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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再来(재래-sairai) Epilogue




오랜만에 보는 런던의 맑은 하늘이었다.

레나는 볕이 잘 드는 펍의 구석 창문가에 앉아 있었다.


맥주 한잔과 피시 앤 칩스.

레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본다.


인공지능 개발이 눈앞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개발되면 로봇이나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조종기를 나처럼 몰 수는 없을걸.

레나는 뉴스 기사를 쭉쭉 내린다. 프리미어 리그 결과, 연예인들의 기사, 영화배우이자 프로게이머인 송하나가 영국 런던에서 오늘 CF 촬영을 한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런 운은 없더라.


"자리 남나요?"

영국식 억양은 아니네. 외국인 관광객? 오늘은 혼자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데...

적당한 거절 멘트를 생각하며 레나는 고개를 든다.


갈색 긴 머리에 살짝 올라간 눈.


"프로게이머 송하나씨?"


"쉿. 이곳까지 와서 사인하고 다니고 싶진 않아요. 구석이어서 실례좀 할게요."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레나에게 대답을 듣지도 않고 하나는 자리에 앉는다.


"여기 어떤 맥주가 괜찮나요? 아, 이거랑 피시 앤 칩스 주세요."

하나는 질문을 해놓고도 종업원이 오자 재빠르게 아무 맥주나 주문을 한다.


"오늘 광고 촬영한다고 하더니 정말로 왔네요. 근데 만날줄은 몰랐어요. 나 이런 운은 없던데."


"그래요? 당신 억양이 재밌네요. 그래서 저를 만난 감상은?"

하나가 맥주를 한모금 마시며 묻는다.


"...생각보다 작다?"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놀랐는지 맥주를 들이키다 사례에 들려 켁켁댄다.


생각보다 귀여운 여자네. 뭔가 도도할줄 알았는데. 레나는 웃으며 냅킨을 건네준다.


"실례네요. 아, 아직 성장기라서 그렇지 더 클수 있어요."


"21세면 성인 아닌가요?"


"자, 작아도 괜찮아요! 비율이 괜찮으니까요."


"그건 맞아요. 당신 예쁘네요."


이번에도 또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솔직한데 기분은 상하지 않아. 하나는 생각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 하나는 웃는다. 레나도 하나의 웃음에 맞춰 같이 웃는다.


"아직 소개를 못 받았네요. 저 먼저 소개하죠. 송하나에요. 스물한살. 프로게이머에요."


"레나 옥스턴. 스물 여덟이고 공군 대위, 조종사에요."


"오, 조종사는 처음 만나봐요."


처음 만난 사이지만 둘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몇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맥주잔은 비어있지만 둘은 쉴새없이 웃고 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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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만 시간이 되어서. 촬영하러 가봐야 해요."

하나가 미간을 찌푸린다. 이럴 줄 알았음 더 빨리 와서 이 사람을 만날걸. 자기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낀다는거에 하나는 놀란다.


"그럼 가보셔야죠. 오늘 즐거웠어요."


하나는 계산을 한 후 가방을 들고 나간다.

레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접시 아래에 돈을 꽂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송하나씨!"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나가 고개를 돌린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누군가의 번호를 따보는건데, 그것도 유명 연예인이라니! 레나의 얼굴은 금새 붉게 달아올랐고, 가슴은 쿵쿵 뛰었다.


하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번호를 줘도 될까. 망설인다. 어떻게 하지...

이내 하나는 명함 한 장을 꺼내 번호를 적는다.


"여기 호텔 명함이랑 제 휴대폰 번호에요. 오늘 9시. 호텔에 있는 카페에서 뵈요."


"아, 감사합니다! 오늘 촬영 잘 하세요!" 레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명함을 꼭 쥔다.


뒤를 돌아 가려는데 하나가 자신을 부른다.


"저기요, 옥스턴씨?"


"네."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나요?"


"그럴리가요... 저는 쭉 여기서 살았는걸요?"


"저도 쭉 한국에서 살았는데... 인연이라는게 있나봐요, 오래 만나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럼 좀 있다 뵈요- 하며 하나가 손을 흔들더니 택시를 타고 간다. 레나도 멍하게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인연]이라는게 뭔진 모르겠지만 오래 만나본 느낌은 알거 같아.

오늘 이거 데이트 신청이지? 뭘 입고 가야 할까?

레나의 얼굴이 다시 빨개진다. 데이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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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슬립스트림 사건때 겪었던 그 끔찍한 상태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적어도 내 몸을 만질 수는 있었다. 이마의 상처도 그대로. 만지니 아얏,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아프다.


여긴.. 타임머신의 안이다. 내가 어디로 갈 수 있는걸까? 가고 싶은 곳이라면.. 그날, 하나와 침대 위에서 웃으며 얘기를 나눴던 그 달이 환히 떴던 밤으로 가고 싶어.

확고하게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역시.. 가속기는 고장난거구나. 그럼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뭘 하는거지? 내 일이 어떻게 풀렸는지 알 수도 없잖아?


그 순간, 레나의 눈 앞에 영화처럼 한 장면이 떠오른다.


호텔의 카페, 자신과 하나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웃고 있다.

자기가 한 적이 없는데 자신의 기억 속에 그들의 세계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



레나 옥스턴, 공군 대위, 전투기 조종사, 28세.

송하나, 프로게이머, 21세.


그들의 세상에 옴닉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옴닉의 인공지능 기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로 전소했다가 다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사고를 계기로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도덕성 및 가치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논의를 활발히 진행중이다.



"아아아...!"

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답도 아니야. 다행이야. 적어도 저 둘은 행복해보여...!


그리고 저 멀리에서 환한 빛이 비친다. 그리고 그 빛에서 누군가의 등이 나타난다.

레나 옥스턴. 나의 등이다.


어깨에도 고개에도 힘이 빠져 있는게 그녀가 누구인지 알 거 같다.

아, 어떻게 대답해야 하더라... 맞아.


"어-이! 표정 너무 바보같은데?"


그녀가 놀란 눈으로 돌아본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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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첫 (나름)중장편인 再來(재래-sairai)가 끝났습니다.


재래(再來)는 "다시 온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영감을 얻은건 Deemo라는 리듬게임의 Sairai라는 곡입니다.

유투브 영상을 같이 올렸으니 한번 꼭 들어보세요.


영상에 있는 그림에 나오는 사람의 옷에 돼지, 새, 뱀이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삼독(탐욕, 무지, 증오)을 상징한다고 하네요.(확실하진 않지만요.)


제가 드리고 싶은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