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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트레디바트레

Redo-3

< D.va-Hanna.S>
자기가 알던 꼬맹이는 저런 딱딱한 문패는 쓰지 않을거야. 라고 레나는 생각한다. 분명히 분홍색 싸인펜으로 저기에 자신의 서명과 함께 귀여운 토끼를 그리겠지. 하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문에는 딱딱하게 인쇄된 문패만이 있었다.

노크를 할까,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을 열자 차가운 목소리로 "누구"라는 질문이 들어온다.
순간 숨이 막혔지만 태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누구긴 누구야, 나지 자기야-"

방 안은 연기로 차 있었다. 어두운 방 안을 가득 메운 담배연기,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티비 화면이고 그것을 보며 그녀는 무신경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입술 끝에는 길게 타고 있는 담배가 매달려 있다. 그녀는 게임을 중지하고 멍하니 레나를 바라본다. 예전의 꼬맹이의 눈빛이 돌아오나, 했는데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온다.

"꼬맹이 아니에요. 나도 당신과 동갑인걸요, 레나."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난 하나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 레나를 바라본다. 뭐 더 할 얘기가 있어. 하는 눈빛이다.

"미안해. 늦게 와서."
"당신의 잘못은 아니죠. 이해합니다."
차라리 화를 내고 울었다면, 그랬다면 어떻게라도 했을 텐데 하나는 짧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 웃음이 너무도 메말라 하려던 말이 모두 막히고 만다.

"거기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들어와요.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구요."
하나는 부엌의 불을 켜고 찬장에서 글라스 두개와 위스키 한병을 꺼낸다.
홍차가 떫다며 우유에 꿀까지 넣어 마시던 그녀가 쓴 위스키 한병이라, 레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식탁 의자에 앉는다.

아무 말도 없이 둘은 술을 마신다. 술잔을 기울이며 하나는 다시 담배를 꺼내문다. 먼저 얘기를 꺼낸 쪽은 하나였다.

"6년 전에는 당신이 참 언니같았는데. 장난꾸러기 같은 면은 있어도 언니같긴 언니같았어요. 근데 지금 보니 당신도 어려 보이네요."
후, 하고 연기를 내뱉으며 그녀는 웃는다. 내 기억속의 당신은 좀 더 성숙한 느낌이었는데, 나도 나이를 먹었나봐요.

"...그 상처는 뭐야?"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레나는 묻는다.
"그냥... 싸운거죠. 그 시간동안."
"우리 사이는..."
"그때는... 내가 어렸어요."

어렸다. 한 마디로 관계가 압축이 된다. 그렇게 일축하는 하나의 손이 살짝 흔들린다. 손 끝으로만 잡은 술잔에서 술이 살짝 흐른다.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술과 함께 하나는 말을 삼킨다.
그 삼키는 말 속에 수 없이 많은 원망과 슬픔이 있어, 레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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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크리가 총을 쏘는데 그때 마침 파라씨가 지나가다가..."
그 뒷 이야기는 하나가 6년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다른 요원들의 근황, 그리고 그들이 작전 중 펼쳤던 실수담을 그녀는 술의 힘을 빌어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레나 또한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함께 웃었다. 더 이상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말아요, 하는 하나의 암묵적인 지시를 거역하기 힘들었다.

"그때 사령관님이 말했죠. '아- 이때야말로 트레이서가 필요하...'"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녀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인다. 손에 든 술잔이 심하게 흔들린다.
레나도 하나도 정적 안에서 움직일수가 없다.

투둑, 하고 식탁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필요한데 말야...라고 하시는데.. 당신이 미친듯이 보고싶었어요."
"..미안."

"나보다 먼저 작전지에 들어가서 적들을 교란시키지 않아서 걱정하는 일이 없어졌는데도 당신이 보고싶었어요.
게임하는데 옆에서 이것저것 방해하지 않아서 편했는데, 당신이 보고싶었어요.
짜증나면 한국어로 욕하는데 옆에서 더 짜증나게 그거 따라하는 당신이 없어졌는데도 당신이 보고싶었어요.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홍차도 스트레이트로 잘 마시고. 군것질도 안하는데 칭찬하는 당신이 없더라고요.
당신이 그렇게 바라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나를 보는 당신이 없어서 서운했어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펴도 누가 뭐라고 안했어요. 당신이 와서 나에게 그런거 못하게 말려주길 바랬어요."

"...미안."

하나가 고개를 든다. 볼로 눈물이 흐르는데 닦을 생각은 없이 레나만을 응시한다.
"...그런데 당신이 없더라고요. 죽을까, 했는데 그때 당신이 오면 어떡해. 나 보면서 슬플거 같아서 참았어요. 그게 6년이야.
...이제 다 아물어가는거 같았는데. 나름 잘 생활하고 있었어요.
근데 다시 성가시게 당신이 나타났네. 당신이랑 이것저것 얘기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될줄 알았는데, 새록새록 다시 떠올라. 아픈게, 그리운게.
...진짜 당신 미워."

미안하려고 말하려는데 하나가 레나의 팔을 잡아당겨 입을 맞춘다.
담배의 향, 술의 쓴맛.
그리고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손이 레나의 옷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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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에게 첫 경험일 터였다.
떨리고 기쁜 순간일거라 생각했다. 둘 모두 그것을 바랐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은 하나에게 큰 상처였다. 

"...안되겠어. 미안."
식탁 위에 레나를 눕힌 하나가 옷을 벗기려다 말고 손을 멈춘다.
"...왜..."
"언니에겐 짧았을지 몰라도 나는 6년이야. 지금 내가 이렇게 한다면 내가 쌓아온 모든게 무너져버려. 그리고.. 언니도 알다시피 나는 언니가 아는 하나가 아니야."
하나가 쓴웃음을 짓는다.
"왜 아니야. 자기는 하나 맞아. 내가 아는 하나야."

조용히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언니가 아는 하나는 6년 전의 하나야. 언제나 언니를 그리워하고, 사소한거에 토라지고 기뻐하고. 여름에 바다에 갈 것을 기대하는 꼬맹이.
나는 언니의 하나가 아니야. 나는 언니를 잊기 위해 6년동안 나를 바꿔왔어.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을거야. 6년동안 내가 살아온건 어찌 보면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살아온거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바뀐거지. 언니에 대한 연정. 그건 모두 다 버렸을지도 몰라. 내가 지금 언니에게 이렇게 매달리는건, 6년 전에 하나를 찾고 싶어서 그럴지도 몰라. 언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인 감정으로... 난 매우 뒤틀려져 있어. 언니.. 그런 나는 언니를 안을 수 없어."

하나가 레나의 위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레나를 바라본다.
"지금 이렇게 있어보니 알겠어. 언니를 미친듯이 안고싶은게 아니야. 그저 예전의 나로 미친듯이 돌아가고 싶은거지."

"언니도 알고 있지?"

하나는 침대로 가 침대 밑에서 상자를 꺼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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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는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가 건넨 상자를 받아든다.

그 안에는 파랗게 빛나는 휴대형 시간가속기가 있었다.

"이기적인 부탁인거 알아. 하지만 되돌려줘. 내 망가진 감정, 나 자신을. 언니도 언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나를 볼 수 없을거란거 알아."

말 없이 가슴에 가속기를 찬다.

"근데 하나..."
"알아. 언니가 시간을 바꾸더라도 '나'는 변하지 않을거야."
"....."
"그래도 '모든 내'가 다 '나'와 같지 않았음 해."
"....."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 너무 슬프지 않니. 라고 레나는 하나를 바라본다.
레나가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바꾸더라도 지금의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하나는 여전히 레나가 없어서 뒤틀려진 하나로 살아갈 뿐이다.

"가줘 언니. 나는 언니가 이 모든걸 고쳤으면 해. 나를 위해.. 그리고 언니를 위해."

푸른 불빛이 가슴에서 점점 커진다. 그리고 빛난다. 눈부신 빛이 사라진 후 하나의 방에는 어지럽혀진 식탁만이 있었다.
바닥에서 술병을 집어든 하나는 말 없이 잔에 술을 다시 따른다.

"언니가 이 모든걸 바꿔줄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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