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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벚꽃의 유산 - Epilogue


"한나! 너무 뛰어다니지 마! 그러다 넘어진다!"


아이에게 소리를 친다. 하지만 들을 생각이 없는지 아이는 강아지와 까르륵, 웃으며 뛰어논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는 나무에 기대 품에서 편지를 꺼낸다.


처음으로 편지를 읽어본다.

피에 젖어있지만 다행이도 내용은 그대로 있다.


몇번이고 읽으려 했지만 금새 눈 앞이 흐려져 읽을 수 없었다.

그러길 두해.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을거 같아 편지를 열어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글씨를 확인한다. 평소 컴퓨터만 잡고 있어서일까, 단정한 글씨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이게 꼬맹이의 글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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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걸 언니에게 무사히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걸 전할 일이 없을 수도 있어. 그냥, 내가 언니의 어깨를 끌어안고 이 얘기를 했으면 해.

미안했어, 많이 기분 나빴어? 화 풀어. 하면서 언니의 옆구리를 간지럽힐수도 있지.


그런데 혹시, 혹시나 해서 이 글을 남겨.

혹시, 내가 의식이 없거나 해서 언니가 나를 죽일수도 있으니까. 품에서 이걸 읽고 부디 그런 실수는 말았으면 해.


흠흠, 잔소리가 많았다. 언니도 알잖아. 내가 글같은거 못쓰는거.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할게.


언니, 일단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언니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니 언니에게 미안해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일단, 나는 언니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언니의 허락도 안 받고 이 일을 했어.

언니가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리고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실, 언니를 내가 엄청나게 훔쳐봤거든.

언니가 거울을 보면서, 내가 점점 나이들어가는데에 비해 언니의 얼굴은 전혀 늙지 않는다는걸 알아챌 때의 그 표정이 나는 너무 슬펐어.

내가 이곳저곳을 많이 찾아봤어. 그리고 언니가 늙지 않을 수도 있단걸 알게됐지. 나는 언니가 늙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뭐 탱탱한 언니를 계속 보는건 즐거우니까.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언니가 너무 외로울거 같았어.

시간이 흘러, 잭 아저씨가 죽고, 박사님도 윈스턴 아저씨도, 그리고 나도 언니의 곁을 떠나고.. 나중에 아일린까지 언니의 곁을 떠나고 나면 언니는 혼자잖아.

그때를 상상해보니, 차가운 비석만을 친구로 둔 언니를 생각해보니, 견딜 수가 없더라.


그리고 아일린도, 아일린도 걱정이었어.

물론 아일린은 건강할거라 믿어. 문제가 없을거야. 누구 배에서 나왔는데.

근데 언니가 아일린을 만지는걸 무서워하는게 정말 슬펐어. 아일린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레나 엄마인데. 만지지도 안아주지도 않는건 슬프잖아.

그래서, 그래서 내가 이런 무식하고 화나고 버릇없는 짓을 저질렀어.


언니에게 욕도 하고.. 침 맞을 짓도 하고.. 언니에게, 그리고 내 딸에게 불량품이라는 소리를 한건... 정말 못된 짓이지. 맞아. 용서받을 수 없어. 그래, 내 욕심이야.

그래도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언니가 나를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또, 용서 구하는거 말고. 언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아일린. 정말 예쁘게, 그리고 똘똘하게 컸더라.


내가 가서 안녕? 하고 인사를 했는데도 엄마가 모르는 사람하곤 인사하는게 아니라고 해서 마음을 풀어주려고 안한 짓이 없어.

그러니까 아이린을 너무 혼내지 않았으면 했는데... 뭐 많이 혼냈으면 내가 가서 그만큼 더 사랑해주면 되니까 하는 수 없지.


그런데 나이를 물어보니까 그 작은 손가락을 꼼질거리면서 네살! 하고 소리지르는데. 정말 똘똘한게 언니같았어.

같이 술래잡기도 하는데, 아휴. 고 조그마난게 얼마나 체력이 넘치는지, 결국 게임기를 쥐어주고 나서야 조용해진거 있지?

걔는 딱 언니 판박이인거 같아. 나중에 육상이나 시킬까봐.


정말, 예쁘고 착하게, 건강하게, 똘똘하게 내 딸을 키워줘서 너무 고마워. 품에 안아보는데 언니 냄새랑 고소한 아기 냄새가 섞여서 눈물이 날 뻔 했는데 꾹 참았어.



그리고 언니도, 언니도 건강하게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아이를 또 못만지고 벌벌 떠나 걱정되어 몇번 몰래 엿봤어.

물론 박사님에게 밥을 얻어먹이는건 좀 안타깝긴 하지만 아이와 잘 놀고, 함께 포옹하고 뽀뽀하고... 다 너무 기뻤어.

건강하게, 건강하게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아, 정말 나 횡설수설 엉망으로 편지를 쓴다.

언니가 이걸 진짜진짜 읽지 않았음 싶다. 이거 읽고 "아이고 우리 토끼 글 쓰는거 알려줘야겠네." 하면 나 부끄러워서 도망갈지도 몰라.

이제 종이가 얼마 안남았네.

그럼 언니, 나는 지금 언니에게 갈거야. 오늘 무사히 언니에게 안겨서 언니에게 무진장 혼나고 싶다. 그리고 아일린에게 "안녕? 나는 하나엄마야." 하고 인사도 하고 싶어.


언니가 자유로웠으면, 그리고 아일린이 건강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언니, 좀 있다 봐.

바이바이.


SONG HANA - HAN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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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울어? 왜 울어?"


"응? 아... 한나가 건강하게 커서 고맙다는 편지를 읽었거든.. 그 사람이 너무 보고싶어서... 그래서 그래.."


레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채 끄윽끅. 눈물을 토해냈다.


한참을 울었을까, 부운 눈으로 레나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고, 우리 아기도 왜 울었어? 우리 한나가 울면 엄마는 더 우는데?"


"엄마가 우니까.. 너무 슬퍼서.."

비쭉비쭉. 입을 내밀며 아이가 말한다. 코가 빨간게 하나를 연상시켜 또 가슴이 미어지는지 레나는 말 없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이고.. 우리 한나, 엄마도 생각하고 다 컸네.."


"근데 엄마, 왜 날 계속 한나라고 불러? 나는 아일린 한나 옥스턴이라서 아일린인데?"


아이가 눈물에 젖은 눈으로 물어본다.


으응, 그냥.. 레나는 아이를 한번 더 꼭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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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신의 이름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서였을까.

하나는 정말, 완전하게 자신의 존재를 없앴다.

그녀의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관련 기관을 찾았을 때, 나는 그녀가 이미 자신의 기록을 없앴다는 사실을 알고 한번 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나에게 남긴건 별로 없었다. 원래 우리 집에 있던 그녀의 물건, 그녀의 유골함, 그리고 이 편지.

물건은 치우질 못했고 유골함은 묘지에 묻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녀의 편지를 읽었다.



이제 슬슬 나타나는 육체의 변화, 아이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흔적.

그녀가 나에게 누리게 한 이 모든 것.

벚나무 아래에서, 나는 아이와 함께 울며 그녀의 마지막 유산을 느낀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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