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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더위

40도를 육박하는 기온, 본부에서의  모든 훈련은 취소되었다. 상부에서의 지시는 혹시 모를 위급상황을 대비해 기지에서 대기.

보통이라면 모두들 즐거워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중앙 냉방 시스템의 점검으로 모든 기지의 에어컨이 가동을 중지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참사라면 본부 내에서 반란이 일어날 만 하다. 하지만 기지는 조용하기만 하다.

모두들 더워서 누워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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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미지근하네." 레나가 머리를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나를 보자 방바닥에 배를 깔고 늘어져 있다. 한 손에 들린 핸드폰이 자동으로 전투를 진행하는 것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거 같다.


"자기야, 더워?"


대답이 없다.


"자기야."


레나가 발 끝으로 하나의 엉덩이를 콕콕 찌른다. 미동이 없다. 슬쩍슬쩍, 엉덩이의 가운데 골로 발가락의 위치를 옮기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다.

하나의 엉덩이 위에 앉는다. 기운내 자기야! 몸을 달달달 떨어 하나의 몸을 진동시킨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레나는 헉, 하고 숨을 삼켰다. 하나의 머리카락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어 마치 예전에 봤던 일본 공포영화의 귀신을 연상시켰다.

손가락 하나로 머리카락을 슬쩍 치워본다. 하나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침착하게 머리카락을 원래 있었던 곳, 눈이 있던 자리에 덮어준다.



"묶어."


"네."



그녀에게서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을까,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위엄있는 목소리다.

레나는 하나의 엉덩이를 다시 타고 앉아 그녀의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고무줄 몇개를 꺼내 하나의 머리를 손 끝으로 빗어 느슨하게 목의 양쪽으로 머리를 나눠 묶어준다.


드러난 하나의 목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후우, 하고 바람을 불어 땀을 식혀준다. 하나는 그 말 이후로 대답이 없다. 엎드려 다리를 쭉 뻗고 있는 모습이 나른해 보여 롭이어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뻗어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른다. 평소라면 짜증을 낼텐데. 괜히 이득을 본 느낌이다.


사실은 나른한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일수도 있어. 나시와 핫 팬츠를 입은 하나가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 슬슬 걱정이 된다.


"자기, 우리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갈까?"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다에서 비치발리볼 어때, 하며 레나가 하나의 등 위에서 통통, 하고 엉덩이를 굴린다.



"언니."


정말 오랜만에 자신을 부른거 같아 왈칵, 감동이 든다.


"더울땐 집에서 에어컨 키고 있는게 딱이야. 바다나 계곡은 필요없어. 괜히 나갔다 차나 밀리지.

그런데 여기 에어컨도 없네? [아무리 대한민국의 뭣같은 군대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사람을 쪄죽게 하지는 않았었는데.]"


마지막 뒷 말은 한국어다. 레나는 하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건 하나의 뇌 속의 영어패치가 풀려버릴 정도로 날이 덥다는 것이다.

이대로 갔다간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의무실에서 얼음주머니라도 갖다 대 줄까, 라고 레나는 생각했다. 뭐 나도 덥지만 하나가 더워하잖아. 레나는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의무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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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옷 속에 한개, 다리 사이에 한개, 팔로 한개. 앙겔라가 가지고 있던 얼음주머니 중 하나를 빼앗아왔다.


"저는 오늘같은 날에도 당직이란 말이에요!"

라는 그녀의 비명을 무시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하나는 없다.


더워서 어딜 갈 애가 아닌데... 화장실 안에도, 침실에도 그녀는 없다.


"설마..."


레나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연다. 역시, 그렇지. 하나는 없다.


"아무리 꼬맹이가 더위를 먹었다고 해도 여길 들어갈 리가 없지."

나도 더위를 먹었나. 레나는 얼음주머니를 안고 하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휴게실에도 애가 없어서 전화를 걸어본다.


<응, 언니.>

아까와는 다르게 산뜻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어디야?"


<아, 나 1층 식당.>


"주방이 더운데 식당은 왜 가?"


<오늘 영업 안하잖아. 그리고 여기 되게 시원해. 언니도 오고싶음 오던가.>

뚝, 하고 전화가 끊긴다.


식당이 시원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식당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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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텅 비어있다. 평소라면 술래잡기 하자는 걸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상쾌한 목소리로 봐선 어디 시원한 곳이 있나본데...


혹시? 하고 주방 깊숙히에 있는 냉동창고의 문을 당겨보지만 닫혀있다.

그도 그럴게 저번주에 둘이 여기서 자겠다고 이불을 들고 갔다가 앙겔라에게 혼나지 않았는가.


다시 전화를 건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레나의 등 뒤에 있던 커다란 냉장고 안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으허억, 하며 그녀는 황급히 통화를 종료한다.


아무리, 얘가 맛이 갔어도 설마...

대형 냉장고의 문을 연다.



"어, 잘 찾아왔네 언니."

하나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반긴다. 아까 방에서 머리를 풀어헤친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야! 정신 나갔어? 이거 공업용 냉장고인데 갇히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레나의 말이 성가시다는듯 하나는 손을 젓는다.


"언니, 나 여기서 한시간만 있을테니까 나중에 열어줄래?"


"여기서 한시간 있음 죽어!"


"에이,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죽어. 응? 한시간이다."


하나는 손을 뻗어 냉장고의 문을 닫는다.


하나를 찾으러 돌아다녀서인가, 등에 땀에 젖은 옷이 달라붙는다.

성가시네, 다시 씻으러 갈까, 하는데 냉장고에 계속 눈이 간다.


-사람은 쉽게 안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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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는 잠에서 깨어났다. 하늘은 벌써 붉게 물들었고 몸에 끼고 있던 얼음주머니는 모두 녹아 물주머니가 되었다.

덥긴 했지만 환자도 없고 평화로운 오후구나. 하고 창 밖을 멍하니 본다.


몇시지... 휴대전화로 손을 뻗는다.

부재중 전화가 40통, 문자 20통이 와 있다.

눈을 비비고 안경을 쓴다.


<박사님... 살려주세요>


<앙겔라. 나 죽어가.>


<박사님.. 자요?>


<앙겔라 박사님!>


<다시는 얼음주머니 안 뺏을테니 이번 한번만 용서해줘.>


<앙겔라, 지금 나 주방 냉장고 안에 갇혀있어 살려줘.>


<앙겔라 박사님, 저 지금 냉장고 안에 갇혀있어요!ㅜㅜ>


어쩐지.. 평화롭다 했더니 둘이 없어져서였구나.. 앙겔라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번에는 어떤 벌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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