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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지옥 - 下

박사님이었던 것의 잔해를 뒤진다. 언니의 물건을 갖고 있다면 다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쏜 총에 의한 흔적 외의 것, 그것이 가지고 있기에 이상한 흔적…



주머니. 주머니 안쪽에 피가 묻어있다.
흠뻑 묻은 것이 아니라 세 줄로 길게 나 있다.
마치 누군가의 손자국처럼.

주머니는 텅 비어있다. 즉, 무언가가 있었지만 빠져 나갔다.
텅 빈 주머니에 손을 넣을 이유는 없다. 즉, 손자국의 주인은 그것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 된다.
박사님이 주머니에 넣고 다닐만한 물건. 그 중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의무실에 있는 무언가일 확률이 높겠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것.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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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실은 처음으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여기에는 아직도 변해버린 동물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동물은 사람보다 작기 때문에 명중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둘은 의도적으로 의무실을 피해 왔다.

언니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것을 봤다는 것이겠지.

조심스럽게 의무실에 발을 디딘다. 모든 것이 뒤집혀 있거나 엉망이 되어있다.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몸을 굳히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 난장판에서 언니가 만질 만한 곳. 처음으로 생각한 곳은 의료물품이 있는 찬장이었다.
하지만 찬장은 텅 비어있다. 먼지가 두텁게 쌓인 것이 언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다음은 책상. 빙고다. 모든 것이 어질럽혀져 있는 가운데, 책꽃이와 컴퓨터만이 멀쩡하게 있다.
책꽃이에서 무언갈 빼갔고… 컴퓨터를 켜 보니 통신선은 망가져 있지만 그 외의 것은 멀쩡하다. 박사님의 마지막 일기를 열어본다.
<UN에서 받은 약품은 어떠한 신체적 상해를 입더라도 회복하도록 해 준다. 대신 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약품이 주사된 실험체를 죽이는 방법은 단 하나, 목을 자르는 것이다. UN에서는 왜 이것을 만들었을까.
모리슨은 무언갈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이 약품을 분석하려 하는 것을 막았고 더 나아가서 그 약품을 파기할 것을 권했다.
그에게 뭔갈 물어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모리슨, 사령관 사무실로 간다. 만약 언니가 그것을 봤다면, 그에게 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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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사무실. 기지의 숙소에서 나와 본부로 가야 한다. 그 길에는 더 많은 그것들이 있을 것이다. 언니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는 나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간다. 그들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갈 길과 반대편으로 돌을 던진다.
그렇게, 겨우 본부로 들어갔다.

본부는 텅 비어있다. 아니, 그들의 잔해로 가득 차 있다. 그들 모두가 같은 총에 당했다. 언니의 총일까, 하고 살펴보니 언니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모리슨 아저씨의 총이다.
언니가 다치거나 쓰러져서 아저씨가 돌봐주고 계신걸까, 희망이 살짝 고개를 든다.

본부 2층, 사령관실이 있는 복도. 사령관실이 눈 앞이다. 문을 열면 아저씨와 언니가 날 놀란 눈으로 바라보겠지.

'자기야 미안해. 내가 갈 형편이 안돼서…'
언니가 눈꼬리를 내리고 나에게 사과를 할 거고, 나는 삐진척을 해서 언니의 애교를 잔뜩 받을 것이다. 언니의 얼굴에 뽀뽀세례를 퍼부을거고, 그럼 아저씨는 짜증 난 말투로 그만 나가라고 소리지르겠지.

앞으로 벌어질 행복한 일을 상상한다. 그래, 그런 일이 일어날거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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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방심했기 때문일까, 뭔가 큰 것이 내 위를 덮친다. 어둠 속에 숨어있었던 걸까.
물리기 싫어. 나는 발버둥을 친다. 운이 좋게 발이 그것의 급소에 맞았는지 그것이 뒤로 붕 날아간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질질 뒤로 물러난다. 어둠 속,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짧은 흰 머리, 주름이 패인 이마, 흉터가 난 얼굴.

아저씨,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평소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의 눈이 아니라 먹이를 보는 짐승의 눈빛으로.
아저씨가 아니다. 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떨리는 손으로 총을 아저씨에게 겨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아저씨가 나를 덮친다. 밀어내려고 손을 흔들다 총의 손잡이로 아저씨의 머리를 친다. 충격을 받은 듯, 잠시 공격이 주춤해지지만, 이내 나를 가만히 두려는 듯 손으로 내 손목을 후린다.

손목에서 힘이 빠지며 총을 떨어뜨린다.
총을 잡기도 전에 마치 곰처럼 아저씨가 몸으로 내 몸을 받는다. 나는 벽에 몸을 박는다. 언니를 찾아야해. 손을 옆으로 뻗는다. 손에 벽돌이 만져진다. 그걸로 아저씨의 얼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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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죽어… 죽어! 죽으라고!"

귀에 누군가의 말이 들린다. 적의에 가득 차 악문 이 사이로 내뱉는 저주의 말.
팔이 아프다. 왜 아플까.
쿵, 쿵, 몸에 진동이 울린다.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의 느낌으로 보건데 어딘가의 위에 앉아있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손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나 보다.

눈을 뜬다. 내 손이, 벽돌을 들고 그것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것은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다. 머리라고 짐작되는 부분은 형체도 알 수 없이 으깨져 있다.

내 손을 본다. 얼마나 이런 짓을 했는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다. 툭, 하고 벽돌을 떨어뜨린다.

"언니….."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손등으로 닦으니 붉은 물이 묻어나오는게 손에 묻은 피에 눈물이 묻은건지, 내가 피를 흘리는건지 알 수가 없다.
"언니 무서워..제발. 여기 있어줘.."

겨우 몸을 일으켜 문을 연다.
그곳에 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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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방의 구석 한편에 언니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딱딱딱, 하고 이를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언니 나야…"

"다가오지 마!"
내가 언니 쪽으로 한 걸음 내딛자 언니가 비명을 지른다.

"언니, 왜.. 무슨 일이야."
"오지마! 여기 오지마!"

언니의 말을 무시하고 언니에게 다가간다. 언니가 몸을 바닥에 바짝 대고 벌벌 떤다. 와득, 하고 뭔갈 씹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가 언니를 자세히 본다.

팔과 다리에 무수히 많은 흉터가 나 있다. 그리고 어깨에, 그보다 한층 더 큰 흉터.

흉터는 반달 모양. 일정 간격의 점선… 잇자국?
머리속을 스치는 무서운 생각에 언니의 몸을 들어올린다.

와드득, 언니가 언니의 팔을 씹고 있다.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언니…!"

"자, 자기야 도망쳐.. 여기서 나가.. 본부를 벗어나! 도망가!"

겨우 팔에서 입을 뗀 언니가 이 말을 내뱉고 못참겠다는 듯 팔을 깨물려고 한다. 팔의 상처는 이미 나아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빨간 새살이 차오르고 있다.
"언니.. 이, 이게 뭐야…?"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답은 나와있다. 언니가 그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언니, 대체 왜…?"

"도망가. 여기서 나가. 참기 힘들어. 자기야 제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머리를 마구 젓는다. 왜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무슨 일을 했는데. 어떻게 나만 도망가.

언니가 비명을 지르고 나를 민다. 원래 언니의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는 책상에 부딪힌다.
책상에서 와르르, 서류가 쏟아진다.
언니의 눈빛이 다르다. 언니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온다.
순식간에 언니가 내 위를 타고 오른다. 그리고 목덜미에 이를 박으려고 했다.
이제 죽는걸까, 너무 힘들어. 하고 생각하는데 언니가 내 얼굴 옆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는다. 목에서는 계속 짐승의 울부짖음이 나오고 있다.

언니가 서류더미 사이에서 뭔가를 집어든다. 권총?
언니가 내 손에 권총을 쥐어준다. 끄릉, 끄릉. 침이 줄줄 흐르는 언니의 입. 거기서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언니가 나를 바라본다. 총구를 머리에 가져다 대는 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뭐라고 언니가 웅얼거린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제발, 언니가 눈으로 나에게 부탁한다. 하나야, 이런걸 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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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의 메모를 읽고 잭이 뭔가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버워치 기지 안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어떠한 조취도 취하지 않는다. 우리를 구조해주지도, 그렇다고 우리를 모두 죽이지도 않고 그저 밖에서 관찰만 하고 있다.
그라면 뭔가 알 수도 있다.


본부는 조용하다. 잭이 모두를 죽인거 같다. 모두 머리에 한 방 맞은걸 보면 잭이 그들을 편히 보내준 것 같다.

잭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읽는다.

<강화 군인 프로젝트>
…………
………...

말도 안되는 정보에 나는 뒤에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배가 고프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맛있을거 같다.

자기?

자기를 먹을 수는 없다. 팔...팔을 물어뜯어 나의 욕구를 잠재운다. 배고파..

이것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목을 물어뜯으면 연한 살이 입안에 가득 찰 것이다.
안돼. 이건 안돼..

눈 앞에 총이 보인다. 하나야.. 하나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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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신음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권총에서 손을 떼지도 못하고 나는 언니의 몸을 끌어안은채 운다.

언니의 마지막 얼굴.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로 결심하자, 그녀는 예전처럼 씨익. 웃었다.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을 했겠지. 고마워, 자기야.

뭐가 고마운건데. 자기를 죽인게 너무 고맙다는 듯한 미소가 언니의 얼굴에 남아있다. 코 위로는 남아있지 않은 그 끔찍한 몰골을 내가 만들었다.

권총을 관자놀이에 겨눈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서류가 들어왔다. 박사님이 약품을 받은 다음 날에 도착한 메일.

<강화 군인 프로젝트>
-이 약품은 실험체의 근력과 회복력을 비약적으로 강화시킨다. 대신 실험체의 지적 능력이 낮아지며 식욕이 더 강해진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아직 준비중. (실험 표본 준비 완료)

-실험이 진행되면 실험 구역을 폐쇄한다. 모든 생명체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감염체만으로 실험 구역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했을 때, 들어가서 표본을 확보한다.

총을 내린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지는 게임만은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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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침대에 눕힌다. 피를 미처 다 닦아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지만 이게 최선이다.
박사님과 아저씨의 시신도 방에 눕혀드렸다.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괜찮아. 이제 다 했는걸.

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러면서 한 손에 들고있던 스위치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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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군인 프로젝트> - 실패
실패 원인 : 원인 미상의 폭발 및 화재로 표본 소실.
향후 대책 : 새로운 표본집단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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