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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판2차

일상(아기백오 세계관)

연성부대는 최근 들어서 큰 공사를 했다. 외관적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라는건, 큰 모닥불과 돌의자를 치우곤 그 자리에 벚나무와 자리를 깐 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가루렌이 "모두가 더 즐겁게 이야기해봐요!" 라며 어디서부터 어깨에 이고 온건지 모를 벚나무를 사 왔을땐 어디다 둘거고 그걸 누가 치 투덜댔지만 일년 가까이 부대에서 자리를 차지한 터줏대감을 휙휙 집어던지는 렌이의 차력열전엔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결과, 실내에 콕 박혀서 나갈 생각을 않았던 부대원 및 식객들은 렌이의 바람대로 벚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낮잠을 자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에구님은 왜 여기에 있는겁니까? 집이 없는것도 아니고."

벚나무 아래서 해를 쬐던 렌이는 물었다. 그도 그럴게 넓지도 않은 돗자리의 반을 에크네페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돗자리에 누워 얼굴은 그늘에 둔 채 낮잠을 자는 에크네페는 정확하게 돗자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눈은 감고있지만 꼬리 끝이 기분좋게 흔들리는걸 보면 분명히 깨어있을 터.

"여우가 여기로 올거니까."

"아니 여우씨도 여길 왜 옵니까? 둘 다 자기 집이 있잖아요!"

"그래서 오지 마?"

 "안돼! 저녁식사에 이미 여우씨랑 에구씨, 백오몫까지 준비했는걸?!"

부대 한 켠에서 신쿤의 구멍난 양말을 꿰매던 체셔쿤이 소리쳤다.

대체 우리 부대원들이 왜 이러는지. 이렇게 된 거엔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걸 느끼는 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근엄하고 멋진 부대따윈 집어 치우라지. 렌이는 중얼거렸다. 그 때 아래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렌아... 렌아..."

"네, 누님."

"가만히 있어. 네가 움직이니까 비늘을 깎기 힘들잖아."

생각해보니 멋진 부대는 애저녁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 화창한 날 자신은 부대의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오래된 비늘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프마의 손에.

아우라에겐 비늘이 있다. 휴런과 라라펠, 엘레젠들이 자연스럽게 피부의 각질이 벗겨지고 미코테들이 남들보다 자주 털이 빠지듯 아우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비늘이 빠진다. 멋을 아는 아우라들은 공을 들여 비늘을 깎고 광택제를 발라 윤기를 내지만 그렇게 공을 들이기엔 렌이는 게을렀다.
그리고 지금, 소일거리를 벌이기 좋아하는 프마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날카로운 장갑으로 렌이의 때, 아니 비늘을 벗겨내고 있었다. 따끔거리긴 하지만 확실히 시원하고 개운해 렌이는 프마의 놀이에 응해주는 중이었다. 확실히 소리를 지르면 비늘이 움직여 깎기 힘들겠지. 렌이는 다시 허리를 펴고 얌전히 앉아있기로 했다.

한동안 사각사각 렌이의 비늘 깎는 소리와 체셔쿤의 바느질 소리만이 울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던 에크네페의 꼬리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멈췄다.

"아아! 백오! 그거 지지야! 먹지마."

아기 키우는 집에서 고요는 사치였다. 부대 구석에서 흙을 파고 놀던 백오가 아장아장 걸어와 렌이의 비늘조각을 집어들고는 입에 밀어넣으려 한 것을 체셔쿤이 말렸다.

"왜?"

"지지야 지지. 엡퉤."

"왜?"

"그거 그렇게 반질반질 예뻐 보여도 때야. 백오도 자기 전에 씻을때 때 밀지? 몸 문질문질해서. 그때 나오는 지지야 그거."

"형아 너무하네!"

"틀린 말도 아니잖아."

바느질감을 내려놓은 체셔쿤은 백오를 안았다. 배고프니? 간식 줄까? 뭐 해줄까? 실내로 들어가는 체셔쿤의 등을 렌이는 흘겨봤다. 따끔, 다리에 아픈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프마는 렌이의 허벅지에 있는 비늘을 깎고 있었다.

"누님, 아픈데..."

"그래도 한번 갈때 제대로 갈아야해. 여기 너덜거리는 비늘도 떼어내고..."

"그냥 재밌어서 하는거잖습니까."

"맞아!"

빈말로라도 널 위해서 해주는거야. 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끝났다. 아쉽네. 라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프마를 보며 렌이는 생각했다.

"아. 진짜 이 장갑 사길 잘한거같다. 그치?"

"원래는 그런 용도가 아니지 않아요?"

"용도는 쓰는 사람이 만드는거야. 또 할거 없나.. 렌이야, 또 벗길거 없니?"

"아예 살가죽을 다 벗기십쇼. 저는 다 정리됐어요. 시원하다 못해 춥습니다."

렌이는 서둘러 앞에 개켜놓은 옷을 주워걸쳤다. 그 문제의 장갑을 끼고 주변을 살피는 프마는 먹이를 찾는 늑대 같았다. 렌이가 자신의 몸에서 나온 비늘을 한데 모으는 사이, 늑대는 두 번째 먹잇감을 찾았다.

"그거 자칫 잘못하면 상처나요."

"그러니까 살살 해야지."

잠에 빠진 에크네페. 프마는 다음 먹잇감으로 그녀를 골랐다. 이제 쌀쌀해지는 날씨 탓일까. 프마의 손짓 한 번에 한 뭉텅이씩 머리칼이 빠졌다.

"거 위험한거 아닙니까 누님?"

"아냐. 잘 봐. 여기 이중으로 머리카락이 나고 있지? 이건 겉털이고 이건 속에서 자라는 솜털이야. 에구님의 머리나 꼬리가 겨울에 조금 더 풍성해보이는건 이 때문인가봐."

"진짜 고양이 같네요."

끝도 없이 나오는 털뭉치를 보며 둘은 감탄했다. 귓가의 털과 꼬리쪽 털을 빗을 때에는 예민한 부위여서 그런지 에크네페는 몇번 몸을 뒤척였다. 그 때마다 렌이는 아기를 어르는 아버지처럼 에크네페의 등을 토닥였고, 덕분인지 그녀는 다시 입맛을 다시며 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셔쿤이 들어간 부대집 안에서는 고소한 쿠키향이 새어나오고 에크네페의 옆에는 에크네페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털뭉치가 생길 쯤이었다. 프마의 장갑에 털이 거의 묻지 않자 프마는 렌이를 불렀다.

"너굴이 방에 가서 침대 아래를 보면 바닥금고가 있어. 비밀번호는 2706이야. 그거 열면 안에 뭐가 많은데, 거기서 코르크에 노란 라벨이 붙은거 가져와."

"네?"

"응. 가져와."

아니, 도둑질 아니에요? 렌이는 따지려고 했지만 프마의 눈이 하도 진지해 입을 다물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체셔쿤은 백오와 함께 지하에 있는 듯 했다. 살금살금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자길 보자니 도둑이 따로 없었다.

침대 아래의 금고를 열자 프마의 말대로 병이 있었다. 어떻게 상대의 금고 비밀번호까지 아는걸까. 렌이는 둘의 신뢰관계에 감탄하며 프마에게 기름을 건넸다.

병을 열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향유?"

"응. 향이 유난히 진해서 너굴이도 조금씩만 쓰더라고."

저 정도 향이면 상급일텐데. 프마는 아낌없이 기름을 손에 덜어내 에크네페의 머리칼과 꼬리에 발랐다. 기름만 발랐을 뿐일텐데 에크네페의 털엔 반짝이는 윤기가 흘렀다. 그 향기 덕분일까? 코를 킁킁이며 에크네페가 일어났다.

"이게 무슨 냄새에요?"

"자는 사이에 털을 빗어봤어!"

잘했지? 내가 봐도 뿌듯하다고! 프마는 신이 나 자신이 빗은 에크네페의 꼬리를 그녀에게 자랑하듯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꼬리의 윤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잠이 덜 깨서인지 에크네페는 어... 우와... 하며 생각보다 심심한 반응을 보였다.

그 때에 부대의 현관문이 열리며 체셔쿤과 백오가 나타났다.

"너희들도 쿠키 먹을래? 잘 구워졌...이게 무슨 냄새야?"

코를 벌름거린 체셔쿤의 눈이 에크네페의 앞에 놓인 병에, 그리고 반질반질해진 에크네페에 닿았다.

"그거...그 병! 혹시...!"

쿠키접시를 백오에게 맡긴 체셔쿤은 황급히 정향유병을 집었다. 작은 잔으로 한 컵 분량정도의 기름이 줄어 있었다. 아아아...! 체셔쿤은 슬픈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파란색에서 하얀색, 하얀색에서 다시 빨간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병을 쥔 채 땅에 웅크린 그는 그 자세 그대로 돌이 된듯 굳었다.

"빤짝빤짝!"

체셔쿤이 기함하는 그 때, 백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혹적인 장난감을 보았다. 파리도 미끄러질듯한 반질거리는 꼬리. 그 꼬리를 보자 백오는 쿠키접시도 내팽개치고 에크네페에게 달려갔다.

"빤짝빤짝 꼬리!"

피할 새도 없이 작고 하얀 이가 에크네페의 꼬리로 파고들었다. 으아악! 에크네페의 잠기운은 정향 향기와 쿠키향기, 그리고 백오의 날카로운 이빨로 말끔히 날아갔다.
뛰면 안돼. 애가 다쳐. 에크네페가 특유의 점프실력을 사용하지 않은건 아기에 대한 배려 때문이리라.



뭐야. 이게.
신쿤은 자신의 양말이 원래 겨울용 털 양말이었나 기억을 더듬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에 체셔쿤이 자신에게서 가져간 양말은 깔끔한 단색의 양말이었다. 결코 털이나 비늘이 붙어있지 않은.

신쿤은 누군가 따질 사람을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우선 체셔쿤은 따질 형편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까지 저럴거래?"

"몰라. 마음의 상처가 크대."

느르흐는 그의 옆에 앉아서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난 듯도 했다.

"근데 왜 자기 방이 아닌 거실서 저러는거야?"

"이미 자기 방의 보안은 이미 뚫려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고 저러고 있어."

거실 침대, 체셔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모로 누워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너굴아. 화 풀어. 내가 한병 더 사줄게."

"그거 체셔쿤님이 하나하나 살충제도 뿌리지 않고 재배한 정향이에요. 밤이슬에 얼까봐 새벽마다 나와서 말도 걸며 관리하던데요."

너굴이의 발치에서 애원하는 프마에게 무아스는 정향유의 진실을 전했다.

오늘 하루, 상처를 입은건 체셔쿤 하나만이 아니었다.

"싹싹 빗겨지고, 좋은 기름이 발라진 후에 씹히고 핥아졌어."

"그래그래..."

"춥고 시리고 아파."

그렇구나. 여우는 언약자의 몸에 자신이 들고 온 판초를 담요처럼 둘러줬다. 에크네페는 언약자의 품에 안겨 울었다.

사랑과 전쟁? 거실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에 신쿤은 한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꼬리에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돌렸다.

"....헤헤, 쿠키 먹을래?"

멋쩍은듯 백오는 신쿤에게 쿠키를 건넸다. 눈이 반짝이는게 오늘 최고의 하루를 보낸듯 했다.

"깨물진 말고 만지기만 해. 오늘 재밌었어?"

"응! 렌이 지지는 예쁘고, 에구 꼬리는 반짝였어!"

렌이 지지는 뭐지... 쿠키를 받아들며 신쿤은 생각했다. 양말을 쥔 반대 손에서 딱딱한 뭔가가 만져졌다. 비늘이었다. 이게 뭐야, 그녀는 그걸 툭툭 털었다. 대체 오늘 하루 뭔 일이 있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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