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깁스

생각 없이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나체의 하나가 샤워를 하고 있었다.


하나의 비명에 놀라서 '미안!' 하고 문을 닫으니 하나의 익숙한 욕설이 들려온다.

'문디 가스나'라던가 하는 욕들은 이제 나도 발음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근데, 두근거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하나의 비명이 너무 정석적이었다.


정확하게 '끼약'하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어떤 사람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가.

보통 '으악' 이나 '어어억!' 하고 비명을 지르는데.


혹시나...하고 다시 문을 연다. 그리고 또 역시나 비명은 '끼약!'이다.


"이야..신기한데?"


어떻게 두번 연속으로 문을 열어도 비명은 녹음기마냥 정확하게 "끼약"일까.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 다시 한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화가 난 하나가 샤워가운을 걸친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언니 그거 성추행이야! 이리 안와?"


"자기 미안! 내가 미안하다니까!"


나는 가속기의 힘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과연 D.Va 돌진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숙소의 복도를 뛰어오는 그녀는 정말 빨랐다.


"미안한걸로 끝나면 세상에 경찰은 필요없어!"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내 뒤를 쫓아 하나가 뛰어온다. 이크크, 진짜 잡힐거 같다. 한번 더 가속을 할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의 발이 미끄러지는걸 보았다.

아, 가속은 다른 방향이다. 재빨리 하나를 품에 안은 그 순간, 이번에는 내 발이 꼬여버렸다. 그리고 일은 한번에 여러개가 터지는 법.


발이 꼬인 그 순간, 시간가속기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속기마저도 불이 꺼진다.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지나간다. 큰일났다. 크게 다치겠다. 하나는 다치면 안되는데.

일단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아래로 한다.



---------------------------------------------------------------------------------------------------------------------------



"제가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뒤의 두 여자는... 조용하다.


"어떻게 레나는 임무지보다 숙소에서 더 잘 다치는걸까요?"


웃으며 등을 돌리자 두 아이 모두 표정이 굳는다.


모니터를 두 사람 앞으로 끌어당겨 보여준다.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 어쩜 이렇게 깨끗하게 조각도 안 남기고 부러졌는지 참 감탄스럽네요."


"내가 좀 깔끔하게 일으...!"


레나가 농담을 던지려는데 하나양이 그녀의 옆구리를 푹, 찌른다.


"나는 환자야, 자기."

레나가 하나양에게 투덜대려고 하는데 하나양이 입으로 나를 가리킨다. 레나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이번이 몇번째 골절인가요, 레나양."


"죄송합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한다고 했죠, 하나양?"


"죄송합니다."


하아...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둘은 따로따로 떨어뜨려놔도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둘이 같은 방에서 연애를 한다. 이로써 둘의 장난은 두배가 아니라 제곱이 되었다.

그리고 장난의 뒤처리를 하는 나의 스트레스도 제곱이 되었다.


가뜩이나 당직이라 신경도 날카로운데. 이 둘이 일거리를 더 들고 왔다. 하루라도 얌전히 있으면....하루라도?


"그래요. 여러분은 반성을 안하는거 같으니 저도 어쩔 수 없네요."

둘이 내 분위기가 이상한걸 눈치챘는지 서로 몸을 가까이 한다. 세뇌같은거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미친 과학자 보듯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레나양의 다리. 깁스를 해야겠어요. 앞으로 일주일."


""네?""

둘의 목소리가 울린다.


"왜요, 그냥 지팡이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


"맞아, 이렇게 이렇게! 영웅은 죽지 않아요~ 이러면서."


결국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매번 그 지팡이로 이렇게 이렇게 영웅은 죽지 않는다고 하니까 여러분이 하루가 멀다하고 숙소에서 나와 추격전을 벌이잖아요!

저는 그럼 그걸 다 서류로 작성해야 하고! 오늘도 당직이에요! 여러분은 노는거지만 저는 일인데...!"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다.


놀란 하나가 다가와 내 팔을 잡는다.


"박사님 미안해요.. 그런줄 모르고.. 우리 이제 안싸울게요.."


"응. 미안해 앙겔라..."


"그러면 당분간, 제가 일이 좀 없어질때까지만 깁스를 하고 계세요.."



레나가 휠체어에 타고 하나가 그 휠체어를 밀며 나간다. 죄송해요, 안녕히 계세요.

풀이 죽은 비글 두 마리가 나간다.


후후후, 좀 고생좀 하겠지. 앞으로는 좀 살살 놀아요 둘 모두.



---------------------------------------------------------------------------------------------------------------------------



생각보다 언니의 부상은 생활에 불편을 주었다.


일단 닥친 불편은 저녁시간이었다.


일단 양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잡을 수 없으니 내가 고기를 가져다가 썰어서 언니 앞에 놔 줬다.

하지만 포크로 음식을 찍어 입에 넣는 것의 명중률도 그리 높지 않았다.


"자."


보다못한 내가 언니의 포크를 빼앗아다 입에 대 준다.

뭐가 그리 신난지 언니는 입을 벌려 고기를 먹는다.


저 언니가 강아지였다면 지금 머리 위로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파다다닥 흔들릴거 같다.

언니의 지금 모습 위로 뾰족한 강아지 귀와 빗자루같은 꼬리를 합치니 어울려서 웃음이 났다.


언니가 이번엔 먼저 입을 벌린다.


포크를 언니의 입에 넣는 척 하며 뺀다.


이번에는 풀이 죽었다. 상상속의 귀와 꼬리가 축 처진다.

아, 이 언니는 강아지구나.


한번 더 하면 약이 올라 왕왕 짖을거 같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언니가 다친건 나 때문이다.

언니에게 식사를 먹여주며 저녁을 먹는다. 언니의 입가를 보니 소스가 묻어 있다.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으로 소스를 닦아 빨아먹는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몇초 후에야 알아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언니는 눈치도 못 챈듯 싱글벙글이다.


"자기가 오늘은 엄마같네."


"어쩔 수 없잖아. 언니가 나 때문에 다쳤으니까."


나 혼자만 부끄러워진거 같아 빈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 설거지를 한다.

뒤에서 언니가 뒤뚱뒤뚱 걸어와 엄마-하며 안겨서 등에 얼굴을 부빈다. 아, 그러면 더 부끄러워지는데.



------------



"자기 꼭 이래야해?"


하나가 내 눈앞에서 야차처럼 서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게 진짜 엄마같다.


"잔말 말고 어서 벗어!"


"내가 혼자서 씻을게..일주일간이니..."


"혼자서 씻긴 뭘 씻어, 제대로 씻지 않음 오늘 같이 안잔다?!"


그녀의 최후통첩. 어쩔 수 없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바지를 벗는다. 상의는 그녀가 위로 벗겨준다.

둘이 잠자리때 벗는 건 둘 다 이성을 잃은 상태라 신경을 안 썼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둘 다 이성을 차리고 있고, 하나는 옷을 다 입고있다.


이 닦아줄게. 하고 이를 닦아줄때부터 예상을 했어야 했다.

하나는 나를 정말 아기처럼 다룰 생각인가보다.

가슴을 가리고 서 있으려니 하나가 등을 찰싹, 하고 친다.


"빨리 욕조 안으로 들어가. 감기들어."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물이 플라스틱으로 된 깁스 안으로 들어와 부러진 다리까지도 낫는 느낌이다.

으으. 좋다. 하고 있으니 하나가 머리를 밖으로 내밀라고 한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샤워기로 물을 머리에 적셔주고 샴푸질을 해 준다. 이야...


"자기, 혹시 나 깨끗하게 씻어서 잡아먹으려는거야?"

기분이 좋아져서 농담을 한다.


"잡아먹으려고 해도 다시 건강해져야 잡아먹지."

하나가 머리를 헹궈주며 답한다. 


"자, 이제 머리도 다 감았으니 몸 씻자."

하나가 샤워볼에 거품을 내며 나에게 온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게 하나의 장난 스위치가 올라간게 분명하다.


"자, 잠깐 자기...!"



------------



"우으.... 너무해..."


샤워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서 언니가 투덜댄다.

언니를 먼저 내보내고 나도 씻고 나오니 모로 누워있다.

묘하게 '나 이제 시집 못가.' 라고 말하는거 같다.


"큭큭큭, 언니가 그렇게 무릎 뒤랑 겨드랑이에 간지럼을 타는 줄은 몰랐지."


"그걸 알면 자제해야지 거기만 집중적으로 더 간지럽혔잖아!"


언니가 빨개진 얼굴로 빼액, 소리를 친다. 오늘 언니가 다리가 아파서일까. 더 동생같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느라 왼팔로 몸을 기대고 상체를 들고 있다. 그 사이로 맨가슴이 보인다. 아아..모르겠다.


"아, 자기! 뭐하는거야...으읏!!"


언니의 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쇄골에 가슴에.. 그리고 천천히 입을 아래로 내린다.


"언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해줄게."



---------------------------------------------------------------------------------------------------------------------------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다시 이마를 감싸쥐고 있다.


"그러니까... 어제 둘이서 놀다가.. 또 다쳤단 말이죠."


"응...왼손이 잘..."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다. 깁스 따위로 저 둘을 묶어놓는건 불가능하다.


레나의 왼쪽 손목의 인대가 늘어났다. 무리해서 왼손으로 상체를 받치고 있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아아.. 그래. 이건 내 운명이지. 엄청난 서류와 환자와...그리고 당직.


"이리 대세요. 지팡이를 가져올게요."


와아! 하고 하나양과 레나양이 소리를 친다.


아... 그래. 저 비글을 얌전히 놔두려고 한 내 잘못이야..

'오버워치 > 트레디바트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  (1) 2016.07.31
비타민  (0) 2016.07.29
게임 - Epilogue(Another)  (0) 2016.07.27
게임-5(Another)  (1) 2016.07.27
게임-Epilogue  (0)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