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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파인애플

오랜만에 장을 본다. 우리 둘은 그리 집에서 음식을 먹는 아니기에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 , 그리고 생필품을 산다. 그럭저럭 담을건 담았고, 나가려는데 계산대 앞에 파인애플이 쌓여 있다. <1+1 DISCOUNT>.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장바구니에 파인애플이 두개, 무거울걸 생각도 못하고 홀리듯 버렸다.

그렇게 낑낑대며 장바구니를 들고 올라간다. 운전면허를 둘까.

 

", 자기 왔어? 오늘은 장을 엄청나게 왔네, 맛있는거 왔어?"
 

"으어억! 누구세요!"

화장실에서 머리로 눈을 가린 여자가 뛰어와 장바구니를 연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서운하네, 나야 ."

목소리가 레나 언니다. 볼에 주근깨를 보니 언니가 맞다. 그런데…

 

"언니는 옆으로 날리는 머리가 본체구나."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친다.

 

실례되는 소리를 하네, 하고 언니가 장바구니를 뒤진다. ' 파인애플!' 하며 언니의 옆으로 나란히 두개의 파인애플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장바구니 아래에서 요플레를 보더니 신이 부엌에서 스푼을 가지고 온다.

 

그렇게 머리가 눈을 가리는데 앞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심코 시선이 나란히 놓여있는 파인애플로, 그리고 뒤에서 요플레의 뚜껑을 핥고 있는 언니에게로 간다.

 

"언니, 머리는 매일 드라이해서 한거야?"
 

혀를 날름거리며 요플레 뚜껑을 핥던 언니가 나를 본다, 아니 고개가 내쪽으로 돌아갔으니 나를 것이다.

 

"아니, 머리 마르면 알아서 옆으로 가던데?"

 

"그럼 언니는 평생 머리로 산거야?"

 

"글쎄..긴머리는 기억이 없어서.. 아마 그럴껄?"

언니가 머리를 손으로 쓱쓱 만지더니 '이제 자를때가 되었나, 중얼거린다.

 

"언니, 잠깐만…"

파인애플의 사이에서 삽살개처럼 눈을 가리고 있는 언니를 보니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 언니에게 간다.

언니는 요플레를 먹느라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내버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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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플레는 뚜껑부터 먹어야 맛이다. 하나가 앞에 선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야가 환해진다. 그녀가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옆머리도 쓱쓱 한데 모은다. 대체 하려는거지?

 

"….."

 

하나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 '자기?' 하고 말을 걸었지만 아무 말이 없다.

이상해서 고개를 숙여 하나와 눈을 맞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못참겠다는듯 바닥을 구르며 웃는다.

 

"아하하! 언니..큭큭..지금 되게...파인애플 같아! 하하하하!"
파인애플? 저쪽에 나란히 있는 파인애플을 본다. 내가 저것 같다고? 데굴데굴 바닥을 등으로 청소하는 하나를 내버려둔채 파인애플을 들고 거울 앞에 선다.

 

앞머리와 옆머리를 모아 정수리에서 묶은 내가 거울 속에 있다. 그리고 옆에는 초록색 잎사귀가 사방으로 파인애플.

...묘하게 비슷한거 같으면서 아닌거 같고….

 

나는 등을 돌려 하나를 바라본다. 내가 진지하게 거울을 보고 있자 그녀가 숨을 정도로 웃는다.

 

"이게 그렇게 웃겨?"
 

"! 언니 본체는 역시 머리였구나!" 하나가 눈물을 닦으며 웃는다. 그게 그렇게 웃겼구나…

 

 

밥을 먹는 내내 하나의 광대는 하늘로 솟아 있었다. 하나가 묶어준 머리를 그대로 하고 있으니 하나가 나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 , 웃는다. 괜히 기분이 나빠 고무줄을 잡아당긴다. 휘릭, 하고는 옆으로 머리가 쏠린다. 그걸 보더니 하나는 밥을 먹다말고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떤다.

 

".... 오늘은 내가 광대가 기분이야.." 내가 궁시렁대자 그녀가 미안한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젓는다.

, 하나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근데 여기서 장난 하나가 생각난다.

 

"자기, 우리 내기할까? 내가 이기면 내일 파인애플 머리를 하고 파인애플을 들고 다닐게."

 

"! 큭큭큭큭… 괜찮겠어? , 알아서 . 근데 언니가 이기면?"
 

"자기는 내일 토끼귀를 하고 메카를 타는거야."

 

"큭큭큭큭… 그래, 알아서 ."

하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가 웃은 만큼 나도 내일 웃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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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돼!"

 

하나가 게임패드를 놓더니 뒤로 뒤집어져서 구른다. 아하하하! 하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안을 가득 채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저번에 하나에게서 유일하게 2연승을 레이싱 게임. 나는 오늘 이것을 내기 종목으로 걸었다. 하나가 묘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하는건 어때? 아예 운에 맡길 있는 가위바위보 같은거 있잖아.'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종목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3연패… 이럴수가.

 

"언니는 뭘로 본거야. 프로게이머야. 언니에게 뒤로 이걸 내가 얼마나 연습한줄 알아?"

하나가 악마같은 미소를 나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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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나가 앞을 가슴을 펴고 걷는다. 그리고 뒤를 내가 따른다.

품에는 파인애플. 오늘따라 이마가 시원하다.

 

",어머...레나......그것...."

앙겔라가 나에게 아침인사를 하려다 말고 고개를 돌린다.

 

"레나씨, 꼴은 대체 뭔가요. 파인애플도 아니고."

파리하씨는 나에게 정색을 하고 물어본다. 그녀의 질문에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게. 누가 레나인지 모르겠어!" 하고 루시우가 파인애플을 보고 "안녕!" 이라며 인사한다.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오늘 훈련 분위기는 묘하군. 무슨 있나?"
뒤에서 모리슨이 걸어들어온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는 의아해한다.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그가 주춤,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한다.

분명히 느껴진다. 마스크 뒤의 그의 입은 웃고있다. 짙은 선글라스 뒤에 있는 그의 눈도 웃고있다. 그의 이마가 빨개지는걸 봐서, 그는 웃고있다.

 

"하아..웃고싶으면 마음껏 웃어. 오늘은 레나 파인애플이니까."

체념섞인 목소리에 모두가 나와 시선을 피하며 몸을 떤다. , 그냥 부탁이니까 웃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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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훈련, 모의전투의 MVP 나다. 하지만 그리 기쁘진 않다.

모의전투가 시작되기 , 하나는 끈을 꺼내 가속기 앞에 파인애플을 매달았다. 가속기의 불빛을 파인애플이 몸으로 막고있자 사람들은 나에게 파인애플 유전자를 받은 영웅인 '파인애플 우먼'같다며 한번 뒤집어졌다.

 

그리고 전투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총을 겨누지 못했다. 아니, 겨누기는 했는데 총구가 마구 흔들려 나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파인애플의 " 역시 대단하다며 나를 놀렸다. 하아, 이기고도 그닥 즐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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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일어나보니 하나는 먼저 나가 있었다. 오늘은 훈련도 없는 날인데 얘가 일이지, 하고 느즈막히 씻고 휴게실로 갔다. 물론 머리는 원래대로 돌려놨다.

휴게실로 가는 , 만나는 직원에게 인사를 해도 그들 모두가 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무시한다. 무슨 일이지? 기분이 나쁜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다.

 

휴게실로 가자 하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니, 오늘은 언니가 기운이 없네.. 고글도 계속 쓰고있고.. 제발 나에게 장난 걸어줘."

하나의 애절한 목소리. 이걸 듣고 모두가 웃는다.

 

"하하핫! 하나야, 레나를 박사님께 데려가야 하는거 아냐?"
루시우가 하나에게 이렇게 말하자 다시 와아 하는 웃음소리가 휴게실에 울린다.

 

"레나, ,몸이 차갑,네요.. 피부도 거친게, , 요즘 힘든.. 있나요?"

윈스턴이 앙겔라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이젠 비명이 섞였다. 아저씨 너마저...

 

뭐지, 하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놈의 파인애플. 파인애플 그놈이 고글을 쓰고 있다.

 

고글! 하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이제 숫제 우는 소리를 낸다.

 

"레나, 고글을 빼앗기겠어! 도망가!"

루시우가 파인애플을 집어들더니 스케이트로 벽을 타고는 요리조리 손을 피한다 아아! 이제 그만!

 

"왜이렇게 시끄러워?"

모리슨이 루시우의 손에서 파인애플을 뻇는다. , 고마워요 사령관님.

그는 나와 파인애플을 번갈아서 본다. 그리고는 살짝 헛기침을 한다. 설마…

 

파인애플을 옆에 있는 선반에 놓더니 그가 반대편 손으로 들고 있던 편지를 파인애플에게 건넨다.

 

"트레이서, 편지 왔네. 근데 머리가 마음에 들었나보군."

 

"모두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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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이마까지 빨개져서는 점멸을 사용해 휴게실을 나간다.

 

저거 삐졌네, 오랜만에 보네 레나가 삐진거. 모두가 한마디씩 하며 큭큭댄다.

 

"삐져요?"

 

". 한번씩 토라지면 삐져서 말도 안하고 밥도 안먹지. 같잖아." 윈스턴이 바나나를 까며 나에게 답한다.

 

내버려둬. 저러다가 다시 웃으면서 나타날걸? 하고 사람들이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삐지는 사람은 달래주기.

 

여태 삐진 쪽은 나였다. 그래서 언니는 앞에서 자주 애교를 부리곤 했다. 이번엔 내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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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여기 있어?" 건물을 아래에서부터 샅샅히 뒤졌다. 이제 남은 곳은 옥상. 여기도 없으면 언니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언니는 옥상에 있었다. 옥상의 구석. 언니가 무릎을 안고 있다. 입이 비쭉 나온게 단단히 삐진거 같다.

 

"언니! 아직도 삐졌구나!"

 

"삐진거 아냐! 화난거야!" 언니가 고개를 돌린다. 처음으로 보는 언니의 삐진 모습이 귀엽다.

 

"으이구 언니 화났구나. 그랬어." 내가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자 언니는 도로 앞을 바라본다.

 

"짜잔. 내가 삐진 언니를 위해 이걸 준비했지!"

언니가 곁눈질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준비한건 파인애플.

 

"자기까지 왜그래애!" 언니가 소리를 지르자 내가 언니에게 과도를 건네준다.

 

"썰어버려. 언니의 , 클론레나를."

내가 웃으며 말하자 언니는 몇번 씩씩대더니 쾅쾅, 과도를 휘날리며 클론레나의 , 아니 파인애플을 자른다.

 

자른 파인애플을 언니의 입에 대자 입을 닫는게 아직도 삐졌다는 뜻이다.

 

"언니, 이거 먹고 우리 캐치볼할까?" 언니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다. 입은 아직도 내밀고 있지만 어느정도 기분이 풀린거다.

 

"아유, 우리 레나, 빨리 이거먹고 캐치볼 하러가자, ? 파인애플이 들어간다 슈유우웅!"
 

파인애플을 찍은 포크를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려 앞으로 가져간다.

오랜만에 언니의 이름을 불러줘서 그럴까? 언니가 입을 벌려 파인애플을 먹는다.

 

"아이고, 이렇게 이쁘게 먹을까. 하나 ! 슈우우웅!"

내가 이리저리 포크를 돌리며 장난을 치자 언니의 입가에 미소가 돌아온다. 하여간 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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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안씻어? 먼저 씻어?"

 

하나가 화장실에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러라고 대답했다.

오늘 오랜만에 하나와 캐치볼을 했다. , 일방적으로 그녀는 최대한 멀리 던지고 나는 그걸 받는거지만…

 

화분에 흙을 담고 아까 먹은 파인애플의 꼭다리를 심는다. 톡톡, 주변의 흙을 두드린다.

 

" 자라라 클론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