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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Legacy -Epilogue

"아, 저번에 왔을땐 비가 왔어서 몰랐는데. 집이 참 예쁘네요."


한참 말이 없던 아이가 첫마디를 꺼냈다.

차에서 내려 뒷자석에 앉은 아이를 부축하려고 하지만 이미 아인 차에서 내린 후였다.


그 일로부터 6개월, 수 많은 수술을 거쳐 아이는 지팡이를 집은 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으로 가서 쉬는건 어떨까요, 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한사코 거부했다.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가보고 싶다는 곳, 레나 옥스턴이 살았던 집.

밝은 때에 올 걸 그랬어요. 참 날씨도 얄궂지. 아이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 사이에 아이의 얼굴은 많이 야위었다. 하지만 마치 연인을 보러 가는 듯 설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



거실도 방들도 모두 6개월 전에서 멈춘 듯한 느낌, 가구 위에는 먼지가 소복히 쌓여있다.


아이는 천천히 지팡이 걸음으로 장식장 앞으로 가 섰다. 나도 함께 아이와 장식장을 들여다 본다.


레나 옥스턴의 인생을 짤막하게 펼쳐 놓은 사진들, 그리고 액자에 끼워지지 않은 마지막 사진 한 장.


하나가 푸스스, 웃으며 장식장을 열어 사진을 집어든다. 그리고 나에게 2층으로 올라가자고 손짓을 한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아이에게 부담이 될 일일 것이다. 계단을 두 세개 올라가다 말고 아이는 숨을 헐떡였다.

업어드릴게요, 하고 등을 내밀자 아이는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수십분 후, 아이는 비오듯 땀을 흘리며 2층에 섰다.

그리고 숨을 고른 아이는 익숙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간다.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방. 그녀는 아무렇게나 손을 뻗어 스위치를 켠다.

각종 음향기기들이 있는 방.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박사님, 언니가 피아노를 친다는거 아세요?"


"아뇨.. 그건 처음 들었어요."


"그래요? 나만 아는거였네. 이거 봐요. 이 사진. 여기서 찍은거에요. 언니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아이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등으로 땀을 닦는다.

건네받은 사진을 바라본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짐을 느낀다.


레나 옥스턴의 사망 이후, 아이는 거의 울지 않았다. 레나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을 그 때에만 울더니 그 이후엔 울음도 웃음도 잃어버린 듯 행동했다.


그리고 지금,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사진을 건넨 아이는 웃고 있었다.


사진을 뒤집어서 보니 레나의 글씨로 자그맣게 써져 있다.


<새로운 가족의 시작. L&H>


"신기하게 하더라고요. 이걸 녹음하고, 저렇게 녹음하면 여러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짠 나오는데..."


이렇게, 하던가...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왔는데.. 아이가 전원을 켜고는 이 버튼, 저 버튼을 눌러본다.


우연히 누른 버튼이 맞았을까,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도, 나도 그 자세 그대로 멈춘다.

그렇게, 우리는 죽은 여인이 남긴 마지막 음악을 듣는다.




짧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숨을 죽이고 들었다.

음악이 끝나자 아이는 조용히 전원을 끄려고 손을 스위치로 가져갔다.


"하아...송하나, 우리 토끼. 하나야."


들릴 리 없는 목소리. 우리 모두가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목소리는 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오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 사실 오겠다고 마음 먹고 온건 아니지. 도망쳐서 온거니까."


작게 그녀가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다시 스피커에서 레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꿈을 꿨어. 네가 나 대신에 죽는 꿈이었어. 너무나도 슬퍼 견딜 수가 없었어. 꿈 속의 나는 너가 없는 오랜 나날을 보냈어.


네가 없으니 너무 외로워서, 그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더라. 네가 나를 사랑해 준 흔적은 여기저기서 나를 반기는데, 정작 너 자신은 없더라고.


내가 왜 그렇게 미친듯 행동했는지 모를거야. 지금 생각해도 내가 미친건 확실해. 아마 무사히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다면 앙겔라에게 말해 약이라도 받아먹어야 할거야.


그래도 있지 하나야, 나는 오늘 아침에 네가 나를 깨운 그 순간 너무 기쁘고, 다시 또 불안해졌어.

마치 네가 내 눈앞에서 빛 알갱이만을 뿌리고 사라질거 같았어. 지금 이 순간이 꿈이고 다시 눈을 뜨면 네가 없는 그 세상에서 눈 뜰까 무서웠어.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한거야. 이해는 못해주겠지만, 적어도 화내진 말아줘.


너에게 준 반지. 우리 어머니의 물건이었어. 우리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주신 약혼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지키겠다는 사랑의 맹세.

그 맹세를 아버지는 충실히 지키셨어.

부디 아버지의 그 뜻이 나에게도 이어졌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사랑해, 너를 통해서 외롭지 않다는걸 배웠고, 엉엉 우는 법도 배웠어. 내가 언니라는 이름 뒤에서 투정을 부려도 받아주는 널 너무 사랑해."



*



딸까닥, 소리가 나며 재생이 멈췄다. 그녀와 나 모두 석상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언니는 다 알고있었나봐요."


하나가 말을 시작했다.


"언니가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평소에 그렇게 덤벙거려서 몇번이고 시간을 되돌리던 언니가 그 순간에는 아무런 주저 없이 정확하게 행동했어요.


마치 어떻게 해야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걸 아는것처럼. 맞아요. 제가 움직일 수 있었으면 지금 여기 앉아있는건 제가 아니라 언니였을거에요.


나를 통해 외롭지 않다는걸 배웠대요. 투정을 받아줬대요.


근데 언니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한건 저에요. 투정을 부린것도 저고, 강한 척을 안해도 된다는걸 배운것도 저에요."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데 바보같은 언니는, 나에게 다 배웠대요. 나에게 받기만 했대요. 나에게 준건 생각도 안하고..."


"차라리 언니 말을 믿을걸, 저는 왜 끝까지 강한 척을 했을까요. 언니 말대로 나가지 말고, 언니 말대로 숨어있을걸. 그랬으면 이렇게 혼자 있지 않았을텐데..."


엉엉엉, 아이가 목놓아 울며 말한다.

그런 그녀의 눈물이 나에게도 왔을까,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박사님, 어떡해요. 언니가 너무 보고싶어요. 언니에게 사랑한다고 더 말해야 하는데..."



사진 출처 : 프마님(@UnderTale_0) https://t.co/bITStGvAin



**



아이가 다시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선 앞으로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병원으로 돌아가 있는게 건강에 좋을거 같은데요. 라고 말하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가슴에 채워둔 눈물을 모조리 흘린 걸까, 그녀의 표정은 고요했다.


"이 곳을 할 수 있는 만큼 지켜야죠. 언니가 절 지켰듯."


그녀의 왼쪽 손에 빛나는 약혼반지. 그녀는 오른 손으로 왼손을 감싸쥐었다.


그녀의 고요한 표정에 갑자기 겁이 났다. 혹시, 레나의 뒤를 따라가는건 아닐까.


"송하나 양."


"틀렸어요, 박사님. 저는 하나 옥스턴이에요."


언니와 약혼을 했고, 이제 제가 마지막 옥스턴이네요.

아이가 희미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언니가 어떻게 살려준 목숨인데요. 언니의 뜻을 이어야죠. 여기서 천천히, 언니를 추억하면서요."



등을 떠미는 그녀를 뒤에 두고 나는 차를 운전해 공항으로 간다.

지금까지 겪은 이 일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레나와 하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서로의 뜻을 이으려는 그 둘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차를 세우고 말았다.

갓길에 세운 차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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