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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지옥 - 上

"자기야, 내 말 들었지? 절대 나오면 안돼."

"싫어. 같이 나가면 되잖아."

"아냐. 금방 갔다올게. 이게 있잖아."
언니가 가슴을 툭툭 친다. 가슴 한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는 시간 가속기.

"그래도…"
언니가 내 볼을 감싸고 입을 맞춘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 언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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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지만 언니는 없다. 오기로 한 지가 닷새가 지났다.
이대로 계속 누워있고 싶어.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고는 일어난다.

휴대용 게임기를 들고 부엌으로 걸어간다. 찬장을 열어 에너지바를 꺼낸다. 남은 에너지바는 두개. 껍질을 까서 입에 우겨넣고 계수대에서 물을 틀어 물과 함께 넘긴다.

눈을 두고 싶지 않지만 창 밖을 바라본다. 수십대의 옴닉이 기지 내부를 가리키고 있다.
그 뒤에는 군인들이 있는 막사가 보인다.
벌써 한 달째.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식량을 달라, 의료용품을 달라 요구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냉정했다. '그런 허가는 내려오지 않았다.'
상부에의 명령은 기지의 폐쇄, 감시. 한달 후 구조인원을 보낼 것입니다.

한달, 우리는 그 시간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저곳을 숨어다니며 기지 내에 있는 자판기를, 그리고 매점을 털었어야 했다.

나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에 있어?

"언니.." 신기하게도 언니는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 자기를 부르면 오곤 했다.

"언니…"

"레나…"

"트레이서.."

"...하아, 언니.."

언니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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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빼 복도를 살펴본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

발 끝으로만 걸어 복도에서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간다. 침대 프레임과 의자 등, 언니와 함께 쌓아놓은 바리케이트. 넘어가야지만 비로소 무언가가 있는 의무실이나 휴게실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손을 대는걸 주춤하는 이유는, 저 너머에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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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작은 약병 하나였다. 약물이 들어있는 소포. 발신자는 UN이었다.
소포에 동봉된 편지에는 그 내용물을 분석해 달라는 의뢰가 적혀 있었다.

박사님은 당연히 그 의뢰를 승낙했다.

그로부터 몇일 후, 모든 것이 변했다.

약물을 주사한 쥐는 상처에 대한 뛰어난 재생능력과 함께 지성을 잃어버렸다.
식욕만이 남은 쥐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우리를 나온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쥐는 사람을 물었다. 그리고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물었다.

언니와 내가 물리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메카를 타는 나는 민간인과 다름 없는 체력과 일반 군인의 총 실력을 가졌다.
하지만 트레이서인 언니는 달랐다. 언니의 전투실력은 그들을 쓰러트리기 충분했고, 덕분에 나는 언니와 함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생존 물품이 갖춰진 이후에 필요한 것은 안전한 보금자리였다. 방 안은 안전했지만 밤이 되면 그들이 문을 두드렸다. 때문에 언니는 나와 함께 나가서 윗층을 둘러보고 계단에 바리케이트를 칠 것을 권유했다.

이를 나중에 우리는 청소라고 불렀다. 청소, 이 사건을 계기로 언니는 절대 나를 방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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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을 탐험하는거야. 운이 좋으면 아직 살아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나의 긴장을 덜어주려는듯 언니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언니 덕분에 나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발끝으로만 조용히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언니의 말처럼 거기서 익숙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이언니?"

복도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언니를 보고 나는 반가워 언니에게 다가갔다.
메이언니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나는 레나언니의 품에 안겨 뒤로 물러났다.

"언니?"
"여기서 눈 감고 귀 막고 있어."
언니는 나를 텅 빈 방에 놓고 말했다. 언니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는거 같기도 하고, 입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처음 보는 언니의 얼굴. 그리고는 언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짐승의 울부짖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총성음, 달리는 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정적이 찾아왔다.
문이 열리고, 언니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들어온 언니는 말 없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메이언니는? 목구멍에서 그 질문이 솟아나왔지만 억지로 눌러 담았다.
그 때문에 혼자 조용히 우는 언니를 안아주지 못했다.

"하나야. 너는 여기 있어. 청소는 언니가 할게."

다음 날, 핏기없는 얼굴로 언니는 나에게 말했다.

탐험이 청소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몇일간. 매일 아침이면 언니는 나를 혼자 두고 나갔다. 그리고 위층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가 되면 언니는 나를 불렀다. 피범벅이 된 바닥,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말 없이 치운다. 그리고 그곳에서 쓸만한 것을 가져간다.

그리고 계단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한다. 누구도 이곳으로 올라올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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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숨을 내쉰다. 언니는 저 너머에 있을 것이다. 언니는 시간을 조종할 수 있으니 지성이 없는 그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가 지금 오지 못할 사정이 있는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서 언니를 구해줘야 한다.
바리케이트에 발을 올린다. 그리고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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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후욱…

입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그들에게 들킬까 입을 두 손으로 막는다. 캐비넷의 밖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본다.

킁킁킁, 그것이 냄새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방으로 들어오려 문을 두드린다. 방문은 고장난지 오래, 몇번 두드리자 맥 없이 열린다. 나는 방으로 들어온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다.
"박사님…!"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불러버렸다.

단정하게 하나로 올려묶은 금발은 흐트러져 있다. 얼룩 하나 묻지 않던 가운은 붉은 얼룩으로 뒤덮혀 있다.
박사님이 캐비넷을 두드린다. 쿵, 쿵.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다. 문 밖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문을 두드리는 박사님.

언니, 제발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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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깜박 잠이 들었던걸까, 아님 의식을 잃은걸까. 어느 순간에 보니 밖이 조용하다.
캐비넷의 문 틈으로 엿보는 휴게실은 텅 비어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다. 박사님, 아니 그것은 포기하고 돌아갔을까.
휴게실에서 건질 것은 없다. 언니는 이미 여기를 들렀던 것일까. 언니도 박사님을 만났을까.

복도로 거울을 살짝 내민다. 아아, 역시 박사님이 있다. 언니는 어떻게 했을까.
언니라면 일단은 도망을 갔을 것이다. 우리는 박사님을 죽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도망갈 수 없어. 언니가 도망갈 수 없을때 어떻게 했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실행력이 부족할 뿐.
총에 달린 열쇠고리를 떼 낸다. 박사님이 계신 곳의 반대편으로 던진다.

박사님이 열쇠고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총구를 그것에게 겨눈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시킨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냥, 그것을 움직이지 않게 한 것 뿐이잖아?

….라고 생각한 순간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왔다.
한참을 속에 든 것 모두를 토해냈다. 아침에 먹은 에너지바 외엔 든 것이 없었기에 쓴 위액만이 입속을 감돈다.

그것에게 다가간다. 그것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다. 중요한 열쇠려나. 하고 발 끝으로 손을 펼쳐본다.
전투기 조종사의 자켓, 그 팔에 붙어있는 패치.

언니는 확실히 박사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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