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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벚꽃의 유산 - 4

아이는 사탕을 물고 있는지 빙긋, 웃음을 짓고 잠을 잔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넘겨주며 사탕이 들어있을거 같은 볼에 입을 맞춘다.

아이의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 나는 베이비시터를 부르고 기지의 요원이 아닌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약속을 받는다. 그리고는 앙겔라 박사의 집으로 간다.


아이는 안타깝게도 나의 요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유식을 만들어줬을때 오만상을 다 쓰며 손가락으로 혀에 붙은 이유식을 긁어냈을때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기기도 했지만 살짝 야속하기도 했다.

그 대신에 선택한 것이 박사의 음식이다. 아이는 그녀가 만든건 뭐든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래서 오늘, 아이의 생일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부탁하러 그녀에게 가는 것이다.



앙겔라는 내가 주문한 음식 외에도 자그만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줬다.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가 듬뿍 올라간 생일 케이크.

딸기를 빼앗아 먹는 시늉을 하면 아이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삐질거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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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레나."

앙겔라가 케이크를 주며 나를 부른다. 그녀의 눈빛이 빛나고 있다.


"무슨 일이에요? 애 생일선물은 됐는데..."


"이것도 거절할거에요? 이제 당신을 고칠수 있고 아이도 정상인지 확인할 수 있는데..."


손이 떨려 음식을 떨어뜨릴것 같아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는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오...세상에.." 내 입에서는 이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10년. 10년만에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보다 더 기쁜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거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한참을 울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다.


"아이랑 생일 축하 하고 연구실로 와요. 간단한 시술이면 돼요. 아이도 간단한 검사면 확인할 수 있고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기쁜 생일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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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슨 말이에요?"


베이비시터의 얼굴이 파래진다. 그녀는 아이를 어떤 사람이 와서 데려갔다고 한다. 앙겔라 박사의 이름도, 파리하의 이름도 대기에 같은 회사의 동료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절대 나에게 연락을 안하고 애를 데려가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 하필이면 오늘 왜.


하늘과 땅이 반전되는 느낌이 든다. 신이라는 작자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나를 처박는다.


내가 몸을 비틀거렸는지 시터가 나를 부축해준다.



시터를 보내고 나는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디로 갔을까, 일단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찾아본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놀이터, 그 어느 곳에도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와 종종 놀러갔던 공원에서, 나는 아이를 발견했다.


벚꽃이 만개한 벚나무 아래. 그 벤치에서 그녀와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그녀의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헤드폰을 하고 있는걸 봐서 리듬게임인가, 싶었다.



"너..."


"오랜만이네. 애가 멀쩡한가 궁금해서."


그녀는 나에게 시선을 두지도 않고 아이만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가 어디라고 온거야."


"목소리 낮춰, 애가 들어."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저번과 같은 눈. 검은 우물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눈.


"확인했으니 됐어, 나는 가볼게."



그녀가 일어난다. 그동안 그녀도 성장했을까, 슬쩍 훑어본 그녀는 나와 비슷한 키를 하고 예전보다 훨씬 여성적 선이 보이는 몸을 하고 있었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게 이렇게 화가 나는 일일줄은 몰랐다. 아이가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죽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탈론이 아이를 데려갈수도 있다. 또는 아이가 내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녀를 보낼수밖에 없다.

나의 눈빛에 드러난 적의를 보고도 그녀는 아무 말도 없다. 돌아서는 그녀에 등에 대고 말한다.


"아이는 건강해. 나 같은 불량품이 아냐."


"다행이네."


"나도 불량품이 아니게 될거고."


그녀가 걸음을 멈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그건 두고봐야 아는거고."



"다음에 만나면 널 죽일거야."


"상관없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녀가 멀어진다.

지금 당장은 아이에게도 소리를 지를거 같다. 나는 아이가 게임을 마칠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는 게임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있는게 놀랐는지 눈이 커진다.


"이모가 엄마가 되었네!"


"그러게. 아일린, 엄마가 뭐라고 했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된다고 했지?"


"모르는 사람 아닌데? 엄마 친구랬어."


"엄마 친구는 파라 이모랑 안지 이모, 아나 할머니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도 엄마가 보여줬잖아."


아이의 눈이 흔들리고 큰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화를 내는 것 같이도 보인다.


"엄마 친구랬단 말야!"


"엄마 친구 아니라고!"

처음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깜짝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린. 엄마 얼굴 똑바로 봐. 아이린이 처음 본 사람은 따라가는거 아냐, 알았어? 안그러면 엄마한테 혼나, 응!"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어깨를 붙잡는 순간, 아이의 손에서 게임기가 땅으로 떨어져 산산조각난다.


그 소리에 아이는 더 놀라 숨이 넘어가듯 운다. 그제서야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아이를 품에 안는다.


"아, 아가.. 엄마가 미안해..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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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생일은 엉망이었다. 아이를 달래려고 박사의 집에 갔지만 하루종일 아이는 기분이 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가락만 빨았다.

거기다가 앙겔라가 이상한 검사까지 진행하자 아이는 결국 한번 더 자지러지게 울더니 지쳐 잠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딸기가 올려진 케이크도, 고개를 돌리고 무시했다.


나는 나대로 마음이 불편해 결국 박사와 파라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한다.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허술한 나에 대한 자책이다.

그토록 바라던 시술을 받았지만, 그리 기쁘진 않다.


결국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왔다. 가속기를 벗어 가슴이 있는 곳은 시원하고 가볍지만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내 몸을 가득 채운다.


밤이 늦어 달이 뜰 때까지 아이는 지쳐 잠을 잤다. 나는 아이의 옆에 앉아 말없이 아이의 머리만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밤이 늦어 배가 고팠는지 눈을 떴다. 엄마, 하며 내 허벅지에 파고드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다시 웃었다.


"우리 아가, 이제 깼어? 안배고파?"


아이가 내 눈치를 본다. 또 소리를 지를까 겁이 나는걸까? 나는 아이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아이린이 아니라 엄마가 나쁜거야. 엄마가 혼자라서 미안해."

그렇게 살짝, 아이의 등에 눈물을 닦았다.


아이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내 얼굴을 보고 갸웃거리더니 배고프다며 케이크가 먹고싶다고 했다.


그렇게, 늦은 밤. 우리는 조촐하게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불었다.


"아, 나 이거 받았어..."

엉덩이를 씰룩대며 딸기를 먹던 아이가 눈치를 보더니 쓱, 손목을 내민다.


팔찌? 아이의 손목에 자그만 팔찌가 매달려 있다. 자세히 보니 동그란 메달이 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는, 금으로 된 평범한 팔찌.

마음 같아서는 빼앗아서 던지고 싶다. 하지만 아이의 눈을 보니 또 혼낼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건 마치, 그녀의 눈과 같다. 난 과연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이걸 허락할수밖에 없다. 이것마저 빼앗았다간 아이의 생일이 정말 안좋은 기억이 될거 같다.


"좋아. 이건 허락해줄게. 대신 엄마랑 약속, 모르는 사람은 절대 만나면 안돼. 알았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아이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걸어왔다.

아이를 품에 안는다. 아이와 나의 맨 가슴, 동동거리는 아이의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그래, 엄마가 아가 너를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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