"레나..."

앙겔라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는다. 이제는 그 목소리도 짜증이 난다.


"언제부터 우리가 탈론을 인간대우 해줬지? 지금 탈론이 이 일년한 해온걸 봐. 전 세계적으로 옴닉에 대한 혐오정서가 짙어지고 있다고! 그 여자애 하나만 죽이면 되는걸 다 왜 말리고 있어!"


"트레이서, 말이 심하시군요. 그러던 분이 아니었잖습니까."


파리하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그녀를 노려본다.


"그만. 둘 다 자리에 앉아.

트레이서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돼. 핸슨이 정보를 물어다주고 있는 지금, 우리가 송하나를 죽였을 경우 그가 위험해진다. 지금도 충분히 그는 위험해."


핸슨, 첩보의 코드네임이다. 그래, 그는 지금 정체가 드러날 것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죄가 없다. 그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어.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쥔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전원은 민간인 대피를 목적으로 한다. 작전시각은 나흘 후, 15:00.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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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가라앉히며 집으로 간다. 문을 열자, 도도도 하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엄마!"


"아일린! 많이 기다렸어?"


"아니! 아일린은 선생님이랑 색칠공부했어!"


아이를 품에 안고 베이비시터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도 잘 놀았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엄마! 몇밤만 있으면 생일이야?"


"그렇지! 우리 아가 생일.. 이제 여섯밤 뒤. 아일린 숫자 육 셀줄 알지? 뭐 갖고싶은거 있어?"


아이는 손가락을 접어보다 한쪽 손을 좌악 피고 반대편 손은 엄지를 내민다.


그래, 그게 육이야. 우리 아이린 뭘 사줘야 하나,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아이는 다행히도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로 자랐다.

이제는 많이 컸다고 혼자서 밥도 먹는다.


종알종알, 마치 참새처럼 옆에서 떠드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재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아이의 머리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쉰다. 아이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익숙한 딸기향이 나는 거 같아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이는 그녀와 많이 닮았다.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면 슬그머니 접시 한쪽에 밀어놓는것도, 들키면 씨익 웃는것도, 화가 나서 발을 구르는 모습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오늘 회의 때문인가, 그녀의 생각이 더욱 난다. 배신감이, 그리고 분노가 솟구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움이 올라온다.


괜히 눈물이 나 아이를 꼭 안는다. 밖에는 벚꽃이 활짝 폈다. 생일날에는 아이와 벚꽃 아래에서 도시락이나 먹으며 놀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